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5. 지옥의 미팅 상견례

내가 속한 세상과 네가 속한 세상 또한 무난히 함께할 수 있을까?

by 명하이

자, 결혼 그거 어디 한번 시작해볼까, 아?ㅏㅏㅇ 우르르ㄹㄹ 와르르ㄹㅡㄹ 상견례의 상 자만 꺼냈을 뿐인데 결혼이라는 어떤 크-은 산이 무너진 것 같았다.


ㅣ상견례는 처음이라


양쪽 어른들께 따로 인사드리는 것도 마냥 쉽진 않았지만 그런 어른들이 x2가 되는 상견례는 x4 정도 어려웠던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걸 고려하고 조율했다.


첫째, 서울에서 볼까 부산에서 볼까? 내 고향은 부산, J는 경기도, 동거 시절 우리의 집은 서울. 철저히 당사자 중심의 마인드로 결혼식은 서울에서 하기로 맘먹은 터였다. 그러다 보니 상견례는 당연히 부산에서 해야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양가 모두 흔쾌히 동의해주셨다. 혹시나 한쪽이 배려해주지 않으셨음 어땠을까 아찔하다.


둘째, 날짜를 맞춰보자. 결혼식 날짜를 대충 우리끼리 정하고 4개월 전쯤 상견례 날을 잡았다. 상견례도 나랑 J 시간 맞추는 게 어려웠지 양가 가족은 주말이면 거진 다 괜찮으셔서 이것도 쉽게 클리어.


셋째, 식당 예약하기. 여기서 양가의 스타일을 볼 수 있다. 사실 무난하게 하려면 상견례 맞춤형 한정식 집은 많다. 몇 가지 소소한 꿀팁들만 한번 더 체크한다면 말이다.


1. 차분히 이야기 나눌 수 있게 공간이 구분된 룸이 좋다.

2. 대화가 끊겨 어색할 타이밍에 직원 분이 서빙해주며 분위기 환기해줄 수 있는 코스 요리가 좋다.

3. 개인적으로는 신발을 벗는 앉은뱅이 식탁보단 의자에 앉는 쪽이 여러모로 더 안전하지 않을까 한다.


부산에도 그런 적당한 한정식 집은 많았는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우리 아빠. 부산까지 먼길 오시는 손님 대접이니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며 여행 기분도 낼 겸 부산의 대표! 부산의 명물! 자갈치 시장에서 회 한사리 대접하시겠다며.. 당일치기는 힘드니 식사하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시라며..


...

처음엔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는데 우리 아빠 세상 진지함. 나 진짜 울 뻔했다.


아빠의 다정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음, 이건 뭐랄까. 카랑카랑한 사투리가 오가는 시장 횟집에서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말 편하게 놓는, 어느 동아리 엠티처럼 부은 얼굴로 아침 인사를 건네는. 우리가 진짜 친해지기 위해 만나는 자리는 아니잖아..? 나는 여러모로 '적당히'를 원했다. 너무 못하지도 너무 잘하지도 않게 딱 기본만. 상견례만큼은 딱 남들만큼만. 결국 상견례 이틀 전에야 아빠에게 내 의견을 강력히 피력해(라고 쓰고 내 맘대로) 무난한 한정식 집을 예약했다. 상견례를 하고 나서야 결국 아빠도 맘에 들어했지만.


넷째, 머릿수를 맞춰보자. 여기서는 양가의 유교력이 드러난다. J는 형제가 많아 총 다섯 명이 참석하기로 했다. 나는 오빠만 한 명이라 총 네 명. 한 명 차이야 뭐 괜찮겠지 했는데 상견례 하루 전에 아빠가 갑자기 한 명 예약 추가하라고. 알고 보니 우리 집안의 장손, 큰아빠의 아들이자 내게는 사촌오빠가 함께 하기로 결정되었다. 아니 장손이 왜 여기서 나와..? (우리 집 종갓집인 줄) 그리고 그 사실을 나와 상의하지 않고 아빠와 사촌오빠 둘이 얘기해 결정했다는(실은 아빠의 호출) 사실에 단단히 열이 받은 나는 아빠와 2차전을 치렀다. 근데 기껏 시간 내준 사촌오빠에게도 미안하고. 함께 보는 것으로 합의했다.


다섯째, 선물. 사실 선물까지 꼭 준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선물이라도 있으면 훈훈한 한 마디라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준비했다. J의 가족은 유명하다는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를 사 왔다. 자갈치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빠는 시장에서 특별 주문한 10만 원어치 멸치와 건새우 세트를 가져왔다. (세상에 멸치가 10만 원어치라니) 그리고 헤어질 때 당시 대학생이었던 J의 막냇동생에게 용돈 봉투를 쥐어주었다.


ㅣ이것이 '집안 일'이구나


대화도 잘했고 식사도 괜찮았고 분위기도 제법 훈훈했고. 결론적으로 혼담도 파투 나지 않았음에도 상견례가 지옥의 미팅으로 기억되는 건 결혼이 집안 일임을 뼈저리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결정은 나와 J, 우리 두 사람이 당사자이자 거의 전부였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하는 사소한 결정부터 동거 사실도 우리가 결정해 가족들에게 알리는 식이었다. 그에 비해 상견례는 두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 첫 오프라인 회동이었기에 일정 조율부터 장소 섭외, 심지어 선물까지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게 제법 많았다. 난 회동 준비부터 이미 진이 빠진 터라 미처 파악하지 못한 멸치와 용돈 봉투까지 튀어나왔을 땐 에라이 그냥 될 대로 돼라 싶었다. 식사 자리에서도 넋을 놓고 있어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끔 대화가 끊길 때 J가 나서서 화제를 전환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무렴, 그마저도 다 밉고 싫었다.(저 빼고 다 나가주세요.) 그 와중에 J의 동생들과 나의 오빠들은 참이슬을 시켜 옆자리에서 조곤조곤 대화를 나눴다.(부럽네 거기 젊은이들)


상견례를 치르며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건 두 집안이 너무 다를까 봐였다. 우리 아빠도 아빠로서 상견례는 처음이었던지라 그저 최고를 내어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 최고가 자갈치 시장과 장손과 멸치와 용돈 봉투였다. 반면 부산 가는 김에 벡스코에 들러 전시회를 관람하고 선물로 케이크를 사 온 J네 집안과의 간극을 생각하니 그 중간에 선 나는 어쩐지 울고 싶어졌다. 나의 가족과 J의 가족을 나란히 떠올리면 우리가 속해있던 세상은 생각보다 많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우연히 만난 우리가 이제는 제법 엇비슷하게 걸어가듯 내가 속한 세상과 네가 속한 세상 또한 무난히 함께할 수 있을까?


실컷 적고 보니 죄다 아빠 욕인 것 같아 훈훈하게 마무리해야겠다. 집안 분위기야 이제와 어찌 바꾸겠나. 중간에서 우리가 잘해야지. 이렇게까지 상견례 챙기는 우리 아빠가 최고다 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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