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28

제2부 농업혁명/ 6. 피라미드 건설하기(181~189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32

6. 피라미드 건설하기 160

7. 메모리 과부하 190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208


[필사와 단상]

6. 피라미드 건설하기


교도소의 담장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는 위대한 신이나 자연법에 의해 창조된 객관적 실재라고 늘 주장해야 한다. 사람이 평등하지 않은 것은 함무라비가 그렇다고 해서가 아니라 엔릴과 마르두크가 그렇게 명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평등한 것은 토머스 제퍼슨이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신이 그렇게 창조했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이 최선의 경제체제인 것은 애덤 스미스가 그렇다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불변의 자연법칙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철저히 교육시켜야 한다. 그들이 태어나자마자 세상 만물에 스며들어 있는 상상의 질서 원리들을 끊임없이 주지 시켜야 한다. 그 원리는 요정 이야기, 드라마, 회화, 노래, 예절, 정치 선전, 건축, 요리법, 패션에도 스며들어 있다. 예를 들어, 요즘 사람들은 평등을 믿기 때문에 한때 노동계급의 복장이었던 청바지를 부잣집 아이들도 유행 삼아 입는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계급 차이를 신봉했기 때문에 젊은 귀족이 농부의 작업복을 입는 경우는 없었다. 당시 '경'을 뜻하는 'Sir'이나 '마님'을 뜻하는 'Madam'이란 명칭은 귀족에게만 국한된 특권이었다. 종종 피를 대가로 흘리고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공손한 편지는 상대방의 신분과 관계없이 '친애하는 귀하께'의 뜻으로 'Dear Sir or Madam'으로 시작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상상의 질서가 정확히 어떻게 삶이라는 직물 속에 짜 넣어졌는지를 설명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나 지면의 제약 때문에 우리는 겉핥기만으로 만족해야 하겠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조직화하는 질서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은 세 가지이다.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상상의 질서는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하지만, 우리 주변의 물질적인 실재 세계 속에 짜 넣어질 수 있다. 심지어 돌로 구현될 수도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서구인은 개인주의를 신봉한다. 모든 인간은 개인이며, 그 가치는 다른 사람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개개인의 내부에 존재하는 눈부신 빛이 우리 삶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는다. 오늘날 선생과 부모는 아이들에게 같은 반 학생들이 놀리면 무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이 아는 것이니까.

이런 신화는 상상 속에서 뛰쳐나와 현대 건축에서 돌과 회반죽으로 구현된다. 현대의 이상적인 집은 여러 개의 작은 방들로 나뉘어 있다. 어린이들도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사적인 공간을 가져 최대한의 자율권을 지니도록 한다. 이런 사적인 방에는 거의 대부분 문이 달려 있다. 또한 어린이가 문을 닫고 잠그는 것을 관행으로 받아들이는 집이 많다. 심지어 부모도 노크를 하고 허락을 얻기 전에는 방에 들어갈 수 없다. 방은 아이의 취향대로 꾸며진다. 벽에는 록스타의 포스터가 붙어 있고 바닥에는 더러운 양말이 놓여 있다. 이런 공간에서 자라는 사람은 스스로를 '하나의 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는 밖에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퍼져 나온다고 말이다.

중세 귀족은 개인주의를 믿지 않았다. 사람의 가치는 사회적 위계질서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뭐라고 말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비웃음을 당한다는 것은 끔찍한 모욕이었다. 귀족들은 자녀들에게 그들의 훌륭한 이름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보호해야 한다고 다짐해 두었다. 중세의 가치체계는 현대 개인주의가 그러하듯이 상상의 자리를 떠나 중세 성의 돌에 섞여 들어가 스스로를 구현한다. 성에는 어린이(혹은 다른 누구라도)를 위한 개인 방이 거의 없었다. 중세 남작의 십대 아들에게는 성 2층에 자기 방이 있지 않았다. 사자왕 리처드나 아서 왕의 포스터를 벽에 붙이고 부모가 열 수 없는 잠금장치가 달린 문을 갖춘 방이 없었다. 아이는 큰 홀에서 다른 많은 젊은이들과 나란히 누워서 잤다. 그는 언제나 노출되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평할지를 항상 염두에 둬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사회적 위계질서 속에서 어떤 위치에 속하느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2.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삶은 규율하는 질서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 모든 사람은 기본의 상상의 질서 속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날 때부터 지배적인 신화에 의해 욕망의 형태가 결정되었다. 그 때문에 우리 개인의 욕망은 상상의 질서의 가장 중요한 방어물이다

예컨대 오늘날 서구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욕망은 여러 세기에 걸쳐 존재해 온 낭만주의, 민족주의, 자본주의, 인본주의 신화에 의해 형성되었다. 친구 사이에 충고할 때 흔히 '마음heart 내키는 대로 하라'고 말하지만, 사실 마음은 이중간첩으로서 당대의 지배적인 신화의 지시에 따르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는 권유 자체가 우리 마음에 새겨진 것은 19세기 낭만주의 신화와 20세기 소비자주의 신화의 결합을 통해서였다. 이를테면 코카콜라 사는 전 세계에서 다이어트 코크를 광고하면서 '다이어트 코크, 기분 좋은 일을 하라'는 문구를 내세웠다.

사람들이 가장 개인적 욕망이라고 여기는 것들조차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이다. 예컨대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흔한 욕망을 보자. 이런 욕망은 전혀 자연스럽지도, 당연하지도 않다. 침팬지 알과 수컷은 권력을 이용해 이웃 침팬지 무리의 영토로 휴가를 갈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엘리트들은 파리미드를 짓고 자신의 시선을 미라로 만드는 데 재산을 썼지만, 누구도 바빌론에 쇼핑하러 간다거나 페니키아에서 스키 휴가를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진정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향해 스스로를 활짝 열어야 하고, 다양한 관계들을 두루 맛보아야 하며, 평소와 다른 요리를 시식해봐야 하고, 다른 종류의 음악을 감상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이다. 이 모두를 실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반복되는 일상과 친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먼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냄새와 취향과 규범을 '경험'해볼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이 어떻게 나의 시야를 넓히고 내 인생을 바꾸었는가.' 하는 낭만주의적 신화를 되풀이해서 듣는다.

소비지상주의는 우리에게 행복해지려면 가능한 한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뭔가 부족하다거나 올바르지 않다고 느낀다면 상품(자동차, 새 옷, 유기농 식품)이나 서비스(집안일, 관계 요법, 요가 수업)를 구매해야 한다고 말한다. TV의 모든 광고는 어떤 물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면 우리 삶이 어떻게 나아진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작은 신화다.

다양성을 권하는 낭만주의는 소비지상주의와 꼭 들어맞는다. 양자의 결합은 현대 여행산업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무한한 '경험의 시장'을 탄생시켰다. 여행산업은 비행기표나 호텔 객실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판다. 파리는 도시가 아니고 인도는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경험이다. 그것을 소비하면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고, 인간으로서 잠재력이 실현되고, 더 행복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억만장자는 결혼생활이 곤경에 빠지면 아내를 데리고 파리로 값비싼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은 어떤 독립된 욕망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열렬한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부자는 관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바빌론으로 여행을 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아내가 항상 원하던 호화로운 무덤을 건설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 엘리트처럼, 대부분의 문화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피라미드 건설에 삶을 바쳤다. 문화에 따라 피라미드의 이름과 형태와 크기가 달라질 뿐이다. 피라미드는 수영장과 늘 푸른 잔디밭이 딸린 교외의 작은 집일 수도 있고, 전망이 끝내주는 고급 맨션 꼭대기층일 수도 있다. 애초에 우리로 하여금 그 피라미드를 욕망하도록 만든 신화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3.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설령 내가 초인적인 노력으로 스스로의 개인적 욕망을 상상의 질서의 속박에서 풀려나게 하는 데 성공하더라고, 나는 한 개인에 불과하다. 상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수백만 명의 낯선 사람에게 나와 협력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상상의 질서는 내 상상력 속에만 존재하는 주관적 질서가 아니라 수억 명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상호 주관적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객관' '주관' '상호 주관'이란 용어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객관적 현상은 인간의 의식이나 믿음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가령 방사능은 신화가 아니다. 방사능은 사람들이 그것을 발견하기 오래전부터 방출되고 있었고 사람들이 그 위험성을 믿지 않았을 때도 위험했다. 방사능의 발견자 중 한 사람인 마리 퀴리는 방사성 물질을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이것이 그녀의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녀는 방사능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지만, 결국 재생불량성 빈혈로 사망했다. 방사성 물지레 과다 노출되어서 발생하는 치명적 질병이다.

주관이란 한 개인의 의식과 신념에 따라 존재하는 무엇이다. 해당 개인이 그의 신념을 바꾸면 주관은 사라지거나 변화한다. 많은 어린이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상 속 친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가장의 친구는 그 어린이의 주관적 의식 내에서만 존재한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고 그 친구의 존재를 더 이상 믿지 않으면, 가상의 친구는 점차 사라진다.

상호 주관이란 많은 개인의 주관적 의식을 연결하는 의사소통망 내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단 한 명의 개인이 신념을 바꾸거나 죽는다 해도 그에 따른 영향은 없지만, 그물망 속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신념을 바꾼다면 상호 주관적 현상은 변형되거나 사라진다. 상호 주관적 현상이란 악의적인 사기나 하찮은 가식이 아니다. 방사능 같은 물리적 현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할 수 있다.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인 중 다수가 상호 주관적이다. 법, 돈, 신, 국가가 모두 그런 예다.

푸조는 그 회사 CEO의 상상 속 친구가 아니다. 수백만 명이 공유하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회사다. 그 CEO가 그 회사의 존재를 믿는 것은 임원들, 회사의 법률가들, 근처 사무실의 비서들, 은행의 출납계원들, 주식거래소의 중개인들, 프랑스에서 호주까지 전 세계에서 근무하는 자동차 딜러들 역시 그 존재를 믿기 때문이다. 만일 CEO 혼자서 믿음을 갑자기 버린다면, 그는 신속하게 가장 가까운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달러화, 인권, 미국은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수십억 명이 공유하는 상상 속에 존재한다. 한 개인은 누구라도 그 존재를 위협할 수 없다. 만일 나 혼자 달러나 인권, 미국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해도 그건 전혀 중요치 않다. 이런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며, 이를 변화시키려면 수십억 명의 의식을 동시에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대규모 변화가 일어나려면 정당이나 이념운동, 혹은 종교적 광신집단 같은 복잡한 기구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복잡한 기구를 만들자면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을 협력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런 일은 오로지 그들이 뭔가 신화를 공유하고 있을 때만 일어난다. 그러니 현존하는 가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그 대안이 되는 가상의 질서를 먼저 믿어야 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푸조를 해체하려면 프랑스 법률체계처럼 그보다 더 강력한 뭔가를 상상해야 하고, 프랑스 법률체제를 해체하려면 그보다 더 강력한 무엇, 예컨대 프랑스라는 국가를 상상해야 한다. 국가마저 해체하려고 한다면, 그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를 상상해야 할 것이다.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일 뿐이다.




"친구 사이에 충고할 때 흔히 '마음heart 내키는 대로 하라'고 말하지만, 사실 마음은 이중간첩으로서 당대의 지배적인 신화의 지시에 따르는 경우가 흔하다."

책의 제1부 첫 장에서 다룬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에 대해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수긍이 간다. 실재하지 않은 상상의 질서에 지배받는 인간, 정말 별 거 아닌 동물이다. 오늘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자유가 허락되는 민주주의에서 실현되는 당연한 것들이라 여겨지는데, 결국 저자가 말한 대로 이 모든 것들은 '교도소의 담장'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즉 상상의 질서로 채워진 교도소에 우리는 구금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걸 인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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