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Myeongjae Lee
KE1324, A330-300.
19:50→20:10, 탑승구 13, 좌석 57A
차를 쓸 일이 있어서 아침에 아내를 회사에 내려주고 이런저런 볼일을 봤다. 오후에는 공항에 가야 했기 때문에 차는 집에 세워두기로 했다. 아내는 퇴근 후 걸어오면 된다고 했지만 낮에 어마무시한 비가 지나간 데다 견디기 어려운 후덥지근함 때문에, 누군가는 걸어야 한다면 내가 걷는 게 맞겠다 싶었다. 공항으로 향하기 세 시간 전, 점심을 먹고 아내 회사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차 키를 전해주었다. 물론, 돌아가기 전에 잠시라도 한 번 더 얼굴을 볼 요량이기도 했다.
2km.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종종 걸어 다니는 길이라 처음에는 걸어오려고 했는데, 이 날씨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로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버스정류장까지 걷고, 기다리고, 한 번 갈아타고, 또 걸어 오려니 결국 45분이 걸렸다. 제주가 그렇다. 걷는 게 오히려 빠를 뻔했다.
이런 날은 서귀포가 좀 밉다. 거의 40년을 서울에 살았지만 서울이 막 밉다거나 혹은 막 그립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서울은 그냥 서울이었던 것 같다. 편리하고 효율적이면서 힙하고 세련된, 매력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섭섭함이나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거나 할 정도로까지는 라포가 형성되기 어려운 곳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딱 이 시점에 드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서울을 잘 몰라서, 혹은 너무 익숙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제주가 어떤 때는 너무 좋았다가도 어떤 때는 너무 미운 것을 보면, 제주는 시간의 속도와 방향이 어딘가 다르게 흐르는 곳인 것 같고, 그 공간이 채워지는 무언가나 그 방식도 무언가 남다른 곳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제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그리고 서귀포로 향하는 급행버스 안에서는 창작자가 되고 저작권자가 되는 꿈을 꾼다. 논문을 쓰고 책도 내고 사진전도 해야지 하는 생각과 의지가 샘솟는다. 주말을 보내고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는, 그리고 육지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까지도 돌아가면 운동도 열심히 하고 더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야겠다 다짐하고 의지를 불태우는데, 막상 육지 거처에 들어서고 월요일을 맞이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도 마음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정말 제주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꽃피우는 그런 곳일 수도, 육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콘크리트처럼 굳게 하는 그런 곳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물론, 이도저도 아니고 결국 내가 문제인 것일 수도, 내 어딘가가 고장 나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나도 잘 모르겠다.
다음 귀가 시에는, 둘째와 함께 신발(워커)과 옷 쇼핑하러 올레시장이나 누웨마루 거리에 한 번 가야 할 것 같고, 사찰에 한 번 가보고 싶다 해서 약천사나 관음사를 한 번 가볼까 한다. 아울러, 식사 시간을 가능한 평일과 같이 유지하고, 과식과 야식도 절제하여 좋은 내장 컨디션으로 오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래저래 소소하게 지출하는 비용이 적지 않아서 이제는 허리띠를 조금 더 졸라매야 할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올 때마다 어느 정도 규모의 지출을 하는지 체크를 한 번 해봐야 할 것 같아서 기록해 보았다. 항공료는 그렇다 치고, 가끔씩 들르는 미용실이나 마사지 비용 등을 제외하더라도 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분명히 맞기는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둘러보고 저렇게 둘러보아도 뭘 어떻게 줄여야 할지 감을 잘 못 잡겠다.
8.2.(금)
지하철 1,900원 / 롯데리아신김포공항점 4,300원 / 지하철 3,400원(왕복) / 슈퍼마켓 3,090원 / 스타벅스 23,200원 / 병원 10,400원 / 귀걸이s 17,700원 / 로봇김밥김포공항점 13,000원 / 씨유CU제주공항국내선점 5,500원 / 씨유CU 9,850원 / 급행버스 3,000원
8.3.(토)
주유 30,000원 / 버거킹 13,000원 / 주차 2,500원 / 인생네컷 5,000원 / 영화 22,000원
8.4.(일)
맥주 29,100원 / 옹포83 50,000원 / 유람위드북스 21,000원
8.5.(월)
배민 22,700원 / 주유 40,000원 / 씨유CU 2,700원 / 파리바게뜨제주공항탑승점 2,500원 / 버스 1,150원 / 급행버스 3,000원 / GS25S김포공항점 2,000원 / 지하철 1,900원
기타
항공권 92,000원(김포-제주) / 항공권 13,900원(7,500마일) / 안마 85,000원 / 이발 20,000원 / 조카 수능 100일 과자 27,000원 / 우체국 10,18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