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농업혁명/ 7. 메모리 과부하(195~205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32
6. 피라미드 건설하기 160
7. 메모리 과부하 190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208
[필사와 단상]
7. 메모리 과부하
쓰기는 유형의 기호를 통해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이다. 수메르의 쓰기 체계는 점토관에 눌러쓴 두 종류의 기호를 이용했다. 기호의 한 유형은 숫자를 나타냈다. 각각 1, 10, 60, 600, 3,6--, 36,000을 나타내는 기호가 있었다(수메르 사람들은 6진법과 10진법을 섞어서 썼다. 6진법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눈다거나 원을 360도로 분할하는 것이 그런 예다). 또 다른 유형의 기호는 사람, 동물, 사유품, 토지, 날짜 등을 나타냈다. 두 유형의 기호를 결합함으로써 수메르인들은 많은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었다. 어떤 한 인간의 뇌가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어떤 한 DNA 사슬이 부호화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었다.
초기 단계의 쓰기는 사실과 숫자에 한정되었다, 만일 위대한 수메르 소설이 존재했더라도, 점토관에 쓰이지는 않았다. 쓰기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고, 기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장부 기록 이외의 일에 활용할 이유가 없었다. 만일 우리가 5천 년 전의 선조들이 남긴 지혜의 말을 찾으려 한다면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상들이 남긴 가장 초기의 메시지는 가령 이랬기 때문이다. '보리 29,086자루 37개월, 쿠심.' 이 문장의 의미는 아마도 '37개월에 걸쳐 보리 29,086자루를 받았다. 서명자 쿠심'일 것이다. 아, 슬프다. 역사상 최초의 문서에 담긴 것이 철학적 통찰도, 시도, 전설도, 심지어 왕의 승리도 아니었다니, 세금 지불액과 쌓이는 빚의 액수와 재산의 소유권을 기록한 평이한 경제문서였다니.
수메르 시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문서로서 이것과 유형이 다른 것은 딱 하나뿐인데, 그 내용은 더더욱 흥미롭지 않다. 그것은 필경자 견습공이 교육을 받으면서 반복해서 쓰고 또 썼던 단어의 목록이다. 지루해진 학생이 매매증서가 아니라 직접 지은 시를 쓰고 싶었다 할지라도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메르 초기의 문자는 완전한 문자체계(스크립트)가 되지 못한 부분적인 것이었다. 완전한 문자체계란 구어를 어느 정도 완벽하게 표현하는 기호체계를 말한다. 시를 포함해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체계 말이다. 불완전한 문자체계는 인간 행동의 제한된 영역에 속하는 특정 유형의 정보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호체계를 말한다. 라틴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브라유 점자는 완전한 문자체계다. 우리는 이것들을 이용해 세금을 기록하고, 연애 시나 역사책을 쓰고, 음식 요리법이나 상법을 쓸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수메르인의 최초 문자체계는 현대의 수학이나 음악 기호처럼 불완전했다. 수학 스크립트로 계산을 할 수는 있지만 시를 쓸 수는 없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의 문자가 시를 쓰는 데 부적합하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들이 문자를 발명한 이유는 구어를 복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 안데스 산맥의 문화가 같은 일부 문화들은 역사 내내 불완전한 문자체계를 사용했지만 그 한계에 불편을 느끼지 않았으며 완전한 문자체계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안데스 산맥의 문자체계는 수메르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사실 너무 달라서 문자체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것은 점토판이나 종이 위에 쓰인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키푸(잉카 제국의 결승문자-옮긴이)라고 불리는 색색의 끈을 매듭짓는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키푸는 양모나 면으로 만들어졌으며 색색의 끈으로 구성되었다. 하나의 키푸가 수백 개의 줄과 수천 개의 매듭으로 구성될 수도 있었다. 각기 다른 색을 지닌 각기 다른 줄에 각기 다른 매듭을 지음으로써, 그들은 예컨대 세금 징수나 재산 소유권과 관련된 대량의 수학적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었다.
키푸는 수백 년, 아마도 수천 년 동안 도시와 왕국과 제국의 상업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 기능은 잉카 제국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오늘날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그리고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며 1천만~1,200만 명의 백성을 다스렸다. 잉카인들은 키푸 덕분에 대량의 데이터를 저장, 처리할 수 있었다. 이것이 없었더라면 그처럼 거대한 제국에 필요한 복잡한 행정기구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키푸는 매우 효과적이고 정확하여, 스페인인들은 남미를 정복했던 초기에 자신들의 새 제국을 다스리는 데 키푸를 활용했다. 다만 스페인 사람들은 키푸를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라서 현지 전문가들에 의존해야만 했다. 대륙의 새 지배자들은 이 때문에 자신들의 지위가 약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현지인 키푸 전문가들이 주인을 오도하거나 속이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페인의 지배가 좀 더 굳건하게 정착되자 키푸는 단계적으로 폐지되었으며, 새 제국의 기록은 순전히 라틴 문자와 숫자로만 쓰였다. 스페인 점령기를 거치고서 살아남은 키푸는 극소수뿐이고 남아 있는 것도 대부분 판독이 불가능하다. 해독 기술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마침내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단조로운 수학 데이터 이외의 것을 쓰고 싶어졌다. 기원전 3000년에서 2500년 사이 수메르 문자체계에 덤점 더 많은 기호가 추가되어, 오늘날 쐐기문자라고 불리는 완전한 문자체계로 점자 바뀌었다. 기원전 2500년이 되자 왕이 포고령을 내릴 때, 사제들이 신탁을 기록할 때, 이보다 신분이 낮은 시민들이 펼지를 쓸 때도 이 문자가 사용되었다. 대략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인들은 상형문자라 불리는 별개의 완전한 문자체계를 개발했다. 또 다른 완전한 문자체계는 기원전 1200년경 중국에서, 기원전 1000년~500년경 중미에서 발달했다.
이들 문자체계는 발원지에서 널리 퍼져나가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임무를 띠게 되었다. 사람들은 시와 역사책, 로맨스, 예언, 요리책을 썼다 그래도 쓰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여전히 대량의 수학적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있었고, 이 임무는 불완전한 문자체계의 면면한 특권이었다. 히브리 성경, 그리스의 일리아스, 힌두교의 마하바라타, 불교의 팔리어 경전은 모두 구전 작품으로 시작했다. 이들 작품은 입에서 입으로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전수되었으며, 설사 문자가 발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금 장부와 복잡한 관료제도는 불완전한 문자체계와 함께 태어났고, 이 둘은 오늘날까지도 샴쌍둥이처럼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컴퓨터화된 데이터베이스와 스프레드시트에 기입된 암호 같은 항목들을 생각해 보라.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것을 기록하게 됨에 따라, 특히 행정부의 기록보관소가 엄청난 덩치로 커지면서,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했다. 개인의 뇌에 저장된 정보는 불러오기 쉽다. 내 뇌에는 수십억 비트의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지만, 나는 이탈리아의 수도 이름을 곧바로 떠올릴 수 있으며 그 직후에는 2001년 9월 11일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회상할 수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내 집에서 히브리 대학교에 이르는 길을 재구성할 수 있다. 뇌가 정확히 어떻게 이런 일을 하는지는 미스터리지만, 뇌의 검색 시스템이 자동차 열쇠를 어디 놓았는지 생각해 내려 애쓸 때를 제외한다면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란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지만 키푸 매듭이나 점토판에 저장된 정보는 어떻게 찾고 불러올 수 있을까? 점토판이 열 개나 1백 개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천 개가 쌓여 있다면 어찌할까? 함무라비 같은 시대에 살았던 마리(유프라테스 강 중류에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유적-옮긴이)의 짐리림 왕의 처지처럼 말이다.
지금이 기원전 1776년이라고 상상해 보자. 마리 지역 사람 두 명이 밀밭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고 있다. 야곱은 이 밭을 30년 전 에서에게서 샀다고 주장한다. 에서는 이 밭을 야곱에게 30년 기한으로 빌려주었다고 주장하며 이제 기한이 찼으니 돌려달라고 한다. 이들은 고함을 지르고 목청을 높이다가 서로 밀치기 시작한다. 그러다 이들은 왕국문서보관소에 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곳은 왕국의 모든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 증서와 매매 증서들이 보관된 곳이다. 보관소에 도착한 이들은 이 관료 저 관료 사이을 오간다. 차를 마시는 휴식시간이 여러 차례 지나갈 동안 기다린 다음, 이들은 다음 날 오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투덜거리는 서기에게서 관련 점토판을 찾아보라는 말을 듣는다. 서기가 문을 열자 거대한 방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수천 장의 점토판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서기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30년 전에 쓰인 문제의 밀밭 관련 증서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찾는다 해도 30년 전의 문서가 문제의 밭과 관련된 가장 최신 문서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찾을 수 없다면 이것은 에서가 이 밭을 팔거나 빌려준 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가? 혹은 해당 문서가 분실되었거나 혹은 빗물이 흘러들어 점토판이 곤죽으로 변해버린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문서를 점토에 새기는 것만으로는 효율적이고 정확하며 편리한 데이터 처리를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목록 같은 조직화 방법, 복사기 같은 복제수단, 컴퓨터 알고리즘 같은 빠르고 정확한 검색법 그리고 이런 도구들의 사용법을 아는 박식한 체하는(하지만 바라건대 명랑한) 사서가 필요하다.
이런 방법들을 발명하는 것은 문자를 발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로 드러났다. 많은 쓰기 체계가 시간과 공간상으로 서로 멀리 떨어진 문화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했고, 고고학자들은 잊혔던 문자체계를 10년마다 몇 건씩 발견하고 있다. 그중 일부는 심지어 수메르 점토판보다 더욱 오래된 것으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뿐인데, 왜냐하면 이런 문자를 발명한 사람들이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목록화하고 인출하는 방법을 발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수메르와 파라오의 이집트, 고대 중국, 잉카 제국이 달랐던 점은 이런 문화들이 문자기록을 보관하고 목록을 만들고 검색하는 뛰어난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또한 필경사와 서기, 사서와 회계원을 양성하는 학교에도 투자했다. 현대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학교에서의 글쓰기 연습 기록은 4천 년 전 학생들의 생활을 엿보게 한다.
나는 학교에 가서 자리에 앉았다. 선생이 내 점토판을 읽고 "빠뜨린 게 있잖아"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책임자 중 한 명이 말했다. "어째서 내 허락도 없이 입을 벌렸느냐?" 그는 나를 회초리를 때렸다. 규율을 담당한 선생이 말했다. "왜 내 허락도 없이 일어섰느냐?"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문지기가 말했다. "내 허락도 없이 어딜 나가느냐?"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맥주 항아리 관리자가 말했다. "어째서 내 허락도 없이 마셨지?"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수메르어 선생이 말했다. "어째서 아카드 말(바빌로니아-아시리아 지방을 포함하는 동부 지방의 셈어-옮긴이)을 썼지?"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담임선생이 말했다. "너는 글씨가 악필이야!" 그는 나를 회초리로 때렸다.
고대 필경사들은 읽기와 쓰기만이 아니라 목록, 사전, 달력, 서식과 표를 사용하는 법도 배웠다. 이들은 뇌가 사용하는 기법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목록을 만들고 검색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기법을 공부해서 자기 것으로 익혔다.
뇌에서는 모든 데이터가 자유롭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새 집의 담보대출에 서명하러 가면서 우리가 함께 살았던 첫 집을 떠올린다. 이 기억은 뉴올리언스 신혼여행을 연상시키고 여행은 악어를, 악어는 용을, 용은 <니벨롱겐의 반지>를 연상시킨다. 어느덧 나는 이 악극에 나오는 지크프리트 곡조를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고는 은행원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관료제에서는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위한 서랍이 하나, 결혼증서를 위한 서랍이 하나, 세금 기록용 서랍이 하나, 소송용 서랍이 하나, 이런 식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뭔가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하나 이상의 서랍에 속하는 것, 예컨대 바그너의 악극(이것을 '음악' 또는 '연극'이란 범주로 분류할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야 할까?) 같은 것은 골칫거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랍을 추가하고 지우고 재배열하는 일을 영원히 계속한다. 그런 서랍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그는 사람으로서 생각하기를 중단하고 서기나 회계사로서 사고체계를 다시 정착해야 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듯이, 서기와 회계사는 인간이 아닌 방식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캐비닛에 파일을 분류하듯이 사고한다. 이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그들의 서랍은 뒤죽박죽이 될 테고, 자신이 속한 정부나 회사, 조직이 요구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자체계가 인간의 역사에 가한 가장 중요한 충격은 정확히 이것, 즉 인간이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이 점차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자유 연상과 전체론적 사고는 칸막이와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관료제에서는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위한 서랍이 하나, 결혼증서를 위한 서랍이 하나, 세금 기록용 서랍이 하나, 소송용 서랍이 하나, 이런 식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뭔가를 찾을 수 있겠는가?"
'상상 속의 질서'를 강화시키고 공고화시키려면 공중에 흩어져 없어지는 말보다는, 그것을 준수할 정확한 문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말이 문자가 되고, 문자는 기록이 되고, 장기간 그것의 효과를 위해서는 보관이 필요했고, 보관량이 방대해지자 찾기 쉽게 분야별 목록이 작성된다. 이 모든 과정에는 권리적이고 획일적인 관료제가 개입돼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