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1. 알고리즘이 맺어준 인연

이런 찰떡같은 캐릭터를 나와 매칭 시켜준 이 알고리즘 참 용하다 싶었다.

by 명하이


결혼을 생각하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려본다. 우리는 소개팅 앱으로 만났다.


나는 2년 정도 짧고 다난한 짝사랑을 전전하고 있었다. 계속 누군가를 좋아하던 기분에 취해 썩 외롭진 않았는데 그러다가도 더 오래 연애를 쉬면 연애전선에서 낙오될 것 같은 불안에 종종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연애가 쉬운 것도 아니었다. 자만추는 요원했고 주변에 소개팅을 부탁하기에 나는 다소 젠체하는 성격이었다. 그즈음 때마침 한 데이팅 앱을 알게 되는데 그렇게 나는 소개팅 자급자족의 길로 뛰어들게 된다.


2ulip은 성향을 묻는 수많은 질문에 답변하고 자기소개 글까지 써야 하는 제법 까다로운 서비스였다. 나는 백문백답하듯 스스로의 성향을 살피며 공들여 프로필을 작성했다. 덕분에 나와 취향과 가치관이 제법 비슷한 사람들과 몇 번 매칭 되었다. 비록 연애까지 이어지진 못한 몇 번의 만남들을 거치다 보니 나도 몰랐던 나의 연애관과 취향을 새로이 알게 되기도 했다. 만남과 프로필 업데이트를 반복하길 여러 차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싶을 때쯤 4번 째로 말을 건 게 지금의 연인 J였다.


J의 자기소개 글은 어딘가 독특했다. 냄새가 나, 냄새가. 어딘가 지독한 또라이의 냄새가 나.. 설 연휴를 맞아 외할머니 댁에서 심심한 저녁을 보내던 나는 홀린 듯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 우리는 건대입구 역에서 만나게 된다.


"오늘 뭐하셨어요?"

"아무 버스나 잡아 타고 졸다가 종점까지 갔다 왔어요."


아아- 그의 해맑은 대답에 나는 놀라버렸다. 어쩜, 나와 같은 취미라니! 내 비록 함박 스테이크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추천한 식당에서 맛있는 척 밥을 먹고 카페로 가 마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죽음과 꿈, 좋아했던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두서없이 이야기했다. 일상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 J가 맘에 들었다.


또다시 건대입구 역으로 돌아와 헤어지며 그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을 잡으며, 다음에 또 만났을 때 이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으면 정말 좋겠다 생각했다. 맘에 꼭 든 지금 이대로 몇 번을 더 만나고도 서로에게 실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난히 연애를 하지 않을까? 첫눈에 반해버린 건 아니었지만 다음에 만나면 조금 더 좋아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J와의 첫 만남을 묻는 질문에 나는 종종 "소개팅(앱)으로 만났어"라고 퉁쳐 말하곤 했다. 앱까지 기웃거렸다 하면 왠지 사람이 궁하고 헤퍼 보일 것 같았다. 어쨌거나 연애가 궁한 건 사실이었는데 말이다. 무튼 앱이라는 한 글자를 빼면 우리의 연애는 참 무난하게 받아들여졌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 몇몇 친구들이 내게 소개팅 앱의 건전함과 익명성에 대해 묻는다. 사랑이, 연애가, 혹은 섹스만 하고 싶은 다양한 욕망들이 오늘도 만남의 장에 접속한다. 여러 프로필을 훑어보고 말을 건네기까지 저마다의 목적과 기준이 있을 텐데 어디까지가 건전하고 어디까지가 헤픈 걸까? 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으로 맺어진 소개팅이라는 이유만으로 불건전하고 위험한 만남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J에게 닿기까지 이름 모를 소개팅자들과 수차례 대화를 나누고 또 그를 통해 나를 알아가며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사실! 나와 더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것도 제법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슬슬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이라면 폭넓은 인력 풀을 보유한 온라인 세상에서 소개팅 자급자족에 도전해보길. 비록 연애까지 닿진 못하더라도 여러 대화와 만남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나의 취향 레퍼런스라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알고리즘이 맺어준 우리의 첫 만남은 버스여행과 함박스테이크를 지나 힘주어 맞잡은 악수로 끝이 났다. 미래의 배우자를 만나면 귓가에 종소리가 들리기도 한다던데. 종소리는 모르겠고 이런 찰떡같은 캐릭터를 나와 매칭 시켜준 이 알고리즘, 참 용하다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2017년 2월 1일의 이야기


Photo by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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