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농업혁명/ 8. 역사에 정의는 없다(208~214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32
6. 피라미드 건설하기 160
7. 메모리 과부하 190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208
[필사와 단상]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농업혁명 이후 수천 년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인류는 어떻게 자신들을 대규모 협력망으로 엮었는가? 그런 망을 지탱할 생물학적 본능이 결핍된 상태에서 말이다. 간단하게 답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체게를 고안해 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발명품을 통해서 생물학적으로 물려받은 것에 의해 생겨난 틈을 메웠다. 하지만 이런 협력망들의 출현은 많은 사람에게 의심스럽고 불안한 축복이었다. 그 그물을 지탱하는 상상의 질서는 중립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 그 망은 사람들을 서열로 구분된 가상의 집단으로 나눴다. 상류층이 특권과 권력을 향유하는 동안, 하류층은 차별과 압제로 고통을 받았다. 가령 함무라비 법전은 귀족, 평민, 노예 사이의 서열을 확립했다. 귀족은 좋은 것을 모두 가졌고, 평민은 그러고 남은 것을 가졌으며, 노예들은 불평을 하면 채찍질을 당했다.
1776년 미국인들이 수립한 가상의 질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선언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위계질서를 확립했다. 이 선언서는 위계질서로 혜택을 받는 남자와 위계질서에 힘을 빼앗긴 여자 사이의 위계질서를 창조했다. 또 자유를 향유하는 백인과 평등한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흑인 및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의 위계질서를 창조했다. 후자는 열등한 인종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사람 중 많은 이가 노예 소유주였다. 이들은 서명과 동시에 노예를 해방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위선자로 여기지도 않았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권리는 깜둥이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미국의 질서는 또한 부자와 가난뱅이는 계층이 다르다고 선언했다. 당시 대부분의 미국인은 부자 부모가 돈과 사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데 따른 불평등에 대해서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이들이 보기에 평등이란 단순히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에게 동일한 법이 적용되는 것을 의미했다. 평등은 실업수당이나 통합교육, 건강보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자유란 단어 역시 오늘날과는 그 함의가 크게 달랐다. 1776년에 이 단어는 권력을 박탈당한 사람들(흑인이나 원주민은 해당되지 않았으며 여성은 더더욱 아니었다)이 권력을 얻고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단지 국가는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면 시민의 사유재산을 압수하거나 그 재산으로 어떤 일을 하라고 시민에게 요구할 수 없다는 의미일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미국의 질서는 부의 위계질서를 옹호했다. 일부는 이 위계질서를 신이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일부는 불변의 자연법이 구현된 것이라고 보았다. 자연은 인간의 장점을 부로써 보상하고 나태함을 처벌한다는 것이었다.
위에서 열거한 모든 차별-자유민과 노예, 백인과 흑인,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차별은 허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남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질서는 나중에 논의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상상의 질서는 스스로가 허구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고 자연적이고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가령 많은 사람들이 자유인과 노예 사이의 위계질서가 자연스럽고 올바르다고 보았는데, 이들은 노예제가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함무라비는 그것을 신이 정해놓은 것으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에게는 '맹종하는 본성'이 있고 자유민에게는 '자유로운 본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단순히 이들의 본성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인종적 위계질서에 대해서 물어부면, 인종 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관한 사이비 과학강의를 듣게 될 것이다. 백인의 혈액이나 유전자에는 백인을 더욱 지적이고 도덕적이며 근면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완고한 자본주의자에게 부의 위계질서에 대해 물어보면, 그것은 객관적 능력 차이가 빚어내는 필연적 결과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부자가 더 많은 돈을 가진 것은 더욱 능력 있고 근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자가 더 나은 의료혜택과 교육, 영양공급을 받는 데 대해 아무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부자에게는 그들이 향유하는 모든 특권을 누릴 자격이 넘친다.
카스트 제도에 집착하는 힌두교 신자들은 우주의 힘이 한 카스트를 다른 카스트보다 우월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힌두교의 유명한 창조신화에 따르면, 힌두교 신들은 원시 인간인 푸루샤의 몸을 써서 이 세상을 만들었다. 해는 푸루샤의 눈으로, 달은 뇌로, 브라만(사제)은 입으로, 크샤트리아(전사)는 팔로, 바이샤(농부와 상인)는 넓적다리로, 수드라(노예)는 다리로 만들었다. 이런 차이를 받아들이면, 브라만과 수드라의 정치사회적 차이는 해와 달의 차이처럼 자연스럽고 영원한 것이 된다. 고대 중국인들은 여와女媧 여신이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었는데, 누런 흙으로는 관료들을 빚었고 갈색 진흙으로는 평민을 빚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한, 이런 위계질서는 모두 상상의 산물이다. 정말로 브라만과 수드라가 원시적 존재의 각기 다른 신체부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두 계급 사이의 차별은 약 3천 년 전 인도 북부에서 인간이 발명한 법과 규범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달리, 노예와 자유민 사이에 생물학적 본성의 차이가 밝혀진 바는 없다. 인간의 법과 규범이 어떤 사람은 노예로 어떤 사람은 주인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흑인과 백인 간에는 피부색이나 머리카락 타입 같은 생물학적 차이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이런 차이가 지능이나 도덕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계질서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데 비해 다른 사회의 그것은 잘못되고 우스꽝스러운 기준을 근거로 삼는다고 주장한다. 현대 서구인은 인종 간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생각을 비웃으라고 교육받는다. 이들은 흑인이 백인 동네에서 살거나 백인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백인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을 금지하는 흑인차별법에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과 유럽인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위계질서는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부자는 따로 떨어져 있는 부자동네에 살고, 따로 떨어져 있는 일류 학교에 다니며, 병원치료도 시설 좋은 외딴곳에서 받도록 만드는 위계질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자가 부유한 이유는 그저 부잣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이 평생 가난하게 사는 것은 그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복잡한 인간사회에는 상상의 위계질서와 불공정한 차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위계질서의 도덕성이 같은 것은 아니고, 일부 사회는 다른 사회보다 더욱 심한 차별로 고통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학자들이 알기로 대규모 사회치고 차별을 전부 없앤 곳은 이제까지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 사회의 구성원들을 가상의 범주에 따라 분류하여 사회에 질서를 창조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범주는 예컨대 귀족과 평민과 노예, 백인과 흑인, 고대 로마의 귀족과 평민, 부자와 가난한 자 등이었다. 이런 범주는 어떤 사람을 법적이나 정치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게 만듦으로써 수백만 명의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조율했다. 위계질서는 중요한 기능을 하나 수행한다.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끼리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도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자동차 딜러는 매일 대리점에 들어오는 수십 명의 손님들 중 차를 살 사람과 구경만 하고 갈 사람을 즉시 구분할 필요가 있다. 딜러는 개개인의 성격이나 경제적 사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손님이 입고 있는 옷 스타일, 연령대, 피부나 머리 색 등의 사회적 단서는 활용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딜러들이 값비싼 고급 승용차를 살 것 같아 보이는 부유한 변호사와 그저 한 번 둘러보고 입맛만 다시는 말단 사무원을 즉시 구분하는 방법이다.
물론 사회적 차별이 형성되는 데는 타고난 능력의 차이도 한몫하지만, 능력과 성격의 다양성은 보통 상상의 질서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재능에는 육성과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그것을 키우고 갈고닦고 훈련할 환경이 되지 않으면 재능은 잠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든 사람이 능력을 배양하고 가다듬을 기회를 동등하게 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회를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는 그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상상의 위계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달려 있다.
1700년에 중국에서 일란성쌍둥이가 태어났다고 생각해 보자. 이 중 한 명은 베이징의 부유한 상인의 가정에서 자랐고, 학교나 시장, 상류층 사교 모임에서 시간을 보내며 성장했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은 외딴 마을에 사는 가난한 문맹 농민의 가정에서 자라 진흙으로 된 논밭에서 하루를 지냈다. 이들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성인이 되면 사업을 하는 능력이나 쌀을 재배하는 능력에서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다.
둘째, 다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정확히 같은 능력을 개발했더라도 이들이 똑같이 성공할 가능성은 적다. 게임에 적용되는 규칙이 각기 차이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문맹 농민의 가정에서 자란 쌍둥이 중 한 명이 각고의 노력 끝에 부유한 쌍둥이 형제와 똑같은 상업적 통찰력을 개발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이들이 부자가 될 확률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경제라는 게임은 법적인 제약과 비공식적인 유리천장으로 조작되게 마련이다. 소작농 형제가 찢어진 옷, 거친 행동, 이해할 수 없는 시골 사투리를 고치지 않은 채 베이징의 사업계로 진출한다면, 곧 비즈니스에서 행동 양식과 인맥이 유전자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복잡한 인간사회에는
상상의 위계질서와 불공정한 차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중립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불공정한 차별이, 인간이 만든 '상상 속의 질서'에 의해 성립됐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그것을 당연시하며 이어졌다.
비즈니스에서 행동 양식과 인맥이
유전자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의 인맥이 성공의 중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옛말 같지만, 그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하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정부 주요 인물들이 그 하나의 예다. 요즘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도 같은 의미의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