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24

제2부 농업혁명/ 6. 피라미드 건설하기(160~165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32

6. 피라미드 건설하기 160

7. 메모리 과부하 190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208


[필사와 단상]

6. 피라미드 건설하기


농업혁명은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사건 중 하나다. 일부에서는 그 덕분에 인류가 번영과 진보의 길에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파멸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일대 전환점이었다는 것이다. 이 길이 어느 방향으로 이끌었든 간에, 돌아갈 길은 없었다. 농경 덕분에 인구가 너무나 급격하고 빠르게 늘었기 때문에, 수렵과 채집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농경사회는 하나도 없었다. 농업으로의 이행이 일어나기 전인 기원전 10000년경 지구에는 5백만~8백만 명의 방랑하는 수렵채집인이 살고 있었다. 기원후 1세기가 되자 수렵채집인은 1백만~2백만 명 밖에 남지 않았으나(주로 호주, 미 대륙, 아프리카에 있었다). 같은 시기 농부들의 숫자는 2억 5천만 명으로 수렵채집인을 압도했다.

농부 대다수는 영구 정착지에 살고 있었고, 방랑하는 양치기 부족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 곳에 정착을 하면서 사람들의 세력권은 대부분 극적으로 좁아졌다.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수십, 수백 제곱 킬로미터에 이르는 영토에서 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들에게 '본거지'란 언덕과 시내, 숲과 열린 하늘을 포함하는 땅 전체를 말랬다. 하지만 농부는 종일 작은 밭이나 과수원에서 일했고, 가정생활은 나무나 돌, 진흙으로 지어져 면적이 몇십 제곱미터에 불과한 비좁은 구조물, 즉 집에서 이뤄졌다. 전형적인 농부는 이 구조물에 매우 강한 애착을 느꼈다. 이것은 건축학뿐 아니라 심리에도 큰 영향을 미칠 커다란 혁명이었다. 이리하여 '내 집'에 대한 집착과 이웃으로부터의 분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자기중심적이 된 존재의 심리적 특징이 되었다.

새로운 농업 영토는 고대 수렵채집인의 것보다 훨씬 더 좁았을 뿐 아니라 훨씬 더 인공적이었다. 수렵채집인들은 불을 사용한 것을 제외하면 자신들이 떠도는 땅에 의도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거의 없었다. 이와 달리 농부들은 자신들이 주변 자연환경에서 힘들여 떼어낸 인공적인 섬에 살았다. 이들은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물길을 파고 들판에서 돌을 제거하고 집을 짓고 밭고랑을 갈고 유실수를 줄지어 심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적 거주지는 오로지 인간과 '그들의' 식물과 동물만을 위한 것이었고, 성벽과 산울타리로 방어벽을 친 경우가 흔했다. 농부의 가족들은 골치 아픈 잡초와 야생동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조치를 취했고, 그런 것들이 침입하면 퇴치했다. 만일 그런 것들이 계속 살아남으면, 그것들을 적대시하는 인간들은 박멸방법을 모색했다. 집 주위로는 특히 강력한 요새를 구축했다. 농업혁명의 여명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십억 명의 인간이 나뭇가지와 파리채, 신발과 독성 스프레이로 무장하고 인간이 사는 곳으로 끊임없이 침투하는 부지런한 개미, 은밀한 바퀴벌레, 대담한 거미, 잘못 들어온 딱정벌레 등과 가차 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간이 만든 고립된 영토는 이처럼 매우 좁았고, 그 주위는 길들여지지 않은 광활한 자연이 둘러싸고 있었다. 지구 표면은 약 5억 1천만 제곱킬로미터인데 이 중 1억 5,500만 제곱킬로미터가 육지다. 비교적 최근에 해당하는 기원후 1400년까지만 해도 압도적 다수의 농부들은 본인들이 기르는 동식물과 함께 모두 1,100만 제곱킬로미터, 즉 지표면의 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좁디좁은 지역이 이후 역사가 펼쳐지는 무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인공 섬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심각한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집과 목초지와 곡창지대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이 축적되었다. 쉽게 옮길 수 없는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은 한 장소에 매였다. 우리 눈에 고대 농부는 찢어지게 가난한 것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그의 가족이 소유한 인공물은 수렵채집인의 한 부족 전체가 지닌 것보다 많은 것이 보통이었다.



미래의 도래

농경시대에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시간은 확장되었다. 수렵채집인은 다음 주나 다음 달에 대해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농부들은 미래의 몇 해나 몇십 년이라는 세월 속으로 상상의 항해를 떠났다.

수렵채집인들은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데다 먹을거리나 소유물을 저장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도 모종의 사전 계획을 도모한 것은 분명하다. 쇼베, 라스코, 알타미라 동굴의 예술품을 만든 사람들은 작품이 수십 수백 세대 이어지도록 의도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회적 동맹과 정치적 라이벌 관계는 장기적인 성격을 띤다. 은혜를 갚거나 복수를 하는 데는 흔히 여려 해가 걸린다. 그럼에도 수렵채집인의 생업경제에서 장기 계획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수렵채집인들은 그 덕분에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은 걱정해 봐야 무의미했다.

농업혁명 덕에 미래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농부들은 언제나 미래를 의식하고 그에 맞춰서 일해야 했다. 농업경제의 생산 사이클은 계절을 기반으로 했다. 몇 개월에 걸쳐 경작을 하고 나면 짧고 뚜렷한 수확기가 뒤따랐다. 풍성한 수확을 모두 끝마친 날 밤 농부들은 마음껏 축하를 할 수 있었지만, 그로부터 한두 주일 이내에 다시 새벽에 일어나 들판에서 온종일 일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식량은 오늘, 다음 주, 다음 달 먹을 것까지 충분했지만 이들은 다음 해와 그다음 해 먹을거리까지 걱정해야 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생산의 계절적 사이클뿐 아니라 농업 자체의 근본적 불확실성에도 뿌리를 두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을은 아주 제한된 종류의 재배작물과 가축을 기르며 살았기 때문에 가뭄, 홍수, 병충해에 취약했다. 농부들은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해야 비축분을 만들 수 있었다. 저장고에 곡물이, 지하실에 올리브오일 통이, 식료품 저장실에 치즈가, 서까래에 소시지가 매달려 있지 않으면 흉년에 굶어 죽을 위험이 있었다. 그리고 흉년이나 흉작은 늦든 이르든 오게 마련이었다. 나쁜 시절이 오지 않을 것이란 전제하에 사는 농부는 오래 살지 못했다.

그 결과 농업의 도래와 함께 비로소 인간의 마음속 극장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주연배우가 되었다. 비가 내려야만 논밭에 물을 댈 수 있는 지역에서 우기의 시작은 걱정의 시작을 의미했다. 매일 아침 농부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바람의 냄새를 맡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구름 맞나? 비가 제때 올까? 충분히 내릴까? 폭풍우가 몰아쳐서 파종한 씨앗들을 씻어가거나 묘목을 쓰러트리지는 않을까? 그동안 유프라테스, 인더스, 황하 유역의 농부들은 강물의 수위를 점검했다. 이들의 두려움도 다른 이들에 못지않았다. 이들에게는 강물이 불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고지대에서 씻겨 내려온 비옥한 흙이 퍼질 수 있고 광대한 관개 시스템에 물을 댈 수 있었다. 하지만 홍수가 너무 심하거나 시기가 잘못되면 가뭄만큼이나 들판을 모두 망칠 수 있었다.

농부들이 미래를 걱정한 것은 단순히 걱정할 이유가 더 많았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많은 밭을 일구고 관개용 수로를 더 파고 더 많은 씨를 뿌릴 수 있었다. 근심하는 농부는 여름철 수확개미만큼이나 정신없이 바쁘게 일했다. 자녀들과 손주들이 그 열매에서 기름을 짤 수 있도록 땀 흘려 올리브나무를 심었고, 오늘 간절히 먹고 싶은 식량을 겨울이나 내년을 위해 참고 비축해 두었다.

농사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대규모 정치사회체제의 토대였다.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들어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왕궁과 성채, 기념물과 사원을 지었다.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마지막 문장은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인공지능이 삶의 많은 부분을 대신하고 있는 지금도,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서민층 노동자, 각계각층에서 발에 땀나도록 뛰는 사람들, 그들의 수고로 기업은 부를 쌓고, 엘리트 집단은 호위호식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1부~4부로 구성된『사피엔스』, 단순히 인간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장마다 현대인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 겨우 2부에 들어섰지만 알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많은 부분이 어떤 확실한 기록이나 증거가 없는 가설이다. 하지만 고개 끄덕이며 계속 읽을 수 있는 것은 설득력 있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어렵다는 편견으로 2년을 책장에 꽂아놓기만 했던 책,

아직 필사 초반이지만 나를 칭찬한다. '참 잘 시작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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