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29

제2부 농업혁명/ 7. 메모리 과부하(190~195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32

6. 피라미드 건설하기 160

7. 메모리 과부하 190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208


[필사와 단상]

7. 메모리 과부하


진화는 인간에게 축구할 능력을 부여하지 않았다. 물론 킥을 할 다리와 파울을 할 팔, 욕설을 내뱉을 입을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그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혼자 페널티킥을 연습하는 것뿐일 것이다 우리가 어느 날 운동장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경기를 하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상대팀의 열한 명이 우리와 동일한 규칙을 따르며 경기를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열 명의 팀원(이들은 전에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들과 호흡을 맞춰 뛰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다른 동물들은 낯선 개체를 만나 의례화된 공격성을 드러낼 때 대체로 본능에 따른다. 세계 모든 곳의 강아지들이 벌이는 개싸움의 규칙은 그들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십대에게는 축구 유전자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완전히 낯선 사람들과 게임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들이 축구에 대해 배운 일련의 개념들이 서로 완전히 같기 때문이다. 그 개념들은 완전한 상상의 산물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공유한다면 모두가 축구를 할 수 있다.

이보다 규모가 큰 왕국, 교회, 무역망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지만, 큰 차이가 하나 있다. 축구의 규칙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간결하다. 작은 수렵채집 무리나 소규모 마을에서 협동할 때 필요한 규칙과 상당히 비슷하다. 각각의 행위자는 규칙을 머릿속에 저장하고도 노래, 이미지, 쇼핑 리스트를 담을 공간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스물두 명이 아니라 수천 명, 심지어 수백만 명이 연관되는 대규모 협력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한 인간의 뇌에 담아두고 처리할 수 없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관리하고 저장해야 한다.

개미나 꿀벌 같은 일부 동물 종의 대규모 사회는 안정되었으며 회복성이 있다. 해당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대부분이 유전자에 부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꿀벌의 애벌레 암컷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여왕벌이나 일벌로 자라나는데, 그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행태는 DNA에 프로그램되어 있다. 여왕의 에티켓이 되었든 프롤레타리아의 근면성이 되었든 말이다. 벌집은 이를테면 수확자, 보모, 청소부처럼 매우 다양한 종류의 일꾼들을 포함하는 매우 복잡한 사회구조를 지닐 수 있지만, 지금까지 법률가 벌이 발견된 예는 없다. 벌들에게는 법률가가 필요 없다. 벌들은 벌집의 헌법을 잊을 위험도, 위반할 위험도 없기 때문이다. 여왕벌이 청소부벌들에게 먹이를 제대로 주지 않아도 이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일 일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으레 그런 짓을 한다. 인간은 단순히 자기 DNA를 복사하고 이를 후손에 전해주는 것만으로는 사회운영에 필요한 핵심정보를 보존할 수 없다. 사피엔스의 사회질서는 가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법과 관습, 절차와 예절을 지탱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질서는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예컨대 함무라비 왕은 사람이 귀족, 평민, 노예로 나뉜다고 포고했는데, 이것은 벌집과는 달리 자연적인 구분이 아니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그런 것의 흔적조차 없다. 만일 바빌론 사람들이 그 '진실'을 마음에 새겨둘 수 없었다면, 사회의 기능은 마비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함무라비가 후손에게 물려준 DNA 속에는 평민 여성을 살해한 귀족 남성은 은 30세겔을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 같은 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함무라비는 아들들에게 제국의 법을 열심히 가르쳐야 했고, 그 아들과 손자들도 똑같이 해야 했다.

제국이 생산하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다. 법률뿐 아니라 거래와 세금, 군수품과 상선의 목록, 축제와 승전기념일을 넣은 달력 등을 기록해야 한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이 정보를 저장해 온 장소는 단 하나, 자신의 뇌였다. 불행히도 인간의 뇌는 제국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저장하는 장치로서는 훌륭하지 않은데, 주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용량이 부족하다. 물론 기억력이 엄청난 사람도 일부 있고, 고대에는 모든 지방의 지형 전체와 나라 전체의 법조문을 머리에 담아둘 수 있는 기억 전문가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기억술의 대가도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한 법률가가 매사추세츠 주의 법조문 모두를 암기할 수는 있겠지만, 세일럼의 마녀재판(1692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 세일럼 빌리지에서 일어난 마녀재판으로, 185명을 체포해 19명을 처형하는 등 총 25명이 목숨을 잃었다-옮긴이) 이후 오늘날까지 일어났던 법적 소송의 모든 절차를 상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죄다 기억할 수는 없다.

둘째, 인간이 죽으면 뇌도 같이 죽는다. 뇌에 축적된 모든 정보는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지워지게 마련이다. 물론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기억을 전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몇 차례 전수가 이어지고 나면 혼동과 착각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인데, 인간의 뇌는 특정한 유형의 정보만을 저장하고 처리하도록 적응했다. 고대 수렵채집인이 살아남으려면 수천 종의 식물과 동물의 형태와 속성, 행동 패턴을 기억해야만 했다. 어느 느릅나무 밑에서 가을에 자라는 주름진 노란 버섯은 독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겨울에 떡갈나무 아래에서 자라는 비슷하게 생긴 버섯은 복통에 좋은 치료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 또한 수렵채집인들은 무리의 구성원 수십 명의 의견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기억해야 했다. 루시가 자신을 괴롭히는 존의 행동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무리 구성원 한 명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지난주 존과 메리의 사이가 나빠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메리는 열렬한 동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진화의 압력에 적응한 결과, 인간의 뇌는 막대한 양의 식물학, 동물학, 지형학, 사회학의 정보를 저장할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농업혁명에 뒤이어 유달리 복잡한 사회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정보가 중요해졌다. 바로 숫자다. 수렵채집인은 많은 양의 수학적 자료를 다뤄야 할 일이 없었다. 숲 속에 있는 나무에 달린 과일의 개수 따위를 외워야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숫자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데 적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커다란 왕국을 유지하려면 수학적 데이터가 핵심적이었다. 법을 제정하고 수호신에 대해 지어낸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금도 걷어야 했다. 그런데 수십만 명에게 세금을 매기려면, 사람들의 수입과 재산에 대한 데이커, 지불된 급여에 대한 데이터, 체납액과 빚과 벌금에 대한 데이터, 할인과 공제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야 했다. 모두 합쳐 수백만 데이터 비트에 달하는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해야 했다. 그런 능력이 없으면 국가는 자신이 어떤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세금을 받아낼 구석이 또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숫자들을 외우고 인출하고 다뤄야 할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의 인간의 외는 멍해지거나 잠이 들어버렸다.

이 정신적 한계는 인간 집단의 크기와 복잡성도 심각하게 제한했다. 특정 사회의 구성원과 재산의 양이 특정한 임계치를 넘어서면, 대량의 수학적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할 필요가 생겼다. 인간의 뇌는 그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스템은 무너졌다. 농업혁명 이래 수천 년간 인간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상대적으로 작고 단순한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문제를 처음 극복한 것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살던 고대 수메르인이었다. 타는 듯한 햇볕이 내리쬐는 그곳의 진흙 평야는 소출이 풍부했고 도회지를 번영시켰다. 주민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 사이의 업무를 조율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도 늘었다. 기원전 3500~3000년 어느 시기에, 익명의 수메르 천재들이 뇌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을 발명했다. 대량의 수학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맞춤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수메르인들은 인간의 뇌에서 비롯되는 사회질서의 제약에서 벗어나 도시, 왕국, 제국의 출현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수메르인이 발명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쓰기'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농업혁명에 뒤이어 유달리 복잡한 사회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정보가 중요해졌다. 바로 숫자다.


"커다란 왕국을 유지하려면 수학적 데이터가 핵심적이었다."


"수메르인이 발명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쓰기'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언어에 이은 '쓰기'의 발명, 인간 종의 진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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