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농업혁명/ 6. 피라미드 건설하기(178~181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32
6. 피라미드 건설하기 160
7. 메모리 과부하 190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208
[필사와 단상]
6. 피라미드 건설하기
아마도 적잖은 수의 독자는 앞선 문단들을 읽으며 의자에서 몸을 비비 꼬았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반응하도록 교육받았다. 함무라비 법전이 신화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만, 인권도 신화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만일 인권이 오직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차리면, 사회가 붕괴할 위험이 있지 않은가?
볼테르는 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하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는 마라. 그가 밤에 날 죽일지 모르니까." 함무라비는 자신의 위계질서 원리에 대해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고, 토머스 제퍼슨 역시 인권에 대해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하늘이 부여한 권리가 없다. 거미나 하이에나나 침팬지에게 그런 권리가 없듯이.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인에게 하지는 마라. 그가 밤에 우리를 죽일지 모르니까.
이런 두려움은 타당하다. 자연의 질서는 안정된 질서다. 설령 사람들이 중력을 믿지 않는다 해도 내일부터 중력이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이와 반대로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 중 일부는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 군대, 경찰, 범원, 감옥은 사람들이 상상의 질서에 맞춰 행동하도록 강제하면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어떤 바빌론 사람이 이웃의 눈을 멀게 했다면 그에게 '눈에는 눈' 법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모종의 폭력이 필요하다. 1860년 미국인 대다수가 아프리카인 노예 또한 사람이며 자유권을 누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 남부 주들이 이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 피비린내 나는 내란을 치러야만 했다.
하지만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일부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정치가 탈레랑은 루이 16세 치하에서 카멜레온 같은 경력을 쌓은 인물이었다. 그는 혁명 정부와 나폴레옹 체제에 봉사했으며, 때맞춰 충성의 대상을 바꿔서 말년에는 복권된 군주제를 위해서 일했다. 그는 정부에서 수십 년간 일했던 경험을 이렇게 요약했다. "당신은 총검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깔고 앉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종종 단 한 명의 사제가 군인 1백 명 몫을 하곤 한다. 훨씬 더 싸고 효과적으로 더구나 총검이 아무리 효과적일지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휘둘러야 한다. 병사와 간수와 판사와 경찰이 스스로 신봉하지 않는 상상의 질서를 유지할 까닭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인간의 모든 집단행동 중에서 가장 조직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폭력이다. 어떤 사회의 질서가 군사력에 의해 지탱된다고 말하는 순간, "군대의 질서는 무엇이 유지하는가?" 하는 의문이 당장 떠오른다. 오로지 강요에 의해서만 군대를 조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소한 일부 지휘관과 병사는 신이든 명예든 조국이든 남성다움이든 돈이든 뭔가를 진심으로 신봉해야만 한다.
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질문은 사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 있는 자들에 관한 문제이다. 그들 스스로가 상상의 질서를 신봉하지 않는다면 남에게 그걸 강요하고 싶어 할 이유가 있을까? 냉소적인 탐욕 때문이라는 주장이 일반적으로 통용되지만, 아무것도 신봉하지 않는 냉소주의자는 탐욕스러울 가능성이 적다. 호모 사피엔스의 객관적인 생물학적 필요를 충족하는 데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 욕구들을 충족한 뒤에는 더 많은 돈을 들여 피라미드를 건설하거나, 세계 여기저기서 휴가를 보내거나, 선거운동에 자금을 대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테러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주식시장에 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겠으나, 진정한 냉소주의자에게는 이 모든 일이 완전히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이다.
냉소주의학파(견유학파)를 창시한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통 속에서 살았다. 한 번은 그가 햇볕을 쬐며 쉬고 있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왔다. 대왕은 뭔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냉소주의자는 막강한 정복자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소 조금만 옆으로 비켜 주시오. 당신이 햇볕을 막고 있어요." 냉소주의자들이 제국을 세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상상의 질서가 오로지 많은 사람이 - 특히 엘리트와 보안대가 - 진정으로 이것을 신봉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는 이유도 같다. 만일 그 주창자 대다수가 인仁과 예禮와 효孝를 신봉하지 않았다면, 유교는 2천 년 넘게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과 의원 대다수가 인권을 신봉하지 않았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250년간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투자자와 은행가 대다수가 자본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면, 현대 경제 시스템은 단 하루도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