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혼수, 결혼반지를 맞추기 위해 반지 원정대는 길을 나섰다.
나는 아직도 예물, 예단의 차이가 뭔지 잘 모르겠다. 글을 쓰며 다시금 찾아보니 예단은 '예물로 보내는 비단'이라는 뜻으로 신랑이 신혼집을 마련해오면 신부 측에서 감사의 의미로 집 가격의 10%에 해당하는 예단을 보내는 거라고. (와, 퍼센트까지. 디테일해!) 예물은 신부 측의 인사를 받은 시부모님이 답례로 주는 물품으로 보통 시계, 가방, 결혼반지 등을 산다고 한다. 이마저도 어느 웨딩 업체의 설명으로 큰 틀에서 이렇다 할 뿐 집집마다 형태와 스케일이 다양할 것이다. 그러니 난 그저 우리 결혼의 예물, 예단, 혼수에 대해 얘기해본다. 우리의 첫 혼수는 결혼반지였다.
ㅣ세상 중립적인 반지 가게 사장님
우리는 결혼반지를 나무로 맞추기로 했다. 자연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적극 반영된 것인데 그 이유 외에도 나무는 다른 금속에 비해 해가 지나면 썩으니까. 우리의 관계도 나무가 썩듯 자연스럽게 변해갈 것임을 생각하면 결혼반지로 적합한 재료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명색이 결혼반지인데 저렴하고 조악한 반지는 아닌 것 같아서 값나가는 나무 반지를 해외 직구로 살까 알아보던 중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일단 구경이나 해보자며 직접 반지 가게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 중 반지 구입 업무를 담당한 J가 유튜브로 알아본 곳이었다. 수차례 유튜브 검색을 해본 그의 말에 따르면 반지에 진심인 반지 장인이 거품 없이 아주 정직하게 장사하는 곳이라 했다. 오호라- 정통 반지파라니. 어쩐지 귀인을 만날 것 같은 기대감을 품고 반지 원정대는 길을 나섰다.
흠, 작고 빛나는 것들은 원래 다 이렇게 예쁜 건가요? 눈앞에서 반짝이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가격에 번갈아 놀라며 열심히 반지들을 구경했다. 그렇게 한 30분쯤 둘러보았나, 어느새 흥미가 떨어진 우리는 반지 유튜버 사장님과 마주 앉았다.
"선생님, 저희는 원래 이런저런 이유로 나무 반지를 사려고 했는데요. 사실 맘에 쏙 드는 나무 반지도 딱히 없고, 그렇다고 아무 나무 반지나 사서 끼려니 명색이 결혼반지인데 싶고. 골치가 아파요. 그나저나 저희한테 반지가 꼭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고. (99절절) 결혼반지가 꼭 필요할까요?"
"글쎄요. 필요 없으면 꼭 안 맞춰도 되지 않을까요?"
이런 객관적인 반지 가게 주인이라니! 과연 J의 말대로 아주 믿음직하게 장사하는 대상(隊商)이었다. 듣고 싶었던 답을 장인에게 들은 우리는 그의 티 없이 맑은 고객 응대에 탄복하며 빈손으로 가게를 나왔다.
우리는 국밥을 먹으며 결혼반지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걸 끼고 있으면 사람들이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차릴 테지. 결혼을 준비하며 내게 아내이자 유부녀이자 며늘아기이자 새언니이자 (아빠의 간곡한 소원인) 예비 엄마라는 여러 가지 새 타이틀이 주어지는 게 나는 반갑지 않았다. 가뜩이나 오롯이 나로 살기도 버거운 청춘인데 말이다. 실은 결혼으로 인해 내 삶에 새로이 주어지는 역할과, 어떤 가능성들이 닫히게 될까 지레 무서웠던 것 같다. 결혼이 내게 어떠한 한계도 짓지 않을 거라고, 오히려 함께이기에 더 든든하고 자유로워질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다짐하곤 했는데 네 번째 손가락에 끼는 반지는 어쩐지 내 맘과는 다르게 매번 결혼의 무게와 역할을 내게 상기시켜줄 것 같았다. 결혼이 잘못은 아니라지만 왠지 마치 주홍글씨처럼. '영원한 사랑의 약속'처럼, 결혼이 마치 평생의 언약(이어야 하는) 양 나눠갖는 결혼반지의 통상적인 의미는 더더욱 싫었고 말이다. 저마다의 커플에게 결혼의 의미와 그 상징물이 다를 텐데 그저 우리에겐 그게 결혼반지는 아니었다.
그래! 내가 반지 원정대에 의욕이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거였어!! 실용적인 면에서도 운동이 업인 J에겐 손을 쓰는데 액세서리가 거슬렸고 몸에 뭘 걸치는 걸 싫어하는 내게도 반지는 무용지물이었다. 결혼한다 생각하니 손가락에 뭐라도 껴야 할 것 같아 나무 반지를 기웃거렸는데 결국 우린 서로 반지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란 걸 깨닫고 나서야 절대 반지를 파괴하고 반지 원정대를 해산할 수 있었다. 그렇게 결혼반지를 맞추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니 뜨끈한 국밥이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ㅣ혼수의 대원칙
반지를 비롯한 혼수, 예물, 예단을 결정하는데 고려했던 결혼 소비의 대원칙을 톺아봤다. 자칭 '혼수의 대원칙'을 거들먹거려본다.
대원칙 1. 비용은 반씩 부담한다.
결혼에 드는 비용은 정확히 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비용을 반씩 부담하려면 모아둔 돈이 적은 사람 몫에 맞춰야 했다. 쉽게 말해 빚은 내지 말고 우리가 가진 돈 안에서 해결하자는 거였다. 우리의 피땀원룸도 수중에 가진 돈으로 일궈낸 최선의 결과였다. 우선 뭉텅이의 돈을 한 데 모아 그 돈으로 공통 비용을 쓰고, 각자의 집안 일에 쓰이는 돈은 가급적 각자가 처리하기로 했다. 이 행태는 결혼하고도 각자 가계부를 관리하는 식으로 이어지는데, 그 이야기도 차차.
대원칙 2. 가족의 지원은 받지 않는다.
일찍이 결혼 선배들이 "부모님이 주신다 할 때 받아~"하는 말을 제법 들었다. 실은 나도 조금 고민했다. 큰돈 주신다 하면 오또카지? (지레 설렘 //@_@//) 아무래도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면 출발선이 달라지니까. 그러면서도 집에 손을 벌리면 우리 결혼의 자유도도 꼭 비례하여 줄어들 것 같았다. 우리에게 결혼은 원가족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의 의미도 있었기에 선택해야 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양가로부터 큰돈은 완곡히 거절하기로 합의했다.
대원칙 3. 형식보단 필요에 따른다.
그래서 예물 예단은 기본적으로 하지 않기로 했다. 명품가방과 시계가 우리 둘에게 필수는 아니었기에. 이미 같이 살고 있었기에 당장 새 가전이나 가구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주머니 사정에 따라 서로 기분 좋은 수준에서 선물을 주고받았어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원하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물건으로 말이다. 양가 집안이 축하의 의미로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게 예물 예단의 전통적인 의미라면 각자 사정에 맞게 그 취지를 살리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
그런데 역시 결혼은 현실이자 집안의 일인지라 나의 이성과는 다르게 우리 집에서 시댁에 솜이불 한 채를 해드렸다. 아빠의 상견례 멸치 러시처럼 이번엔 엄마의 솜이불 러시가 있었는데 나의 숱한 거절과 반대에도 외할머니까지 가세해 시댁에 솜이불 한 채는 꼭 해 드려야 마음이 편하시겠다며.. 한바탕 솜이불 파티가 벌어지는 바람에 나는 기꺼이 두통을 버리고 솜이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어느 봄날엔가 J네 본가로 솜이불 한 채가 배달되었으니. 휴.. 모쪼록 요긴하게 쓰셨길 바랄 뿐이다. 솜이불을 비롯해 친오빠가 통 크게 선물해준 침대도 있고. 예물, 예단은 하지 않겠다며 양가 가족들에게 한복이나 미용 비용도 따로 챙겨드리지 않았는데 이 비용을 양가 가족들이 직접 해결해주신 것 만해도 이미 가족의 지원을 충분히 받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녀의 결혼을 주변에 알리고 대접하는 일만 해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말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똑 부러지게 비용을 분담하고 야무지게 소비했다고 자부하곤 했다. 그렇지만 실은 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힘들었을 것 같다. 주고받는 현물의 값어치만큼이나 우리의 일을 제 일처럼 여기고 마음 써준 든든한 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지원이었고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보은이었다. 그나저나 결혼식을 다 치르고 난 지금에서야 혼수에 대해 드는 생각은 의외로 아쉬움이다. 그때 돈 쓰는 김에 부모님께 선물도 드리고 평소엔 엄두도 못 냈던 것들 좀 살 걸. 내 인생에 다시 올까 싶은 민족대지출이었고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고 돈 쓰는 김에 이것저것 사치 좀 부려볼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