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속 우리들의 모습
우주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동안, 나는 끝내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코스모스』를 덮은 후,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별이 탄생하는 과정도, 빅뱅이나 보이저호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단단히 나를 붙잡은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자 한 존재는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인간 안에 있는 나의 존재였다. 나는 그 책을 읽는 내내, 반복해서 한 가지를 자문했다. "나는 이 모든 거대한 구조 앞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그 질문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존재의 위치에 대한 검토였다. 인류가 먼지보다 작은 존재라는 것을 아는 순간, 어떤 이는 무력감을 느끼고, 또 다른 이는 숭고를 느낀다. 나는 그 경계에 오래 머물렀다.
『코스모스』는 나를 작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작음은 나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에 대한 정밀한 윤곽을 새기는 작업이었다. 나는 우주의 나이를 알고, 별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며, 내 수명이 얼마나 덧없고 연약한지를 체감했다. 하지만 바로 그 덧없음 속에서, 나는 ‘무너질 수 없음’을 배웠다.
어떤 지식은 사람을 침묵하게 만든다. 그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사유의 성숙이다. 나는 우주의 크기 앞에서 단지 멈춘 것이 아니라, 다르게 걷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이건은 우주를 설명했다. 나는 우주를 ‘설명된 상태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이해는 나를 만족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주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게 만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왜’라는 질문 앞에서 멈췄다. 왜 나는 외로움을 느끼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가? 왜 죽음이 두렵고, 동시에 그 두려움에 희망을 품는가? 이 질문들은 과학이 풀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다. 아니, 풀려야 할 필요조차 없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존재 자체가 질문인 상태, 즉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해석의 과정임을 의미한다.
우주가 존재하는 방식과,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은 같은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코스모스』를 통과한 이후, 나는 단지 더 잘 안 것이 아니라, 무엇이 설명되지 않는지를 더 정교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때로는 가장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가장 마음을 울린다. 그것은 역설이 아니라, 인간만이 가진 언어의 깊이다. “우리는 별의 먼지로 만들어졌다.” 그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땐 과학의 시적 전환이라 느꼈지만, 이제는 그것이 존재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조용한 위로임을 안다. 경이감은 단지 무지를 향한 반응이 아니다. 경이감은 이해 이후에도 남는 잔향이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고유의 감정이다.
『코스모스』는 그것을 일깨운다. 과학이 언어를 정밀하게 다듬는 동안, 인간은 그 언어로 자신의 고통, 희망, 기다림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 감정의 끝에는 하나의 책임이 따라온다.
우리가 감탄한 만큼, 우리는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의 끝에서 한 가지 오래된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기억되지 않는 것은, 막 깬 꿈처럼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사라진다.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인류의 사유를 지탱하는 구조에 대한 진술이다. 우주를 아무리 정밀하게 설명할 수 있는 미래가 온다 하라도, 그것이 인간 내면에서 의미를 얻지 못한다면 그 아름다움조차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현재로 옮기는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주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것을 기억하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
나는 우주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제는 인간에 대해 더 철저히 질문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그 지식은 어디에 쓰일 수 있는가.
우주를 알게 되면, 세상이 더 복잡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국 중요한 건 아주 단순한 것들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할까.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들을 품고, 다시 인간이라는 세계로 돌아왔다. 그래서 결국, 모든 질문은 미래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향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서로를 대하는 태도, 사소한 말과 행동 속에서 이미 다음 세대는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가'를 배우고 있다. 우리는 우주를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동시에, 그 해석의 책임을 공유하는 공동체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질문을 놓지 않을 이유를 발견한다. 우주가 완전해 보일수록, 인간은 더욱 물음의 존재가 된다. 아마 중요한 건 언제나, 이해보다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우주의 진실이 아무리 밝혀져도, 그것이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식은 계승될 수 있지만, 사유의 깊이와 태도는 훈련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지금 어떤 질문을 품고 있는지가, 미래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마주할지를 결정짓는다. 우주는 스스로를 말하지 않는다. 인간이 그것을 설명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남기는 말, 행동, 그리고 질문의 흔적은 단지 오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지도이자, 해석의 씨앗이다.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냈는지는, 결국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계의 언어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이 끝나지 않는 현 인류의 물음들을 담아, 물리적인 타임캡슐로서 우주에 띄우는 것. 그러나 그것은 골든 레코드처럼 끝없는 우주 속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밀하게 설계된 거대한 궤도를 돌아,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내가 상상하는 것은, 천 년 후에 지구 대기권에 재진입해 낙하산으로 안전히 착륙하는 작은 위성이다. 그 안에는 우리가 남긴 질문들이 있다. 과학도, 기술도, 정답도 아닌, '왜'라는 물음,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사유, 그리고 '기억되지 않는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오래된 진실이 담겨 있다. 우리는 답을 전하지 않는다. 우리는 질문을 보낸다.
그리고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누군가가, 그 질문을 다시 품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