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23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153쪽~159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32

6. 피라미드 건설하기 160

7. 메모리 과부하 190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208


[필사와 단상]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혁명의 희생자들

인간과 곡물 간의 파우스트적 거래가 우리 종의 유일한 거래는 아니었다. 양, 염소, 돼지, 닭과 관련해 또 하나의 타협이 이루어졌다. 야생 양을 뒤쫓아 유랑하던 무리는 자신들이 잡아먹는 양 집단의 구성을 점차 변화시켰다. 이 과정은 아마도 선별적 사냥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다 큰 양이나 늙고 병든 양만을 사냥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을 배우게 되었다. 그 지역의 양 떼가 장기적인 활력을 유지하도록 임신 가능한 암컷과 어린것들은 잡지 않았다. 다음 단계는 사자와 늑대, 라이벌 인간 무리를 내쫓아 양 떼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었을 테고, 그다음 단계는 통제와 보호가 쉽도록 양 떼를 좁은 골짜기에 몰아넣고 울타리를 치는 것이었으리라.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꼭 맞는 양을 만들기 위해서 좀 더 주의 깊게 선택하기 시작했다. 가장 공격적인 양, 인간의 통제에 가장 크게 반항하는 양을 먼저 도살했다. 비쩍 마르고 호기심이 많은 암컷도 마찬가지였다(호기심이 많아서 무리에서 멀리 떨어진 양을 양치기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양들은 더 살찌고 순하고 호기심이 줄어들었다. 그랬더니 짜잔! 메리에게는 어린 양 한 마리가 있었는데 메리가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다녔다.(미국 동요인 '메리에게는 어린 양이 있었네(mary had a little lamb)'에서 따온 표현이다-옮긴이).

그게 아니라면, 사냥꾼들이 양을 잡아 '입양해서' 키웠을 수도 있다. 먹을 것이 풍부한 시기에 살을 찌워서 궁핍한 시기에 잡아먹는 식으로 말이다. 어느 시기에 유달리 그렇게 키우는 양의 수가 많아졌다. 그중 일부는 성숙기에 이르로 새끼를 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가장 공격적이고 통제가 어려운 양을 제일 먼저 도축했다. 가장 순종적이고 마음에 드는 양은 오래오래 살면서 번식하도록 허락했다. 그 결과 가축화되고 순종적인 한 떼의 양이 생겼다.

이렇게 가축화된 양, 닭, 당나귀 등은 식량(고기, 우유, 달걀), 원자재(가죽, 양모), 근력을 공급했다. 이제껏 인간의 힘으로 해오던 수송, 쟁기질, 곡식 빻기 등을 동물에게 넘기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대부분의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식물 재배에 주력했고, 동물을 키우는 것은 2차적 활동이었다. 하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동물 착취에 기반한 새로운 종류의 사회가 등장했다. 바로 목축민 부족이었다.

인류가 세상에 퍼지면서, 이들이 가축화한 동물도 함께 퍼졌다. 1만 년 전에는 몇백만 마리 되지 않는 양, 소, 염소, 돼지, 닭이 아프로아시아의 몇 되지 않는 좁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 반면 오늘날 세계에는 10억 마리의 양, 10억 마리의 돼지, 10억 마리 이상의 소 250억 마리 이상의 닭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도처에 퍼져 있다. 가축화된 닭은 역사상 가장 널리 퍼진 가금류다. 지구에 가장 널리 퍼져있는 대형 포유류를 순서대로 꼽으면 사람이 첫째이고 2, 3, 4위가 가축화된 소, 돼지, 양이다.

불행하게도 진화적 관점은 성공의 척도로서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뿐,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아마도 진화적 성공의 사례이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동물의 가축화는 일련의 야만적 관행을 기반으로 이뤄졌고, 관행은 수백 수천 년이 흐르면서 더욱 잔인해졌다. 야생 닭의 자연 수명은 7~12년이고 소는 20~25년이다. 대부분의 야생 닭과 소는 그 이전에 죽었지만, 상당히 오래 살 가능성도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축화된 닭과 소는 몇 주 내지 몇 개월 만에 도살당한다. 그것이 경제적 관점에서 가장 적절한 도살 연령이기 때문이다(생후 3개월이면 몸무게가 최대가 되는 수탉을 3년씩 먹여 살릴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산란용 닭, 젖소, 짐을 끄는 동물은 오래 살도록 놔두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동물은 자신의 욕망 및 충동과는 전혀 맞지 않는 생활방식에 복종해야 한다. 가령 황소는 채찍을 휘두르는 유인원이 메어준 멍에를 쓰고 수레나 쟁기를 끄는 것보다는 널따란 초원에서 다른 황소 및 암소와 어슬렁거리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황소와 말, 당나귀와 낙타를 순종적인 짐끌이 동물로 바꾸려면, 이들의 자연적 본능과 사회적 유대를 파괴하고 공격성과 성적 특질을 억누르고 행동의 자유를 빼앗아야 했다. 농부들은 동물을 울타리 안에 가두고, 마구와 굴레를 채우고, 채찍과 소몰이막대로 훈련시키고, 신체 일부를 자르는 기술을 발달시켰다. 길들이는 과정에는 거의 대부분 수컷의 거세가 포함된다. 그러면 수컷의 공격성이 억제되고, 인간이 해당 동물 무리의 번식을 선별적으로 조절하기 좋다.

뉴기니의 수많은 부족사회에서 부를 가늠하는 전통적 기준은 보유한 돼지의 숫자였다. 북부 뉴기니 사람들은 돼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돼지 코에서 큼지막한 살덩이를 잘라낸다. 그러면 돼지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을 때마다 심각한 통증을 느낀다. 돼지는 냄새를 맡지 못하면 먹을거리를 찾지 못할 뿐 아니라 길조차 찾지 못하므로, 그렇게 절단된 녀석들은 인간 주인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뉴기니의 다른 지역에서는 돼지의 눈을 파내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관행이다.

낙농산업은 동물을 자기들 뜻대로 휘두르기 위한 수단들을 보유하고 있다. 암소, 염소, 양은 새끼를 낳은 다음에야, 그리고 새끼가 젖을 빠는 동안만 젖을 생산한다. 그러니 동물 젖을 계속 얻으려면 젖을 빨 새끼가 있어야 하고, 이들 새끼가 젖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역사상 가장 널리 쓰인 방법은 출생 직후 새끼를 도살하고 어미의 젖을 가능한 한 오래 짜낸 뒤 다시 임신시키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다. 오늘날의 수많은 낙농 농가에서 젖소는 약 5년을 산 뒤 도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5년 동안 젖소는 거의 항상 임신 중이며, 출산한 지 60~120일 내에 또다시 수태한다. 우유의 최대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송아지는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에게서 떼어내진다. 암송아지라면 다음 세대의 젖소로 길러지고, 수송아지는 육류 산업에 넘겨진다.

또 다른 방법은 새끼들을 어미 가까운 곳에 두면서 젖을 너무 많이 빨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책략이 사용된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새끼가 젖을 빨게 두었다가 젖이 나오기 시작하면 어미에게서 떼어내는 것이다. 이 방법은 어미와 새끼 양쪽의 저항을 부른다. 일부 양치기 부족은 새끼를 도살하고 살코기를 먹은 다음 새끼의 가죽에 속을 채워 박제하는 관습이 있었다. 박제된 새끼를 어미에게 들이밀어 우유 생산을 촉진하는 것이다.

수단의 누에르족(수단 남부 나일강변에서 목축을 주로 하는 부족-옮긴이)은 친숙하고 생생한 냄새가 나도록 어미의 소변을 박제 송아지에게 묻히기까지 했다. 이 부족의 또 다른 기법은 송아지의 입가에 가시로 만든 띠를 두르는 것인데, 가시에 찔린 어미는 새끼가 젖을 빠는 것을 막게 된다. 사하라 사막에서 낙타를 키우는 투아레그족은 새끼의 코에 구멍을 내거나 코 일부를 잘라내는 방법을 썼다. 그러면 새끼는 코가 아파서 젖을 많이 먹지 못하게 된다.

모든 농경사회가 이처럼 키우는 가축에게 잔인했던 것은 아니었다. 가축이 된 일부 동물의 삶은 매우 안락하였다. 털을 얻기 위한 양, 애완용 개와 고양이, 군마, 경주마는 편안한 삶을 누리는 일이 많았다.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는 총애하던 말 인키타투스에게 집정관직을 내리려고 했다고도 전한다. 역사를 통틀어 양치기와 농부는 자신의 동물에게 애정을 보였으며 매우 잘 돌보았다. 마치 많은 노예 소유주가 자신의 노예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많은 왕과 예언자가 스스로를 목자라고 부르며 자신이나 신이 백성을 돌보는 것을 양치기가 자신의 양 떼를 돌보는 것에 비유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하지만 양치기가 아닌 양 떼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다수의 가축화된 동물에게 농업혁명은
끔찍한 재앙이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들의 진화적 '성공'은 무의미하다. 아마도 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살을 찌우다가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되어 짧은 삶을 마감하는 송아지보다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한 야생 코뿔소가 더 만족해야 할 것이다. 만족한 코뿔소는 자신이 자기 종족의 마지막 개체라는 데 아무 불만이 없다. 송아지의 종이 수적으로 성공한 것은 개별 개체들이 겪는 고통에 그다지 위안이 되지 못한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우리가 밀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의 이야기를 조사할 때는 순수한 진화적 관점이 타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소나 양, 사피엔스처럼 각자 복잡한 기분과 감정을 지닌 동물의 경우, 진화적 성공이란 것이 개체의 경험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종이 집단적으로 힘을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혁명의 희생자들, 지금까지의 필사 과정 중 읽기 가장 힘든 부분이다.

돼지코 살덩이를 잘라내고, 눈을 파내고, 낙타 코에 구멍을 내고, 잘라내고, 송아지 입가에 가시 띠를 두르고....., 우리 '종'의 잔인성에 소름이 돋는다.

지금 마음 같으면 냉장고에 있는 우유 다 쏟아버리고, 양고기집 절대 안 갈 것이고, 삼겹살에 소주 찾는 일 절대 없을 거 같지만, 내일 마트에 가서 정육 할인코너 기웃댈 것이 뻔하다.


혁명 하나에 뒤따라오는 불편한 것들은 현대에도 존재한다.

앞으로도 어떠한 혁명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모른다. 아울러 혁명에 따른 불편한 것들은 분명 또 존재할 것이며, 그 불편한 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갑자기 두렵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되는 거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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