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방2036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인_이후북스 책방일기]

황부농 쓰고 서귤 그리다 / 알마 / 2018 ©Myeongjae Lee

by MJ Lee

육지에 올라와 살게 되면서는, 틈만 나면 발바닥이 닳도록 독립서점들을 드나들게 될 줄 알았는데, 궁극적으로 이 또한 역시 체력의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니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어찌 되었든 그래도, 이번 기회에 큰 용기를 내고 큰 맘을 먹고 <이후북스>에서 진행하는 5주짜리 "나도 책 한번 만들어볼까" 워크숍에 참여했었다.


음, 그냥, 무언가를 배우러 가는 토요일 그 길 자체가 즐거웠다. 사람들을 대면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었다(물론, 극 I인 나를 보면서 다른 분들은 "설마" 하실 수도 있겠지만). '내' 책을 꼭, 빠른 시일 안에 완성해야겠다는 반성과 동기부여가 되었다. 책이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내 손에 들어오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조목조목 알게 되니 책 한 권 한 권이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역시 컴퓨터 프로그램(인디자인)의 영역은 내 능력 밖의 일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p.217 그래서 이후북스의 이름은 책을 읽은 ‘이후’에는 조금 세상을 다르게 보라는, 책을 읽은 ‘이후’에는 조금 불편해지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 그런 의미였구나.

결은 조금 다르지만, 나는 책을 손에 들 때마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과 기대를 늘 품는다. 때로는 좀 더 "똑똑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욕망, 때로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희망, 때로는 좀 더 "재미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야망, 때로는 누군가의 마음과 삶을 좀 더 "공감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물론, 뭐라도, 어떻게라도 '되지' 않아도, 몇 시간 동안 수 만 개의 활자를 스윽 지나친 것만으로도 책을 읽은 후의 나는 분명히 이전과는 어디라도 "다른 사람"일 것이다.


<책방2036>에도 무언가 좋은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앞으로 10년을 고민하면, 설마,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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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eongjae Lee



p.63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긴 해도 책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여는 건 어려워하고, 지갑을 열어도 알라딘에 열지(알라딘에 아무 감정 없습니다) 오프라인 책방에 지갑을 여는 데는 상당히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한다. 이 책을 꼭 지금 사야 하는 이유가 있거나, 이 책은 여기 아니면 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책을 산다.


pp.118-120 나에게 책 파는 능력 따위 없다.…… 근데 하나 잘하는 게 있다. 잘한다고 오늘 문득 깨달았다. 그건 기다리는 일. 추운 날에는 추워서 손님이 없고 더운 날은 더워서 손님이 없고 날이 좋은 날은 날이 좋아서 손님이 없는 책방(이후북스만 없는 건가?). 하지만 나는 변함없이 책방 문을 연다. …… 문만 연다고 공간이 열리는 건 아니니 청소도 하고 책도 정리하고 음료도 준비한다. 책방도 나와 같이 기다리는 것이다. …… 약속 장소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 이 능력을 가졌다고 책을 많이 팔 수 있는 건 아니다. 기다리기만 한다고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거나 알아서 책을 사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덜 지칠 수 있다. 책방 문을 열고 닫을 때까지 손님 없는 시간이 초조하거나 불안하거나 심심하거나 절망스러웠다면 정말이지 책방을 유지하지 못했을 거다. 기다리는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 하루를 즐길 수 있다면, 내일도 책방을 열 수 있다. 책방을 운영하려면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는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다행이다. 내가 그나마 잘할 수 있는 거 하나가 '그저 기다리는 거'인데, 그게 "내일도 책방을 열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니 참으로 위로가 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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