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J Archive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J Lee Aug 20. 2024

2024. 8. 14.

서른 번째 ©Myeongjae Lee

KE1193, A321-neo.

18:20→19:30, 탑승구 10, 좌석 52F

(취소) 8.15. 15:05, BX8021 / (취소) 8.15. 19:00 KE1209


©Myeongjae Lee


바퀴가 제주공항 활주로에 닿자마자 핸드폰 비행기모드를 해제하고, 만약을 위해 예약해 두었던 8.15. 자 김포발 제주행 항공권 2개의 예약을 취소했다. 오늘 표는 진작에 예약해 두었는데, 갑작스러운 업무로 인해 불확실성이 나날이 가중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15일 오후, 저녁 시간대별로 항공권을 추가로 확보해 두었다.


걸림돌이 되었던 일은 다행히 오전에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오후에 또 다른, 손이 많이 갈 일들이 눈앞에 나타나 퇴청을 앞두고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오늘 안에 당장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은 아니어서 공항으로 향했다.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에 지하철에서 책도 몇 장 넘기지 못했다. 어떤 때는 내가 일을 해서 월급을 받는 것인지, 문제를 만들기 위해 일을 하고, 그 문제를 키우고, 또 해결하는 대가로 급여를 받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을 텐데"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가끔씩 들곤 한다.


"제주로 가는 대한항공 1193편, 1193편. 김포공항 낙뢰로 인한 지상 조업 중단으로 탑승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탑승 시간은 조업이 재개되는 대로 안내해 드릴 예정입니다."


18시 기준으로 경기(김포)에 호우주의보가 발령되었다. 공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곳저곳에서 번개가 번쩍했고, 장대비가 쏟아졌다. 원래는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예약했던 항공권을 취소하려고 했다가, 혹시나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못 뜨는 건 아닌가 해서 제주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취소를 할 수 있었다. 제주 오는 길이 참 험난하다.


바로 지지난주에, 오갈 때 비용을 아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건만, 급행버스에서 내리자마자 <GS25에서만, 하겐다즈 전 제품 40% 할인>의 유혹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래도 하겐다즈는 언제나 정답이었고, 아이스크림과 함께 새벽 1시까지 이어진 아이들과의 수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유쾌하고 즐거웠다. 아내는 아이들의 텐션이 평소에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와서 반갑다고, 듣기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겠지만 고마웠다.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바람 소리, 또각또각 시곗바늘 소리, 제습기 돌아가는 소리, 화장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잠들 때 귓가에 들리는 소음조차 반갑고, 마음에 안정을 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4. 8.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