연인의 죽음을 상상하면 나는 참 쉽게 무너지곤 한다.
J와의 이별을 상상해본다. 결혼을 했으니 헤어진다면 이혼이겠거니 싶지만 어쩐지 내게는 이혼보다 사별이란 말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죽음만이 우리 사랑을 갈라놓을 수 있어(뗴잉 8ㅅ8) 하는 건 아니다. 죽고 못 사는 관계여서라기보다 J가 하는 일이 가끔 진짜 목숨 걸고 하는 일이라서. 별난 일을 하는 연인과의 사별을 상상해본다.
ㅣ옥상 점프하는 연인
J는 파쿠르(Parkour)라는 운동을 한다. 여기서 잠깐, 파쿠르가 뭐지 싶다면 유튜브에 '파쿠르'를 검색해 보시길. 영상 하나만 봐도 대충 어떤 운동인지 한 번쯤 봤음직 할 것이다. 파쿠르는 맨몸으로 도시 장애물을 극복하는 운동이다. 흔히들 옥상을 점프하고 담을 넘고 벽을 타는 모습을 떠올리는데 연인이 파쿠르를 한다 하면 대게 이런 반응이다. 첫째, 대박...! (말잇못) 그거 안 위험해? 둘째, 대박...! (감동) 진짜 멋있다! 셋째, 대박...! (신기) 와 그거 하는 사람 실제로 처음 봐! 이렇듯 삼 대박 친 파쿠르 연인을 두고 사람들은 슬쩍 묻곤 한다.
"걱정돼서 그러는데.. 남편이 위험한 운동 하면 걱정 안 돼요?"
글쎄.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일까 매정한 걸까. 하지만 실제로 나는 남들이 걱정하는 것보다는 J의 안전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 편인데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파쿠르의 허와 실을 알기에. 미디어 속 파쿠르 트레이서들은 늘 목숨 걸고 위험한 도전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묘사되곤 한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도전을 일삼는, 극도로 자극적인 모습으로 말이다. 반면 J를 통해 본 파쿠르는 그런 자극적인 움직임만이 다가 아니었다. 파쿠르는 장애물에 맞서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수단이자 두려움을 마주하는 정신적 수련, 자신의 몸에 맞게 움직이는 일상의 운동이다. 실은 우리 대부분이 이미 파쿠르를 해봤는데 어린 시절 기고 구르고 뛰던 모든 움직임이 파쿠르였다. J의 수업에서도 어린아이, 할머니, 장애인 등 다양한 몸들이 파쿠르를 배우고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면 파쿠르의 가치와 철학에 비해 그저 극단적인 스포츠로 미디어에 소비되는 게 새삼 씁쓸해지곤 한다.
둘째론 J의 판단을 믿어서. J는 중학생 때 파쿠르를 시작하여 어언 18년 차 파쿠르 장인이(라 스스로 정의했)다. 꾸준히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이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본 J는 도전에 제법 보수적인 사람이다. 늘 도전하지만 무모하게 도전하지는 않는 사람. 점프 하나를 앞에 두고도 스스로의 능력치를 철저히 따져보고 인정하고 합리적인 목표라는 확신이 들 때에야 뛰어들었다. 덕분에 18년간 크게 다치지 않고 파쿠르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그가 단련한 것은 스스로의 몸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자신의 한계를 정교하게 가늠하는 능력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몸에 대한 그 나름의 판단력과 기준이 있음을 알고, 또 믿는다.
마지막으로 그의 사랑을 존중하기에. 지근거리에서 J를 보자면 하는 일도 파쿠르(사업), 친구들 약속도 파쿠르(모임), 덕질도 파쿠르(영상 보기) 등 그야말로 덕업일치 물아일체의 삶이다. 언젠가 J가 잠꼬대로 파쿠르에 대해 프레젠테이션하는 모습을 두어 번 보고서는 그의 맹렬한 파쿠르 사랑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영화 <그랑블루>나 <프리 솔로>의 주인공들이 자신만의 풍요로운 낙원에서 순교하듯 그에게는 파쿠르가 구원이자 희망이자 삶 그 자체구나 싶다. 나야 슬프겠지만 그에게는 파쿠르를 하다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죽음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감히 들고 말이다. 이렇게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인생은 참 복 받았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연인이라도 그토록 열렬한 사랑을 지레 걱정하고 막는 건 실례인 것 같다.
ㅣ이혼 말고 사별
그럼에도 J의 죽음을 떠올리면 나는 참 쉽게 무너지곤 한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최진영 작가의 소설 <구의 증명>을 읽은 적이 있다. 연인이 죽고 혼자 남게 된 이의 이야기인데 과하게 감정이입을 해버려 그날 밤 오열하고 거의 일주일을 울적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떠올리면 어째서 이토록 막막한 걸까. 제 살을 내어 주듯 몸과 마음과 삶을 나눈 한 우주가 스러져가는 건 나의 우주에 얼마나 큰 공동을 남길까.
조금은 비슷할 것 같은 이혼을 떠올려본다. 겪어보지 않았기에 이혼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과정일지 함부로 가늠하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혼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스스로 내린 결정이기에 당장은 힘들더라도 결국엔 나아지리라 믿는다. 서로가 더 잘 살기 위해 헤어짐을 결심한 것이니까. 반면 사별은, 갑작스레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혼자 남은 그 황망함은, 도무지 잘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식어버린 마음 때문이 아니라 싸늘하게 식어버린 몸 때문이라면 여전히 뜨거운 마음을 홀로 붙잡고 길고 어두운 시간을 견뎌내기까지 얼마나 춥고 캄캄할까.
옥상을 점프하는 연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죽는다. 잠든 J의 얼굴을 바라보는 밤이면 언젠가 우리도 삶과 죽음으로 헤어질 순간을 떠올린다. 나는 여전히 상상만으로도 어쩔 줄을 모르겠지만 씁쓸하게도 산 사람은 살아갈 것이다. 살아있는 이들에게 기대어 한 우주가 사라진 자리를 부둥켜안고 기어코 살아내겠지. 어찌할 수 없는 이별과 어찌할 수 없는 슬픔, 또 어찌할 수 없이 상처가 아물어갈 시간을 떠올리면 나는 한없이 무력해진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서로의 몸이 따뜻할 때 더 많이 안아주자 다짐하는 일뿐. 현관문을 나서는 J를 보며 갑작스러운 이별을 상상해보는 날이면 먹먹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J를 안는다. 우리의 몸은 아직 따뜻하구나. 사랑해, 잘 다녀와. 이따 집에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