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 #3. 동거, 막상 살아보니

우리는 은평구의 어느 오래된 원룸에 살림을 꾸렸다.

by 명하이

동거에 대한 어떤 로망이 있었다. 밤에 헤어지느라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주말이면 같이 누워서 넷플릭스를 본다거나 하는 소소한 일상에 관한 건 결코 아니었다.


혹독한 산행으로 연애를 시작한 우리는 꼬박 두 번의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자연스럽게 같이 살기로 한다. 말이 자연스럽지 실은 굉장히 인위적이었던 우리의 동거에는 나의 허세가 단단히 한몫했다.


ㅣ동네 사람들~ 저 동거해요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첫 직장을 다니게 되며 나는 당장 살 곳이 필요했다. 장장 7년을 저렴하고 안전한 기숙사에서 살다 독립하려니 모아둔 돈은 물론이거니와 혼자 살 용기도 턱없이 부족했다. 마침 연애도 무탈하게 이어졌기에 나는 J에게 함께 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함께 살면 덜 무섭고 돈도 반으로 줄 테니까. J도 그 나름대로 원가족들과 30여 년을 함께 살았던 터라 이제는 독립을 해볼까 하여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서로의 필요와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정이었다.


현실적인 이유들이 얽히고설킨 결정이었지만 막상 동거를 하기로 하니 나의 인정 욕구, 특히 허세가 활개를 쳤다.


나는 자주 남다르고 싶어 했다. 시험과 대학, 졸업, 취직 그다음엔 결혼과 육아가 될 예측 가능한 내 인생이 늘 심심했다. 별다른 흠 없이 수순대로 살아온 내 삶에 궤도 이탈이 필요했다. 그런 나에게 동거는 일생일대의 일탈이자 자랑이었다. 연애 다음 결혼이 아니라 어쩌면 맥 빠진 이별이 될지도 모를 회색지대로의 일탈. 동거 사실은 내 어깨를 잔뜩 으쓱하게 만들었다.

"애인이랑 동거하기로 했어요. 그게 뭐 별건가요(우쭐)"

동거 사실 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고 다니는 이 쿨함. 이 쿨함이 내게는 동거에 대한 로망이었는데 스스로의 쿨내에 취해 이맘때 나는 자주 동밍아웃 했다.


그런 나의 허세도 언젠가 허를 찔린 적이 있다. 회사 연구원 분과 식사를 할 때였다.

"명해님은 혼자 살아요?"

"아뇨. 실은 애인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뿌듯)"

"아, 네.. 음.. 그건 안 물어봤는데 굳이ㅋㅋ"

예리한 그는 나의 대답 뒤 (뿌듯)을 읽어냈다. 사사로운 사생활을 묻고 답할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캐묻지도 않은 동거 사실을 고백한 나는 허세 꼬리를 밟히고 크게 민망했다.


21세기 한국에서 동거를 보는 시선이 어떤지 모르겠다. 내 주위에도 이미 많은 커플이 공공연히 함께 살고 있고 말이다. 내 집 마련은커녕 넉넉한 전세 대출도 버거운 보통의 한국 여성 청년으로서 내게 동거는 로맨스 이전에 경제적, 안전적 이유의 선택지였다. 고루한 선입견으로 제외시키기엔 불가피한 선택지였고 말이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자주 굳이 동밍아웃을 남발했던 건 '처녀'가 아니라는 주홍글씨를 염려하고 지레 선수 친, 소심한 허세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혼전 동거를, 특히나 여성의 혼전 동거를 바라보는 선명한 선입견은 줄어들었을지라도 못내 씁쓸히 남아있는 그 희미한 시선을 나는 의식하고 내면화했다. 내 허세가 일탈을 가장한 불안이었음을 알아차리고 난 뒤부터야 나는 더 이상 동거 사실을 쿨한 척 떠벌리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내게 씌워진 시선을 인식하고야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흠, 그러고 보니 동거가 나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 준 건 사실이군.


ㅣ 작고 소중한 우리의 일상


그렇게 우리는 은평구의 어느 오래된 빌라에 살림을 꾸렸다. 둘이 모은 돈이 작고 귀여웠던 터라 욕심내지 않고 원룸에서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둘이서 살 공간이니 깔끔한 (대신 좁은) 신축 원룸보다는 좀 낡고 옵션이 없더라도 넓게 빠진 방을 찾았는데, 두 달여 발품을 팔다 꼭 마음에 드는 조건의 집을 구했다. 그 집은 한쪽 벽에 큰 창이 나 있어 볕이 잘 들어왔다. 볕이 잘 들어오고 바람도 잘 통하니 어둡고 답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쯤에 녹색 커튼을 달아 옷장도 가리고 푸른 숲처럼 꾸며야지, 꼭대기 층이니 바로 위의 작은 옥상에 텃밭도 가꿀 수 있겠다, 근처에 수영장도 있으니 새벽 수영도 함께 다니고. 함께 할 나날들을 꿈꾸며 그 작고 밝은 원룸은 우리의 새 보금자리가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안온하게 흘러갔다. 그 집은 여름이면 유난히 모기가 많았다. 그곳에서 나는 모기를 기가 막히게 잘 찾고 J는 모기를 기가 막히게 잘 잡는 재능을 발견했는데 우린 정말이지 환상의 복식조였다. 어느 밤엔 모기 12마리를 해치우고 팀워크에 감탄하며 잠이 들곤 했다. 그 해 여름이 가기 전 우린 원터치 모기장을 장만하고 밤낮으로 치고 걷기를 반복했다. 밤낮이 다른 우리는 스탠드 조명을 구입해 책상을 작업실 삼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고 겨울이면 추위를 핑계로 서로를 빈틈없이 껴안고 잠이 들었다.


이따금씩 그 원룸에서 덩치 큰 성인 둘이 2년을 어떻게 같이 살았나 싶다. 자기만의 방은커녕 침실이자 거실이자 서재이자 부엌이자 옷방인 한 뼘만 한 공간에서 말이다. 가끔은 화장실 창문을 열어두네마네, 이 치약은 다 썼네 남았네 하며 투닥거리기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각자의 공간이 생긴 신혼 때보다 이 원룸 시절이 덜 싸웠던 같다. 이 작은 공간에선 싸워도 문 쾅 닫고 들어갈 곳이라곤 화장실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던 것 같기도 하고. 덕분에 서로의 밑바닥은 조금 남겨두고 귀여운 수준에서 싸우며 서로 다른 생활양식을 맞춰나갔다. (결혼을 하고 집이 조금 넓어지고서야 새삼 치열하게 싸우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차차)


동거를 하며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데이트 비용과 퇴근길이었다. 동대문구와 분당구를 오가며 길 위에 뿌린 많은 돈과 시간이 우리의 공간이 생기며 확 줄었다. 이 점은 엄청난 장점이자 소소한 단점이었는데 따로 데이트 약속을 잡지 않고 언제든 집에서 볼 수 있으니 맨날 집에서만 보게 됐다. 나가봤자 은평구. 그래도 퇴근길에 J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저녁 먹자고 물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나날이었다. 불 켜진 집으로 되돌아오는 든든한 마음. 우리에겐 그저 서로를 껴안고 뒹굴거릴 시공간이 필요했음을 동거를 시작하며 새삼 깨달았다.


연애가 길어질수록 조금씩 무겁고 진지해지는 우리의 관계는 동거를 통해 의외로 약간의 가벼움을 되찾았다. 결혼이라는 무거운 관계보다 당장 오늘 저녁은 요리해 먹을까 시켜먹을까 고민하는 일상의 관계가 더 가볍고 평온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 가벼움은 전세계약이 유효한 2년까진 큰 결정을 미뤄도 된다는 유예기간 덕분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아주 현실적이고 약간 인위적으로 시작된 우리의 동거는 대게 평화롭고 자주 낭만적이고 가끔 치열하게 흘러갔다.


우리의 첫 홈 스위트홈, 원루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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