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예식 준비가 월급통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의금아 스치듯 안녕-
결혼을 결심하고 가장 신경 쓴 건 아무래도 결혼식이었다. 우선 우리는 결혼식을 치를지 의논했다. J에게 결혼은 새로운 관계에 대한 사회적 선언으로써 의미가 컸기에 예식을 치르고 싶다 했다. 나는 내적 관종으로서 내가 주인공인 행사에 욕심이 컸기에 예식을 치르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했고 우리가 넘어야 할 첫 번째 산은 예식장이었다.
ㅣ볕과 시간,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로 여러 결혼식 사진을 찾아봤다. 주관식보단 객관식이 수월했다. 몇 가지 레퍼런스로 내 결혼식 로망이 선명해졌는데 공통점은 볕과 웃음이었다. 볕이 가득 드는 환한 예식장에 눈길이 갔다. 조명보단 자연광이 한결 부드러워 보였고 거기가 바람까지 살랑살랑 부는 곳이었으면. 그리고 엄숙하고 경건한 예식보단 유쾌하고 즐거운 행사가 됐으면 했다. <어바웃 타임>과 <맘마미아>를 적절히 섞어놓은 듯, 마을 잔치 같기도 댄스파티 같기도 하게 환한 미소와 웃음소리로 결혼식이 채워지길 바랐다.
두 번째로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시간이었다. 예식 시간이 넉넉히 편성되어 여유롭게 식을 치를 것. 하루에도 수십 건의 예식을 공장 돌리듯 해치우는 식장은 왠지 얄미웠다.
"그래서 신랑/신부가 무슨 일 한댔지? 둘이 어떻게 만났다고?"
식장을 나서면서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은커녕 뷔페만 품평하는 결혼식 말고 우리 두 사람과 가족들에게 관심이 좀 더 집중되었으면. 나와 J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고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충분히 알고 느긋하게 축하해주길 바랐다. 우리 관계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이벤트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해치워지지 않길. 그러려면 우리에겐 지그시 눈을 맞추고 충분히 축하받고 또 감사를 전할 넉넉한 예식 시간이 필요했다.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두 가지 조건을 내걸고 몇몇 예식장을 알아봤다. 운 좋게도 진즉이 마음에 쏙 든 곳이 하나 있었으니, 명동에 위치한 어느 호텔의 옥상 예식장이었다. 천장이 개폐형이라 맑은 날이면 천장을 열어 야외 테라스 분위기를 낼 수 있었고 곳곳이 자연 정원으로 꾸며진 곳이었다. 사실 예산을 조금 초과한 곳이었는데 결혼식의 로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답정너였지 뭐야.
ㅣ폭죽이 되어 터져 버릴 돈들아
예식장 계약을 하러 가던 날은 평소보다 단정하게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회사 일로 예식장 대표와 안면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개인적인 일로 계약을 하는 자리라 괜히 비장해졌다. 시종일관 늴리리 맘보의 자세로 예식 준비를 관망하는 J의 손을 단단히 잡고 호텔로 향했다.
대표는 능숙하게 예식장을 소개했다. 익히 알고 있던 개폐형 천장은 물론 점심과 저녁, 하루 단 두 번의 웨딩으로 예식 시간이 무려 4시간이라는 점. 게다가 커플마다 캐릭터와 취향, 연애사를 맞춤 고려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개성 있는 결혼식을 위한 컨설팅도 진행해준다고 했다. 한국의 정형화된 예식 문화에 답답함을 느껴 웨딩 홀과 웨딩 컨설팅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대표의 개인사는 이제 막 웨딩 월드에 뛰어든 우리에게 아주 듬직하게 들렸다. 그렇게 한 시간여 웨딩 홀 소개가 끝나고 그는 숙련된 솜씨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정말이지 다 좋았다. 다 좋았는데 계약서에 적힌 밥값이 7만 원이었다. ... 네..? 고개를 갸우뚱하니 7만 원이었던 밥값은 순식간에 5만 원으로 할인됐다. 게다가 최소 보증 인원을 정해야 한단다. 최소 보증 인원이 200명이면 꼭 그만큼 사람이 안 와도 200인분의 밥값을 다 지불해야 했다. 최소 보증 인원에 따라 식대 단가도 달라지고 말이다. 아니, 온다 하고도 당일에야 못 온다고 연락할 사람들까지 내가 5개월 전부터 어떻게 아니..? 손님 수에 따라 음식 양을 준비할 수 있으니 한편 이해는 되다가도 100명, 200명의 뭉텅이로 식대가 책정된 최소보증인원의 개념은 어딘가 가혹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100만 원 단위로 달라지는 꽃 장식과 본식 앨범 비용까지 보니 왠지 심한 호구가 되는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7만 원에서 5만 원이 된 밥값을 보며 다른 데서도 거품을 뺄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이라고 더 깎고 추가 서비스를 넣어보려 은근한 신경전을 벌였다. 한동안 소소한 제안과 거절이 오고 갔는데 막판 협상이 진행되는 긴박한 순간, 텀블러에 프라푸치노를 담아간 게 화근이었다. 고심하는 척 커피 한 모금 마시려다 텀블러의 큰 주둥이로 뻑뻑한 프라푸치노가 벌컥 쏟아졌다. 얼굴에 프라푸치노 똥을 맞은 나는 당황하여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갔다. 얼굴을 닦고 와보니 J가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전세 계약 다음으로 내 인생 최대의 일시불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식은 스몰웨딩은 아니지만 약간의 하우스웨딩 느낌 나는, 반 셀프 웨딩이자 반 야외 웨딩이 되었다. 부족한 예산에도 나름의 취향과 욕심을 앞세운 독특한 형태였다. 식장을 계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3호선에서 문득 예식 준비가 월급통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지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축의금이 실은 우리를 스쳐지나 식장 밥값으로 나간다니. (축의금아, 스치듯 안녕 8ㅅ8) 결혼식 로망에 눈이 멀어 잔뜩 일을 키웠는데 이게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웨딩 산업의 호구가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몇 천만 원의 계약서에 홀린 듯이 사인하고 아늑한 원룸으로 돌아가는 청년들의 밤은 유난히 어둑했다. 한 여름밤의 폭죽이 되어 그 어두운 밤을 밝혀줄 우리의 돈들아- 펑! 퍼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