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다쓰루 지음 /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 ©MjLee
성스러운 장소로서의 책방, 미지로 가득한 공간으로서의 책방, 열린 공간-공공의 장으로서의 책방, 무한이라는 개념을 경험할 수 있는 책방, 시공간을 초월하는 매개로서의 책방, 책 고유의 오라와 때깔이 잘 드러나는 책방.
"도서관"에 관한 책이지만, 책방의 본질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모든 것들을 다 구현해 내는 <책방2036>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미지로 가득한, 시공간을 초월한 그 미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
p.23 도서관이란 들어서면 경건한 마음이 드는 장소입니다. 세계는 미지로 가득한 곳이라는 사실에 압도당하기 위한 장소입니다. 그 점에서 기독교의 예배당과 이슬람교의 모스크, 불교의 사원 혹은 신사와 아주 비슷합니다. 이런 곳들에는 사람들이 때때로 와서 기도를 하고 떠나갑니다. 특별한 종교 행사가 없는 한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비어 있고요.
p.26 저는 도서관이라는 곳도 본질적으로 초월적인 것을 불러오기 위한 성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공간은 가능한 한 널찍하게, 너무 많은 물건은 두지 말고, 조명은 너무 밝지 않게, 소리는 조용하게, 거기서 누군가가 생활하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극 환경이어야 하는 겁니다.
p.42 도서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과의 틈새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습니다.
p.59 왜냐하면 책이란 ‘창’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세계로 난 창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와 통하는 창입니다. 그래서 책이 있으면 한숨 돌릴 수 있습니다. 밖에서 시원한 공기가 불어오는 느낌이 들죠.
p.64 도서관이 거기에 들어온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아마도 무한이라는 개념일 겁니다. 거기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인생의 유한성’과 ‘앎의 유한성’을 자각하죠. 이 이상 교육적인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얼마큼 자신이 세상을 모르는가, 세상을 모르는 채로 일생을 마치는가. 앞으로 평생을 바쳐서 아무리 똑똑해지려고 노력한들 이 거대한 앎의 저장소 가운데 끄트머리 한구석밖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죠. 다만 끄트머리 한구석이라고 해도 ‘내가 이 무한한 장소의 일부만큼은 닿을 수 있고 잘하면 그 일부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이 무한한 장소에 내가 만들어 낸 것을 보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p.97 “ ...... 도서관은 애당초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죠.
p.129 벽 한 면의 책장과 나무로 만든 바닥. 거기가 공공의 장 역할을 합니다. 책이라는 것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공공재입니다. 책은 읽어도 줄지 않고 ‘물건’으로 독점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책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은 본질적으로 ‘열린’ 공간입니다.
p.129 도서관 외에 공공성을 가진 시설로 교회, 성당, 절 등이 있지요. 그런 시설은 기본적으로 찾는 사람들에게 늘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 안에 발을 들여놓기 위한 조건은 딱 한 가지입니다. 바로 그 ‘장’에 대한 경의입니다. 그 열린 장에 대한 경의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받아들입니다. 개풍관에는 신전이 있습니다. 신전은 외부로 통하는 ‘교차로’입니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죠. ‘공공성’이란 단지 지금 이 현실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시간 그리고 장소와 연결되는 교차로이기도 합니다.
p.135 책은 독자를 ‘지금이 아닌 시대’와 ‘여기가 아닌 장소’로 데려가는 힘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책 한 권이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닫힌 공간에 자그마한 구멍이 생기고 그로부터 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옵니다. 그 바람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책 주위로 모여듭니다.
p.144 ‘언젠가 읽을 예정인 책’이고 ‘읽을 마음이 들면 곧 읽지 못할 것도 없는 책’이므로 ‘읽은 책’이라고 말한들 반드시 거짓말은 아니다 ...... 이렇게 무심코 생각하고 맙니다.
p.154 그러나 책장의 진짜 효용은 거기서 이름도 제목도 들어본 적 없는 책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외부의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니까요.
p.187 작품은 창작자에게서 그것을 누리는 사람으로, 그 무르고 약한 감촉과 따뜻함과 전율을 담아서 직접 전해져야 합니다.
p.200 하나는, 책을 보내는 사람(저자, 편집자, 표지 디자이너, 서점 직원을 포함해서)이 경의와 애정을 담은 책에는 고유의 오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사용한 도구에 손때가 묻어 있듯이 보내는 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책에는 독특한 때깔이 납니다. 우리는 서점을 돌아다닐 때 그 ‘때깔’에 반응합니다. 작가가 대충 쓰고, 출판사도 날림으로 만들고 서점 직원도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비치한 책에는 그 때깔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