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18

제1부 인지혁명/ 4. 대홍수(122쪽~127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 지식의 나무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4. 대홍수


[필사와 단상]

4. 대홍수


땅늘보의 종말

호주 대형동물군의 멸종은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 행성에 남긴 최초의 굵직한 표식이었을 것이다. 이후 이보다 더욱 큰 생태 재앙이 이어졌는데, 이번 무대는 아메리카였다. 호모 사피엔스는 서반구 대륙에 최초로 도착한 인간 종이며 유일한 종이기도 했다. 시기는 약 16,000년 전, 즉 기원전 14,000년경이었다.

최초의 아메리카인은 걸어서 그곳에 도착했다. 당시 해수면은 걸어서 건너기 충분할 만큼 낮아서 시베리아 북동부와 알래스카 북서부가 육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도달하기가 쉬웠다는 말은 아니다. 여행은 힘들었고 아마도 호주로 배를 타고 가는 여정보다 더욱 고단했을 것이다 횡단을 하기 위해 사피엔스는 시베리아 북부 북극구건의 가혹한 날씨를 견뎌야 했다. 이 지방에서는 겨울에 해가 전혀 뜨지 않으며 기온이 영하 50도씨로 떨어질 때도 있다.

이전의 인간 종들은 북부 시베리아 같은 지역을 통과한 일이 없었다. 추운 날씨에 적응한 네안데르탈인들도 이보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훨씬 더 남쪽 지역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눈과 얼음이 땅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초원에 적응한 호모 사피엔스는 이후 독창적인 해법을 고안해 냈다. 추운 지방으로 이주한 사피엔스 무리들은 눈신발(눈에 빠지지 않도록 테니스 라켓 같은 것을 밑에 넓적하게 댄 신발-옮긴이), 그리고 바늘을 이용해 여러 겹의 모피를 단단히 꿰맨 효과적인 보온복을 만들었다. 이들은 새로운 무기와 세련된 사냥기술을 개발해 먼 북쪽에 있는 매머드들을 비롯한 대형 사냥감을 추적해 죽일 수 있었다. 보온복과 사냥기술이 개선되자 사피엔스는 얼어붙은 지역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이들이 북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의복, 사냥기술을 비롯한 생존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했다.

그런데 왜 이런 수고를 무릅썼을까? 도대체 왜 스스로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을까? 일부 무리는 전쟁, 인구 증가의 압박, 자연재해 때문에 북쪽으로 내몰렸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예컨대 동물성 단백질 같은 긍정적인 이유로 북쪽으로 이끌린 집단도 있었을지 모른다. 북극 땅은 순록이나 매머드처럼 군침이 도는 대형동물이 풍부했다. 매머드는 한 마리만 잡아도 엄청난 양의 고기(기온이 낮기 때문에 얼렸다 나중에 먹을 수도 있었다)와 맛있는 지방, 따뜻한 모피, 귀중한 상아를 제공하였다. 숭기르의 유적이 증언하듯, 매머드 사냥꾼들은 북쪽 동토에서 단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번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무리는 매머드와 마스토돈, 코뿔소, 순록을 쫓아 더 멀리 퍼져나갔다. 기원전 14000년쯤 이중 일부가 사냥감을 쫓아 시베리아 북동부에서 알래스카까지 가게 되었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이 신세계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매머드에게나 인류에게나 알래스카는 시베리아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빙하 때문에 알래스카에서 아메리카의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더 남쪽을 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소수의 고립된 개척자들뿐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12000년쯤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고 돔 더 쉬운 통로가 열렸다. 새로 열린 육로를 이용해서 인류는 떼를 지어 남쪽으로 이동했고,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원래는 대형동물을 사냥하는 데 적응했던 터였지만 이들은 곧 극히 다양한 기후와 생태계에 적응했다.

시베리아인의 후예들은 미국 동부의 울창한 숲, 미시시피 삼각주의 늪지대, 멕시코의 사막, 중미의 찌는 듯한 밀림에 정착했다. 아마존 강 유역의 세계에 둥지를 틀었는가 하면 안데스 산맥의 골짜기나 아르헨티나의 대초우언에 뿌리를 내리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단 1천 년이나 2천 년 만에 일어났다. 기원전 10000년이 되자 인류는 미 대륙 최남단의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에까지 정착했다.

인류의 이전 진격전은 호모 사피엔스의 뛰어난 창의력과 적응력을 증언한다. 다른 동물은 이토록 극단적으로 다양한 서식지들에 사실상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상태로 그토록 빨리 이주한 예가 전혀 없다.

사피엔스의 미 대륙 정착 과정은 평화롭지 않았다. 사피엔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희생자들의 흔적이 길게 남았다. 14,000년 전 미대륙의 동물군은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웠다. 최초의 아미레카인들이 알래스카에서 캐나다의 초원과 미국 서부로 남하했을 때 마주친 동물들 중에는 매머드, 마스토돈, 곰 크기의 설치류, 말과 낙타 떼, 대형 사자, 오늘날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대형동물 수십 종이 있었다. 그중에는 무시무시한 검치고양이(긴 칼 같은 이빨을 지녔다), 무게가 8톤이고 키가 6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땅늘보도 있었다. 남미에는 이보다 더욱 이국적이고 기묘한 대형 포유류, 파충류, 조류가 살고 있었다. 미 대륙은 진화의 거대한 실험실로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는 알려지지 않은 동식물이 진화하고 번성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사피엔스가 도착한 지 2천 년이 지나지 않아 이들 유일무이한 종 대부분이 사라졌다. 오늘날의 추정에 따르면, 그 짧은 기간 동안 북미에서 대형동물 47속 중 34속이 사라졌다. 남이에선 60속 중 50속이 사라졌다. 3천만 년 넘게 번성하던 검치고양이도 멸종했고, 대형 땅늘보, 대형 사자, 미국 토종의 말과 낙타, 대형 설치류와 매머드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이보다 작은 포유동물, 파충류, 조류 수천 종을 포함해 곤충과 기생충까지도 멸종했다. 매머드가 사라지면서 매머드에게 기생하던 모든 진드기 종도 함께 없어졌던 것이다.

고생물학자와 동물고고학자들-동물의 유해와 유적을 조사 연구하는 사람들-은 수십 년에 걸쳐 미 대륙의 초원과 산악을 샅샅이 훑으며 고대 낙타 뼈 화석과 대형 땅늘보의 석화된 변을 찾아보았다. 찾던 것을 발견하면, 조심스럽게 포장해서 실험실로 보냈다. 실험실 연구원들은 모든 뼈와 분석(糞石, 코프롤라이트, 화석화된 변을 지칭하는 기술용어-옮긴이)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시기를 측정한다. 이런 분석의 결과는 언제나 같다. 가장 신선한 변과 가장 가까운 시기의 낙타 뼈는 인류가 미 대륙에 밀려오던 시기, 다시 말해 대략 기원전 12000~9000년 사이의 것으로 드러났다. 이보다 가까운 시기의 변이 발견된 지역은 카리브해 제도의 섬. 특히 쿠바와 히스파나올라 밖에 없다. 이곳에서 발견된 땅늘보의 석화된 변은 기원전 5000년쯤의 것이었다. 인간이 어찌어찌 카리브래흘 건너서 문제의 대형 섬 두 곳에 처음 정착한 바로 그 시기다.

이번에도 일부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면죄부를 주고 기후 변화 탓을 하려 든다(이런 주장을 하려면 이들은 서반구의 나머지 지역은 7천 년 동안 온난해졌지만 같은 시기 카리브해 제도의 기후는 어떤 신비한 이유로 인해 안정을 유지했다는 가정을 전제해야 한다). 하지만 미 대륙의 똥덩어리 문제는 회피할 수 없다. 우리가 범인이다. 진실을 외면할 방법은 없다. 설사 기후변화가 우리를 부추겼다 할지라도, 결정적 책임은 인류에게 있다.





이 책에서 유발하라리가 말하는 것들 대부분이 추측과 가설이다. 하지만 이것들 대부분이 설득력 있다. 특히 기후 변화와 함께 대형동물들을 멸종시킨 주범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것은 반박할 수 없다.


원시 사피엔스가 불을 사용하고, 도구를 만들고, 동물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눈신발을 만들어 신었던 것은 생존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다. 그 결과, 다른 종을 멸종시킨 주범이 됐지만, 그 덕에 현재 우리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현대 사피엔스는 우수한 뇌로 창의력, 사고력이 뛰어나 포식자로서 여전히 생태계 우두머리 자리에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습관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언제 우리를 멸종시킬지 모른다.'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말이 실제 가설로 책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긴장해야 한다.


♥ 창작도 아니고 겨우 필사일 뿐인데, 고운 발걸음 하시어 '댓글'과 '구독', '라이킷' 해 주시는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설'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음 필사는 설연휴가 끝난 후 이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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