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족을 넘어선 윤리적 책임에 관하여
2018년 BBC Earth 시리즈 〈Dynasties〉 황제펭귄 편에서 일어난 일은 자연 다큐멘터리 역사상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제작진은 '절대 자연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뜨렸다.
영하 60도의 추위 속에서 수십 마리의 황제펭귄이 가파른 협곡에 갇혀 죽어가는 상황을 목격한 제작진은 고민에 빠졌다. 새끼 펭귄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만 보아야 하는가? 결국 그들은 타협안을 선택했다. 펭귄에게 직접 접근하지는 않되,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어 탈출구를 제공한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인가?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면, 인간의 이타심으로 펭귄을 구한 행위도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하지만 이런 논리는 위험한 함정을 품고 있다. 만약 모든 인간 행위를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정당화한다면, 전쟁과 살상 역시 같은 논리로 옹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이러한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져 있었다. 모든 것이 자연이라면 규범은 무의미한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은 분리되어야 한다. "호랑이가 사슴을 잡아먹는다"는 자연 현상이지만, 인간 사회는 동족 살해를 '자연'이라는 이유로 승인하지 않는다. 인간은 언어, 법, 도덕 체계를 통해 "어떤 자연 현상은 억제하고 교정해야 한다"는 합의를 만들어왔다.
인간이 만든 이런 규범 체계를 유발 하라리는 '상상의 질서'라고 불렀다. 이 질서는 강력한 힘을 가져서 모든 사고의 기반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의 질서를 따라야 할 정당성은 어디에 있을까?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 개념이 해답을 제시한다. 원초적 입장에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모른 채 선택해도 수긍할 원칙이면 사회 규칙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족 살해 금지 규정을 예로 들어보자. 원초적 입장에서 개인은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이 규칙은 합리적으로 선택될 것이다.
하지만 롤스의 논의는 인간 사회 내부의 규칙에 국한된다. 펭귄 사례에서 보았듯이, 종족 간의 윤리적 문제는 다른 차원의 고민을 요구한다.
나는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확장하여 '초원초적 입장'을 제안한다. 이는 사회적 위치뿐만 아니라 종 자체도 가려진 채로 규칙을 설계하는 사고실험이다.
초원초적 입장에서 "살해 금지"를 절대명령으로 설정한다면, 모든 육식 동물이 생존 불가능해져 거부될 것이다. 대신 "생존과 생태 유지에 필수적인 경우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되, 모든 고통과 죽음을 가능한 한 줄인다"는 조건부 원칙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육식 동물의 생존권과 다른 존재들의 고통 최소화를 동시에 고려한 현실적 타협안이다.
현재 인류는 기후위기를 주로 '지금 여기서 체감되는 손해'와 '인간 경제' 중심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초원초적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어떤 생명체로 태어날지조차 알 수 없다"는 관점에서는 심해 산호, 북극곰, 저소득 국가 주민, 미래 세대로 태어날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 관점에서 환경 규제와 생태 보전은 모든 삶의 형태가 공유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합리적 선택이 된다.
그러나 비판적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고, 다시는 다른 생명체로 태어나지 않을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왜 비인간 생명에 대해 윤리적 의무를 느껴야 하는가?
인간만의 이해관계에 집중해도 결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후 안정, 생물다양성, 토양과 수자원 같은 생태계 서비스가 무너지면 인간의 식량과 경제가 직접 타격을 받는다. 공장식 축산, 병원균 확산, 먹이망 붕괴는 곧 인간에게 질병, 굶주림, 사회 불안을 가져온다.
따라서 생태계를 지키는 일은 순수한 자기 이익 관점에서도 일종의 보험이다. 생태계 파괴는 장기적으로 인간에게도 재앙이 되며, 국제적 제재와 평판 손실로 이어져 경제적 손해까지 초래한다.
칸트적 보편화 원칙으로 보면, "고통은 나쁘다"는 명제를 인정하면서 인간만 예외로 두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공리주의적 시각에서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모두 같은 '쾌락과 고통의 통화'로 계산되어야 하며, 인간만 점수를 임의로 조정할 근거는 없다.
덕 윤리의 관점에서도 타자의 고통에 무정한 태도는 우리 스스로의 품성에 부정적 흔적을 남기며, 공동체 신뢰를 갉아먹는다.
결국 실용적 계산과 도덕적 성찰이 만나는 지점은 같다. 인간만을 위한 세상을 꿈꾸더라도, 타 종의 고통을 줄이고 생태계를 보전하는 방향이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이 된다.
한 번뿐인 인간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도 "종을 넘는 책임"은 도덕적 사치가 아니라 필수 전략이다. 이 전략이야말로 우리가 오래도록 안전하게, 그리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다.
2018년 남극에서 펭귄을 구한 다큐멘터리 제작진들의 선택은 단순한 연민의 발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종족을 넘어선 책임 의식의 구체적 실현이었으며,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