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 번째 ©Myeongjae Lee
KE1205, B737-900
18:50 →19:15, 탑승구 1, 좌석 28E
체크인을 깜빡했다. 뒤늦게 좌석을 선택하는 바람에 비즈니스석과 일반석을 구분하는 칸막이 바로 뒷줄, 창가도 복도도 아닌 애매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탑승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에, 웬일로 승무원이 귀마개를 권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칸막이 앞쪽의 비즈니스석이 통로 왼편으로 두 자리, 오른편으로 두 자리, 그렇게 두 줄, 총 여덟 개가 있는 항공기였다. 그중 세 개 좌석에 아이들이 앉았는데, 다소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승무원이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야 한다고 두어 차례 주의를 주기도 했지만, 그닥 소용은 없었다. 최근 비슷한 일로 어떤 이슈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승객들에게 그냥 민망해서 그런 건지, 일반석 첫 줄에 앉아 있는 승객들에게 귀마개를 주었다. 견디기 힘든 수준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주황색 스펀지 귀마개가 얼마나 소용이 있겠냐마는, 이왕 받았으니, 슬쩍 귀에 밀어 넣고 잠을 청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을 무방비로 내버려 두는 부모들을 보면 너무하다 생각이 들고, 이따금씩, 그럴 수 있을 법한 상황인데도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지 못한 어른들을 볼 때도 조금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다 각자가 갖고 있는 '괜찮은, 견딜만한', 그리고 '안 괜찮은, 견디기 어려운' 기준이 달라서 그런 것이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그런 맥락에서도 곱게 늙는 어른이 되고 싶다.
문득, 공항 활주로가 일터인 분들의 하루하루는 어떨까 궁금했다. 여름의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와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만만치는 않겠다는 생각, 거대한 비행기와 승객들의 안전을 이모저모 챙기는 일련의 과정에 보람도 종종 느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생각이 미처 닿지 못하는 나름의 애로사항과 어려움도 분명 많겠지만.
집에 거의 다 와서 근처에 새로 생긴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티코'(다크초코) 한 통과 바닐라맛 '와' 3개, 델몬트 '오렌지 아이스' 2개, '샤인머스캣&청포도 아이스' 1개를 바구니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번주 월요일, 첫째에게 감기 나으면 아이스크림을 사가겠다고 했다. 아직 코맹맹이 소리가 나기는 하지만 약은 더 이상 안 먹는다고 하니, 그동안 참았던 빙과류를 충분히 보충해 주어도 되겠다 싶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지역화폐 탐나는전은 사용할 수 없어 아쉬웠다. 아쉬운 10퍼센트 캐시백.
밤 11시경 집에 도착했다.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자고 있었다. 늘 누군가는 깨어 있었는데, 이런 경우도 또 처음이다. 거의 잠에 취한 아내는 나를 보더니 손은 한 번 흔들고, 잠시 일어서 "라면이라도 먹을래?" 하고는 금세 다시 잠이 들었다. 조심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문 여닫는 소리, 도어록 삐비빅 소리, 손 씻는 소리 등등에 둘째가 깼다. 앗싸. 쏟아지는 잠과 더 이상 맞설 수 없을 때까지 밤잠 다 잔 녀석과 간만에 노닥노닥거리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세상에 인생이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마음에 상심 없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걸 또 막 잘 견뎌내야 한다고, 이겨내야 된다고, 그게 맞다고 애쓰고 발버둥 치며 스스로를 다그친다고 또 될 일은 아닌 듯싶다. 그냥, 그 누구라도, 그 고(苦)와 동행하는 그 길목, 길목에 그 누구라도 있어 그 인생이 너무 외롭다는 생각만 들지 않으면 좋겠다.
여보를 좋아하는 우리가 여기에 있어!
그 '여기'에 간다고 부지런히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