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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Lee Aug 25. 2024

2024. 8. 18.

서른한 번째 ©Myeongjae Lee

ZE232, B738

21:15→21:35, 탑승구 3, 좌석 22A


©Myeongjae Lee


머무는 내내 가족 모두가 요일에 혼란을 겪었다. 도착한 다음 날이 보통은 토요일인데, 수요일 밤에 오다 보니 다음 날 아침부터 아내도 아이들도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계속 헷갈려했다. 깜빡하고, 정정하고, '아차'하고 당황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고 있자니 흐뭇하다. 사랑스럽고.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요일 오후에는 스케일링을 하려고 시내 치과에 갈 계획이었는데 '토요일' 오후라 착각하고 문을 닫았겠거니 생각하는 바람에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삶에도 관성이라는 것이 있나 보다.


마침, 제주에 있는 동안, 멀지 않은 서귀포기적의도서관의 재개관 & 20주년 행사가 있었다. 

<만희네 집>, <꽃할머니>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권윤덕 작가의 신작 <행복한 붕붕어> 낭독공연과 북 토크가 있었다. 낭독공연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책의 내용과 의미를 공감각적으로 전달해 주었다. 그림책을 읽을 때와는 약간 다른 결의 몰입도를 경험했고, 스토리도 조금은 더 기억이 오래가는 것 같았다. 재미있었다. 동시에 '그림책 작가님들이 이제는 1인 공연도 해야 하는구나, 아이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 활동에 있어 "아름다움"이 가장 핵심 되는  요소라는 작가님의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강연장에서 만나는 독자들 가운데는 내게 매번 이렇게 힘든 주제를 어떻게 해내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다. 대부분 칭찬이기에 들을 때마다 감사하다는 말 외에는 충분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그런 주제를 끌어가는 힘의 원천은 나의 간절함 외에 다른 것은 없다. 달리 말하면, 이 사회에서 나가떨어지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내게 있었다. 50년 가까운 세월을 버티면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부터 갖고 있었던 생명의 심지를 발견하고, 쉽게 휘청거리거나 꺾이지 않도록 애쓴 과정이었다. (나의 작은 화판 pp.156-157)


작가님께, "<나의 작은 화판>에서 언급한 이 사회에서 나가떨어지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냐고 질문을 드렸다. 작가님이, 혹은 예술가들이 느끼는 그 절박함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작가님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싶은 것>(2013, 권효 감독)을 보면 알 수 있을 거라는 말씀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한 번 꼭 봐야겠다. 혹시나 무언가, 어느 지점에선가 실례되는 질문은 아니었던 것인지 괜히 자책하는 마음도 들었다. 


©Myeongjae Lee


서귀포시민오케스트라의 공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도서관 공간 자체의 울림뿐만 아니라, 가곡, 만화영화주제가, 동요, 클래식 등으로 구성한 레퍼토리도 좋았다. 2층에서 체험활동을 하던 아이들은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음악이 흐르니, 노래를 따라 부르다 활동을 멈추기도 했다. 정겨웠다. 무엇보다 시에서 운영하는 어린이도서관 축하 행사에 시민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함께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어 보였다. 선곡, 편곡, 연주에서도 모두 진심이 느껴졌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에게 특별한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무언가에 늘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살면서 가끔씩은 이렇게 따뜻함과 흐뭇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여보 잘 있지?"


수요일, 

출근하자마자 아내에게 태풍 상황을 물었는데, 이제 지나간 것 같다는 말과 더불어 되돌아온 아내의 질문. 

사무실에서 갑자기 또 울컥했다. 갱년기 맞는 것 같다. '그렇다' 답을 보내기는 했지만,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잘 지내냐는 물음에 기꺼이, 흔쾌히, 주저 없이 "그렇다"라고 답했던 때가 내 인생에서 언제 있기는 있었나 싶다. 잘 지낸다는 게 무엇인지 느낌으로는 알겠는데, 말로 글로 표현을 해보려니 어렵다. 일단 정의부터 잘 내려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그게 뭐든,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고 싶고 곱게 잘 늙고 싶다.


온화하고 포근하고 습한, 제주를 닮은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반가웠다. 제주가 생각나는 출근길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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