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농업혁명/ 6. 피라미드 건설하기(165~ 173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32
6. 피라미드 건설하기 160
7. 메모리 과부하 190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208
[필사와 단상]
6. 피라미드 건설하기
농부들이 생산한 잉여식량이 새로운 수송 기술과 합쳐지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더 큰 마을을 이룰 수 있었고, 그 마을은 읍이 되었고, 드디어 도시가 되었으며, 새로운 왕국과 상업망이 이 모두를 하나로 묶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잉여식량과 개선된 수송 수단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설사 한 사람이 같은 마을 사람 1천 명이나 같은 왕국 사람 1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어떻게 토지와 물을 나눌지, 불화와 분쟁을 조정할지, 가뭄이나 전쟁에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분쟁이 번지게 마련이다. 창고가 가득 차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역사상의 전쟁과 혁명 대부분은 식량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혁명의 선봉에 선 것은 굶주린 농부가 아니라 부유한 법률가들이었다.
고대 로마 공화국은 기원전 1세기에 국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때는 귀중품을 가득 실은 지중해 전역의 선단들이 그 전 선조들은 상상도 못 했을 정도로 로마인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주던 시기였다. 하지만 로마의 정치질서가 붕괴해서 일련의 치명적 내란이 일어난 것 또한 부가 절정에 이르렀던 바로 이 시점이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는 국민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만한 능력이 있었지만 국가는 해체되고 끔찍한 유혈극이 벌어졌다.
이런 재난들의 근원에 깔린 문제점은 인류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불과 수십 명으로 구성된 작은 무리에서 진화해 왔다는 사실이다. 농업혁명이 일어난 뒤 도시와 왕국과 제국이 출현하는 데는 불과 몇천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규모로 협력하는 본능이 진화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생물학적 협력본능이 부족함에도 수렵채집기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은 공통의 신화 덕분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협력은 느슨하고 제한적이었다. 각각의 사피엔스 무리는 모두가 독립적인 삶을 영위했고, 필요의 대부분을 스스로 충족하는 형태를 계속 유지했다. 만일 2만 년 전에 사회학자가 있었다면, 농업혁명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그로서는 신화의 영향력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고대의 정령과 부족 토템에 대한 이야기들은 5백 명의 사람들이 서로 조가비를 교역하고 이상한 축제를 거행하고 네안데르탈인 무리를 쓸어내기 위해 힘을 합치게 만들 만큼 강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고대의 사회학자는 신화에는 수백만 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매일 협력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신화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들, 조상의 땅, 주식회사 등등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꼭 필요한 사회적 결속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본능이 늘 그렇듯 달팽이처럼 서서히 진화하고 있는 동안, 인간의 상상력은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갔다.
기원전 8500년경 지구상에서 가장 큰 정착지는 여리고 같은 마을로, 주민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기원전 7000년 소아시아의 읍邑인 차탈휘유크의 주민은 5천~1만 명이었다.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을지 모른다. 기원전 5000년~4000년 사이에 나일강 유역 초승달 지역에는 인구 수만 명의 도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 도시는 모두 그 주변의 수많은 촌락들을 지배했다. 기원전 3100년에는 하부 나일강 유역 전체가 통합되면서 최초의 이집트 왕국이 생겼고, 그 파라오들은 수천 제곱킬로미터에 사는 수십만 명의 백성을 다스렸다. 기원전 2250년경 사르곤 대제는 최초의 제국인 아카드를 건설했는데, 1백만 명이 넘는 신민과 5,400명의 상비군을 지닌 제국이었다. 기원전 1000년에서 500년 사이 중동에서 최초의 거대 제국들이 등장했다.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이들은 수백만 명의 신민을 다스렸고 수만 명의 군대를 거느렸다. 기원후 1년 로마는 지중해 분지를 통일 했다. 진이 4천만 명의 백성에게서 걷은 세금은 수십만 명의 상비군과 10만 명이 넘는 관료를 유지하는 데 쓰였다.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에는 최대 1억 명의 백성에게서 세금을 걷었다. 그 수입으로 25만~50만 명의 상비군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쓰이는 도로망, 오늘날까지도 대형 행사가 열리는 극장과 원형극장을 만들고 유지했다.
이것은 물론 인상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이집트의 파라오 제국이나 중국의 진 제국에서 운영했던 '대량 협력망'에 대해 장밋빛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 '협력'이란 말은 매우 이타적으로 들리지만 항상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평등주의적인 경우는 드물었다. 인간의 협력망은 대부분 압제와 착취에 적합하도록 맞춰져 있었다.
급성장하는 협력망에 돈을 댄 것은 농부들의 소중한 잉여식량이었다. 세금징수자가 황제의 펜을 한번 휘두르면 이들은 한 해 땀 흘린 농사의 소출 전체를 빼앗기고 절망해야 했다. 명성 높은 로마의 원형극장들은 노예들이 건설한 경우가 많았다. 원형극장은 부유하고 게으른 로마인들이 노예 검투사들의 싸움을 즐길 수 있도록 세워졌다. 감옥이나 강제수용소조차도 협력망인데, 이것이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수천 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행동을 조율하기 때문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진 제국과 로마 제국에 이르는 모든 협력망은 '상상 속의 질서'였다, 이들을 지탱해 주는 사회적 규범은 타고난 본능이나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공통의 신화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신화는 어떻게 해서 제국 전체를 지탱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미 그런 사례를 하나 검토했다. 푸조 사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화 두 개를 살펴보자. 하나는 기원전 1776년경의 함무라비 법전이다. 이는 고대 바빌로니아인 수십만 명의 협력 메뉴얼 역할을 했다. 또 하나는 1776년의 미국 독립선언문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현대 미국인 수억 명의 협력 메뉴얼로 기능하고 있다.
기원전 1776년 바빌론은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였다. 1백만 명이 넘는 국민을 거느린 바빌로니아 제국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을 것이다.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의 대부분을 다스렸는데 오늘날 이라크의 대부분과 시리아, 이란의 일부가 포함된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바빌론의 왕은 함무라비다. 그의 명성은 그의 이름을 딴 함루라비 법전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법조문과 판례 모음집으로서, 그 목표는 함무라비를 정의로운 왕의 역할모델로 제시하는 데 있었다. 또한 바빌로니아 제국 내에 좀 더 통일된 법체계를 확립하는 토대 역할을 하며, 후손들에게 정의란 무엇이며 정의로운 왕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후손들은 그 가르침에 귀 기울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식 엘리트와 관료 엘리느는 그 경전을 추앙했고, 심지어 함무라비가 죽고 그의 제국이 영락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도 견습 필경사들은 계속해서 이것을 베껴 썼다. 그러므로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회질서를 이해하는 좋은 자료다.
이 문서의 첫머리는 메소포타미아의 만신전 중에서도 주신인 아누, 엔릴, 마르두크 신이 함무라비에게 "정의가 지상에서 널리 퍼지고, 사악하고 나쁜 것을 폐지하며,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것을 방지하는" 임무를 주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다음에는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경우 그 판결은 이러이러하다"는 상투적 문구와 함께 약 3백 건의 판결 목록을 나열하고 있다. 판결 196~199번과 209~214번은 다음과 같다.
196. 만일 귀족 남자가 다른 귀족 남자의 눈을 멀게 한다면 그의 눈도 멀게 만들라.
197. 만일 귀족 남자가 다른 귀족 남자의 뼈를 부러뜨린다면 그의 뼈도 부러뜨려야 한다.
198. 만일 그가 평민의 눈을 멀게 하거나 뼈를 부러뜨린다면 그는 은 60세겔을 저울에 달아 피해자에게 주어야 한다.
199. 그가 만일 귀족 소유 노예의 눈을 멀게 하거나 뼈를 부러뜨린다면 노예의 가치의 절반을 은으로 저울에 달아 지불해야 한다.
209. 만일 귀족 남자가 귀족 여성을 때려서 그녀의 아기가 유산되었다면 태아에 대한 보상으로 은 10 세겔을 저울에 달아 지불해야 한다.
210. 만일 맞은 여성이 사망한다면 그 남자의 딸을 죽여야 한다.
211. 만일 그가 임신 중인 평민 여성을 때려서 유산시킨다면 은 5세겔을 달아 주어야 한다.
212. 만일 그 여성이 사망한다면 그는 은 30세겔을 저울에 달아 주어야 한다.
213. 만일 그가 귀족의 여성 노예를 때려서 그 태아를 유산시킨다면 그는 은 2세겔을 저울에 달아 주어야 한다.
214. 만일 그 여성 노예가 죽는다면 그는 은 20세겔을 저울에 달아 주어야 한다.
판결을 열거한 뒤 함무라비는 다시 한번 선언한다.
"이것이 유능한 왕 함무라비가 내린 공정한 판결이다. 함무라비는 여기에 따라서 자신의 영토를 진리의 길에 따라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인도했다....... 나는 함무라비, 고귀한 왕이다. 나는 엔릴 신이 내게 보살피라고 맡긴 백성, 마르두크 신이 내게 이끌 책임을 맡긴 백성을 부주의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노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내가 이만큼 당했으면 당신도 이만큼 당해야 한다'는 보복의 정당성(?), 생각하면 섬뜩한 말이다. 위에 열거된 함무라비 법전 내용이 딱 이것이다. 언뜻보면 정당한 거 같지만 '인권 평등'이 무시돼 있는 불공정한 판결이다.
우리의 삶에도 은근히 퍼져 있는 불합리한 규칙 규율들이 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것을 따르고 있다. 그렇다고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맞는 비유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푸조의 신화, 상상 속의 질서에 길들여진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