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804
#1.
법률 제19228호(2023.3.4.).
정부조직법 일부개정으로 우리 회사의 존재 근거였던 법은 6월 5일 자로 폐지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속이 복잡하고 시끄러운 상황이다.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정말 많지만, 뭐라 말을 할 수도 있는 처지도 아니다.
일터에서 하루하루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기 위해 평상시보다 두 세배의 에너지를 더 쓰고, 엎친데 덮친 업무들로 두 세배의 에너지를 더 쓰고 집에 돌아오면 할 수 있는 일은 졸음에 취해 핸드폰을 손에서 스르륵 놓치게 되는 순간까지 넷플릭스를 돌려보는 것뿐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쯤에서 접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불쑥불쑥 찾아오는 2023년 봄이다.
#2.
꽤 오래전부터,
정년퇴직을 '잘' 하고 소박한 책방을 하나 갖고 싶었다. 책방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기도 하지만, 현실 도피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망상과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굳이 부정하지도 않는다.
암튼, 그래도 책방 이름 비슷한 무언가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일단은 '책방 2036'으로 정했다. 아직 이름을 고민할 시간은 차고 넘치게 남았다.
#3.
그렇게 대단한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어떤 서점이나 카페에서 아니면 책에서 본 것들 중에서 '내 책방에서도 한번 해봄직하겠다' 생각되는 그런 내용들을 틈틈이 적어왔다.
책방 생각이라는 피난처로 보다 자주 도피하게 되는 요즘,
희박한 가능성의 경력경쟁채용 시험에 붙든, 별도 법인에 정원 외 인력으로 남든, 다른 일을 찾게 되든
미래의 내 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앞으로 13년 동안 차분히 기록으로 남기면서 2036년에 진짜로 책방을 열게 되면 눈물 나게 아름답겠다 싶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내 책방'에 대한 소망이 상상으로만 그치더라도 나름 유의미한 과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써놓은 이 엄청나고 찬란한 아이디어를 누군가 가져가서 사용하면 어쩌나 살짝 염려가 되기도 하지만, 내 머리에서 뭐 그리 대단한 게 나올까 싶고, 누군가 또 좋은 의견과 반응을 줄 수 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4.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를 해야 하는 이 귀중한 시간에 대체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