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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대하는 자세

비옷입고 첨벙첨벙



비를 대하는 나의 자세는 늘 행복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비 오는 날에는 집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음악도 듣고... 음...

이렇다고 하는데

나는 비가 오면 무조건 나가고 싶다.


그 시작은 바로 이러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 손에는

미도파 백화점 쇼핑백이 있었다.

밤이 되고 그다음 날이 되어도

그 봉투는 열리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그 봉투를 노려보다가 지쳐 갈 때쯤

엄마가 우리 3남매를 모아 두고 선포하셨다.

"이것은 우비라는 건데 비 오는 날에 우산 대신

입고 나가면 비에 젖지 않는다.

ㅇㅇ 이가 먼저 입고 작아지면 둘째, 셋째가

차례로 입도록 해."


그 후부터 비가 오는 날만 목 빠지 기다리다가

이슬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재빠르게

우비를 입고 등교했다.

내가 보라색 땡땡이 비옷을 입고 사뿐 거리며

걸어갈 때 동생들은 울며 불며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비옷을 입는 게 너무 좋아서

무조건 달려 나가 첨벙거리며 동네를 활보하고

다녔다.

내 동생은 한 번만 입어보자며 눈깔사탕을

제시하며 사정했으나 그것 가지고는 안된다며 

난 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왜 그리 성장이 빠른지 봄에 사주신 그 우비가

가을쯤 되니 손목 위로 잘록하게 올라갔다.

엄마는 가차 없이 나의 비옷을 동생에게

물려주셨다.

그런데 나보다 말랐던 한 학년 아래 동생은

그 비옷을 6학년 때까지 입었다.


그리고 5살 아래 남동생에게로 내려갔을 때

자기는 여자 꺼 안 입는다고 땡깡부려서

엄마는 파란색 비옷을 새로 사주셨다.


결론은 삼 남매 중 그 비옷을 제일 짧게 누린 건

바로 나.


나는 요즘도 비가 오면 나가고 싶다.

이문세의 <빗속에서>를 들으면서

마냥 걷고 싶다.

내 마음은 이러한데

비 오는 날 질척거려 나가기 싫다고 면박 주는

메마른  이공계 남자와 살고 있다.


오늘 내리는 저 비가

여러 생각나게 하네.


https://youtu.be/T1 aYUiljW5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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