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7. 신령님이 보고 계셔

"둘 다 착한데 남자가 말을 참 잘해. 말을 잘해서 여자를 홀렸어."

by 명하이

식장을 계약하기 전 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이제 예식일을 정해야 하는데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길일을 확인해볼까 싶었다. 겸사겸사 우리 궁합도 슬쩍 여쭤보고 말이다. 신령님이 점지해준 우리의 길일과 궁합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본다. 팍팍-


ㅣ후방주의 궁합썰


압구정에 위치한 어느 모던한 점집이었다. 카페 식으로 된 곳이었는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밥값을 내고 커피를 마시는 곳이었다. 이날의 점집 나들이는 다소 갑작스러운 일정이었다. 그날 아침 친구 둘이 용하다는 곳에 신점을 보러 간다기에 재밌겠다며 수다를 떨던 차였다. 마침 우리도 골머리 앓던 길일이나 점지받을까 싶어 J와 냉큼 길을 나섰다. 그렇게 갑작스레 만나게 된 나의 친구들과 J. 그들은 점집에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는 초면에 곧바로 운명을 공유하게 된다.


선녀님이 말했다.

"어디 보자~ 둘 다 착하네. 착한데 남자가 말을 참 잘해. 말을 잘해서 여자를 홀렸어."

어맛,, 이렇게 자기 객관화 또 한 번 하고 갑니다 선녀님.. J의 현란한 말재간에 내가 꾀인 거라며 너스레를 떨다가 본격적인 궁합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궁합은 크게 세 가지나 있었다. 재물 궁합, 대화 궁합, 속궁합 정도였던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우리의 합은 좋은 편이라 했다. 특히 속궁합 얘기가 나올 땐 괜히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신령님 저희,, 보셨어요..? (후방주의) 우리의 내밀한 시간을 신령님이 어찌 아실까 궁금하다가 어쨌거나 궁합이 좋다니 마음이 놓였다. 자녀와 관련해선 우리의 자식 운이 귀하다고 하셨는데 그게 자식이 드물다(rare)는 뜻인지 귀한(valuable) 운명의 자식이 생긴다는 말인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글쎄 세상에 안 귀한 자식이 있을까마는 말이다. 무튼 선녀님이 좋은 말을 담뿍해주신 덕분에 괜스레 어깨가 쫙 펴졌다. 기분이 넉넉해진 나는 이 집 정말 용하다고 믿기로 했다.


ㅣ택일이 무색해진 시절


궁합 풀이가 끝나고 결혼식 길일을 물었다. 가지런히 적어간 몇 개의 예식 날짜를 내밀자 호탕하게 길일을 추려 주셨다. 우리의 오랜 고민이 무색하게도 선녀님은 예식일을 한방에 골라 주셨는데 일종의 예식적 플라세보 효과랄까, 아주 든든했다. 신령님께 컨펌받은 날짜이니 좋은 기운 받아 조금은 더 잘 살 것 같았다. 7만 원 치고는 나쁘지 않은 처방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받아온 길일도 기운이 그리 세진 못했나 보다. 그날 점지받은 2020년 3월 21일은 예기치 못한 역병 앞에서 하릴없이 스러지고 마는데. 코로나 시절에 결혼식을 준비하며 우리는 식을 한 번 미뤄 그 해 가을 10월 10일에 결혼한다. 마침 황금연휴인 데다가 2020.10.10의 십진법이 마음에 들어 장난처럼 결정해버렸다. 이번엔 선녀님의 처방 없이도 제 날에 식이 무탈하게 치러진 걸 보면 낄낄 대며 기쁘게 날을 정한 덕분에 괜한 악의 기운도 쫓아낸 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반갑게 읽은 홍칼리 님의 <신령님이 보고 계셔> 책엔 이런 글귀가 있다.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입체적인 존재에게 필요한 건 고정관념에 기반한 답변이 아니라 고민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상상력이다." (p. 165, <신령님이 보고 계셔>, 홍칼리, 위즈덤하우스, 2021)


큰일을 앞두고 점집을 찾는 마음들을 헤아려본다. 바라던 바대로 일이 잘 풀리길 기원하는 마음이기도 어쩌면 그저 남의 입을 빌어 확신의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기도 또 어쩌면 그저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응원받고픈 마음이기도 할 테지. 참 별 것 아닌 것 같은, 남들은 척척 잘 해내는 것 같은 결혼 준비의 질곡에서 나는 자주 힘에 부쳤다. 그즈음의 나는 그저 확신과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 이 사람과 결혼하기로 한 게 잘 한 선택이고 이 거사가 별 탈 없이 잘 치러질 거란 확신. 결혼을 준비하며 불안하고 초조했던 나는 바람과는 다르게 종종 좋지 않은 결말을 상상하곤 했는데 그런 내게 만약 우리 궁합마저 좋지 않게 나왔으면 어땠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 정말 지혜로운 선녀님이라면 우리의 궁합이 대체로 좋다고 퉁쳐 해석해주시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살다 보면 분명 함께라도 힘든 날이 많을 텐데 그저 찰떡궁합이란 게 있을까. 그럼에도 너희 앞엔 해피 엔딩이 예정되어 있다고, 다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는 넉넉한 마음이 있다. 마치 새파란 예비부부에게 건네는 따뜻한 결혼 선물처럼 말이다. 이렇게 호쾌하게 찰떡궁합을 보증해준 선녀님과 오랜만에 만나 내 불안한 속내를 들어준 친구들 덕분에 나는 참 풍성한 점괘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신령님께 여쭈어보려다 결국 내 곁의 사람들에게 긴긴 웨딩마치를 완주할 힘을 점지받은 날이었다.


그 시절, 심약했던 나는 여기저기 기도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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