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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

잠봉 뵈르♡



잠봉 뵈르


오늘은 큰아이가 좋아하는 잠봉 뵈르.


잠봉은 얇게 저민 햄, 뵈르는 버터.

우리나라 쌀밥처럼

 프랑스의 가장 대중적인 샌드위치.


코스트코에서 미니 프렌치롤 사서

오븐에 살짝 굽고, 

라콩비에뜨 버터와 생식용 햄을 넣어 먹는다.

난 루꼴라 듬뿍 넣어 먹는다.

(이 프렌치 롤은 24개 5490원.)


큰아이가 옛날부터 좋아하는 북촌의

<소금집 > 잠봉 뵈르만큼은 아니지만

먹을만하다는 칭찬은 들었다.

아이고  이것아 ,  파는 잠봉 뵈르보다

훨~씬 고급진 버터 넣었단다.

이즈니 버터보다 라공이 훨씬 고급이란다.


예전에 프랑스 여행 중에 잠봉 뵈르를

처음 접하고  사실 콧방귀를 뀌었었다.

쳇!  넘 성의 없는 샌드위치라고.


근데 알고 보니 들어가는 버터에 따라

맛과 향과 질이 달라지는 재밌는 음식이다.

따끈하게 금방 구운 바게트에

햄과 버터. 참 고소하다.




비 오는 날

잠봉 뵈르를 만들다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은행은

S기업 본관 1층에  있었다.


나는 새내기 마음가짐으로

지점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 했었다.


지금은 상상도 안되지만

그때는 전화교환실이란 게 있었다.

지점으로 걸려오는 모든 전화는

교환실 선임 언니들에 의해

담당자에게 연결되었다.

지점 직원들에 대한 모든 소문은

바로 그 교환실에  가면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지점 최고참 교환실 언니가 나를 불렀다.

" 얼마 전부터 8시 정각에

너를 찾는 전화가 와.

이상한 사람 같아서 너에게 연결시키지

않았는데 말을 걸어보니 괜찮은 사람 같아."


이날 이후

출근과 함께 한 남자의 모닝콜을 받게 되는데


 " ㅇㅇ씨? 오늘은 실크 블라우스 입으셨네요."

" 누구세요! 지금 나를 보고 있나요?"

"아까 출근하는 거 봤어요."


전화 내용은 늘 이런 식이 었다.

처음엔 좀 무서웠지만

 나중엔 그러려니  무시하게  됐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본사로 발령이 났고

짐을 챙기던 어느 날 아침

받게 된 전화 한 통


" 저... 인사이동하신다면서요?

가시기 전에 드릴 게 있어요."


드디어 그 존재를 확인하게 되다니..


퇴근시간이 다가왔고

그 사람이 보자던 빌딩 현관 앞으로 나갔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서

화가 머리끝까지 나던 찰나에

화분 한 개를 들고 뛰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 ㅇㅇ씨죠? 어떤 분이 이걸 전해드리래요"


 선인장이 심긴 작은 화분과

종이에 둘둘 말은 샌드위치였다.

그리고 카드가 있었는데

< 저는 S중공업 직원입니다. 저도 신입사원이었는데  선배 따라 수출서류 갖고

은행 갔다가 씩씩하고 명랑한 ㅇㅇ씨를

보고 저도 힘이 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타나려니 용기가 없어요.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그래서? 못 나온다고?

그 사람을 만나면 따져줄 작정이었다.

당신, 스토커냐고.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작정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도 긴장되던 신입행원 시절에

교환실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언니들과 친분도 쌓았으니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그날 받은 샌드위치가

이제 생각하니 이 잠봉 뵈르 같다.

그때는 이게 뭐냐고,

달랑 버터에 햄 한 조각이냐고

무시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선인장은

내가  돌보지 않아 한 달 만에 저세상으로,.


선인장과 잠봉 뵈르가

내 손에 전달되던 그날에

오늘처럼 비가 내렸던 것이다.


오늘도 굿모닝^^



https://youtu.be/UuRoeFqgF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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