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자유 해체

문명의 주체와 인간 재정의

by 김명준

기술의 고도화는 문명의 속도를 가속시켰고, 동시에 문명을 이끄는 존재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기초교육만으로도 누구나 기술의 전선에 설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문명의 최전선에서 그 발전을 이끌려면 학사를 넘어 석사나 박사급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는 문명을 이끄는 자격이 점점 더 좁은 문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그 관문조차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인공지능은 이미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작성하며, 예술적 창작까지 가능함을 증명했다. 이 변화는 단지 기술의 진보가 아닌, 문명을 이끄는 주체의 근본적 교체를 예고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면서도 인간의 능력을 대체할 수 있는, 역사상 최초의 '비인간적 주체'다. 이로써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시했던 '인간 중심의 문명'이라는 고정관념에 깊은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필연적으로 던져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여전히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있는가? 또는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 존재인가? 자유의지는 실재하는가?

인간은 늘 자유롭게 사고하고 결정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은 얼마나 진정 '자유'로웠던가? 우리가 추구한 사랑, 직업, 가치관, 신념은 과연 스스로 떠올린 것이었는가? 아니면 시대가 주입하고, 사회가 기대한 제한된 가능성 안에서 길들여진 선택이었을 뿐인가?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을 '상상의 질서에 복무하는 존재'로 정의한다. 국가, 신, 인권, 화폐, 법률 등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다수가 믿고 따르기 때문에 존재하는 '집단적 허구'다. 우리는 이러한 상상의 질서를 교육, 문화, 언어를 통해 내면화하며 성장한다. 결국 우리의 '선택'이란, 이 질서 속에서 제공된 제한된 가능성 안의 고름에 불과할 수 있다.

만약 자유의지가 허상이라면, 인간의 도덕적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옳다고 믿는 도덕, 선과 악의 구분도 단지 허구에 불과한가?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도덕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고대의 '선'은 현대의 '악'이 되었고, 한 문화권의 미덕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죄악으로 간주되었다. 하라리의 분석처럼, 도덕은 '생물학적 본능과 문화적 코드가 만든 인지적 이야기'일 수 있다. 자연법조차 시대와 문명의 요구에 따라 수정되어 온 '유연한 질서'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특정 도덕적 판단에 대해 본능적 거부감을 느낀다. 무고한 어린아이를 해치는 행위에 대한 직관적 반감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직관은 인간 집단의 생존을 위해 진화해 온 '보편적 감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 선과 악의 실존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선과 악을 믿지만, 그것은 사회적 생존을 위해 믿어야 할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기능적 허구'에 가깝다.

그렇다면 자유는 끝났는가? 인간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는가?

오히려 반대다. 자유의지가 허상임을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왜 내가 이런 선택을 했는가? 무엇이 나를 그렇게 길들였는가? 이러한 '의심'의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고유함이다. 사르트르가 말했듯, 인간은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다. 선택의 폭이 제한되어 있더라도, 그 제한을 인식하고 성찰하는 자는 여전히 주체적 존재다.

자유는 더 이상 무한한 선택지의 존재가 아니라,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도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은 상상의 질서에 구속되면서도, 그 구속을 메타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기술로부터 존재론적으로 분리된다. 인공지능은 압도적 계산력과 처리능력을 가졌지만, 자신이 길들여졌음을 성찰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허상을 허상이라 인식하며, 환상 속에서도 실재를 추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인간은 사라지는가, 아니면 새롭게 태어나는가?

우리는 기술의 정점에서 자유의지의 붕괴를 목격하고 있다. 인간을 이끈다고 믿었던 많은 개념들이 허구임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이 허구의 해체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인간성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인공지능이 문명의 발전을 주도한다 해도, 인간은 그 문명의 의미를 해석하고 방향성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로 남는다. 인간은 더 이상 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한계와 무지를 자각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진화다.

이제 문명을 기술적으로 이끄는 주체는 인공지능일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을 성찰하고, 그 의미와 방향을 묻는 존재는 여전히 인간이다. 길들여졌음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인간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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