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Myeongjae Lee
KE1187→KE1177, A330-300.
17:50→17:05, 탑승구 10, 좌석 53H with J.(53G)
오늘도 긴 여정이었다.
큰 아이 병원 진료가 있어서 금요일 가족돌봄휴가를 냈고, 사장님의 일월화 해외출장이 확정되어 월요일에도 연차를 냈다. 월요일 오전 회의 참석을 누군가에게 미루는 게 편치 않아서 '사전 예고된' 회의 없는 월요일을 늘 기다려왔는데, 마침 그날이 왔다. 물론, 혹시나 해외출장이 갑자기 취소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일요일 아침 육지로 돌아가는 항공편도 마련해 두었다. 휴가철이라서 뒤늦게 항공권 구하느라 며칠 정말 애를 먹었지만.
단신으로 육지에 올라온 첫째를 김포공항에서 맞이했다.
"내가 이렇게 애국심이 있는 줄 몰랐어."
어제도 밤새 올림픽 경기를 보느라 두 시간밖에 못 자고 나왔단다. 보자마자 큰 웃음을 준다.
점심시간 25분 전에 병원에 도착했지만, 예약 환자가 없어서인지 의사 선생님은 이미 식사를 하러 나가셨고(상가 정문에서 얼핏 스쳐 고개를 돌려 봤던 그 뒷모습이 의사 선생님 맞는 것 같다.), 간호사들은 이미 배달음식 포장을 뜯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올 때마다 라면과 꼬마김밥을 먹으러 들르는 1층 분식집에 갔는데 문이 닫혔다. 휴가란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스타벅스로 가서 샌드위치를 먹고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 와이파이와 함께 남은 시간을 보냈다. 진료는 20분 만에 끝났다. 다시 김포공항으로. 45분이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추가 비용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안에서 하나 앞 비행기로 항공권을 변경했다. 아침 8:30에 육지 거처를 나섰는데 제주 집에 도착하니 밤 9시. 죽음의 냄새가 살짝 배어있는 피곤함을 느꼈다.
그래도.
큰 아이와, 비록 밀도가 높지는 않았어도,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서울 올 일이 있으면 오고, 굳이 진료를 받기 위해 일부러는 더 이상 올 필요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치료의 종언이 있었고, 병원 방문 루틴으로 늘 들르는 고속버스터미널역 환승 상가의 귀걸이 가게에서 큰 아이와 함께 귀걸이를 고르다가 둘째를 위한 자석 귀걸이까지 우연히 발견했으니, 이 정도면 러키비키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둘째가 오늘(7.30.화) 막 공부하더라고. 왜 그런가 봤더니 주말에 아빠 오면 놀 거라서 미리 공부해 두는 거였음. 귀엽지 않아? ㅋㅋ 아빠 오면 노는 거래. 낼은 도서관 갈 거래."
이렇게 환대해 주고 기다려주는 가족이 있는데.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무너지지 말아야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놀고 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