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되기'에 대해서
인류의 미래를 상상할 때, 멸망조차도 어떤 면에서는 인간성에 의한 자연스러움일 수 있다. 인간은 세계의 일부이면서도 끊임없이 그 경계를 넘어서려는 존재다. 이 모순은 우리를 창조로 이끄는 동시에 파괴로 이끄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연스러움이란 단순히 주어진 상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과 창조의 열린 지평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자연스러움은 흔히 결정론적 결과로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철학자 베르그송과 프리고진, 그리고 들뢰즈는 모두 자연을 고정된 경로가 아닌 창조적 과정으로 보았다. 이들은 생명과 세계를 기계론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비선형적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연결과 형태를 만들어내는 유동적 시스템으로 이해했다. 예측할 수 없는 흐름과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간다.
들뢰즈는 이를 "되기(becoming)"라는 개념으로 풀어낸다. 존재는 본질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과정이며, 이는 역사나 개인의 삶 모두에 적용된다. 하이데거의 존재론 역시 인간을 '가능성의 투사'로 보며, 인간은 과거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열어가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연스러움 = 열린 가능성이라는 관점을 공유한다.
이러한 철학은 과학적 복잡계 이론과도 연결된다. 프리고진의 ‘창발’ 개념은 자연이 무질서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함을 보여준다. 자연스러움이란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혼돈과 상호작용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움직임이다. 이는 곧, 인간의 역사나 문명도 예측 불가능한 창조의 연속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역사 역시 필연의 궤도가 아니다. 코젤렉은 역사를 ‘경험’과 ‘기대’가 교차하는 열린 공간으로 보았다. 미래는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일어나지 않은 것들까지 포함하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사르트르와 아렌트, 블로흐의 사상은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창조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인간은 미리 규정된 본질이 없으며, 자신의 실존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간다. 아렌트가 말한 ‘시작할 수 있는 능력(natality)’은 우리가 매 순간 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도입하는 힘을 지닌다는 뜻이다.
메를로퐁티는 여기에 육체성을 더한다. 인간은 의식 이전에 세계와 신체적으로 관계 맺는 존재이며, 이 직접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러운 지혜가 드러난다. 숲길을 걷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처럼, 우리는 계산이 아닌 조화 속에서 행동하고 존재한다.
결국 자연스러움이란 주어진 길을 따르는 수동적 흐름이 아니라, 혼돈과 가능성 속에서 자유롭게 의미를 창조하는 능동적 움직임이다. 인류의 미래는 정해진 서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써나가는 열린 이야기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내가 아직 쓰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뜻이다.
자연스러움은 필연이 아니다. 정해진 길도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 속에서의 생성이다. 세계는 혼돈과 질서의 긴장 속에서 움직인다. 그 속에서 생겨나는 변화들. 그 변화들 또한 자연스럽다. 인류가 멸망하는 미래도 가능하다. 하지만 더 나은 방향을 향한 시도 역시 동등하게 자연스럽다. 나는 그 가능성 중 하나이고 싶다.
방향을 만드는 자연스러움.
질서가 아닌 창조로 나아가는 존재.
무의미함에 굴복하지 않겠다.
자연의 일부로서 나는 의미를 만들어간다.
이것이 내가 되고 싶은 자연스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