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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란서 여배우의 손

시래기국


시래기국


마른 시래기는 6시간 정도 물에 불려서

갈색 물과 함께 팔팔 끓인 후에 뜨거운 물채로 또 24시간 불려준다.


하루 지나고 다시 한번 팔팔 끓인 후에 뚜껑 덮고 한김 식힌다. 깨끗이 씻어서 채반에서 물을 빼주고 대충 물기를 짜내고 (너무 꽉짜버리면 나중에 해동하면 맛이 없다) 먹을 만큼씩 소분하여 냉동 시킨다.


해동시킨 시래기는 줄기 윗부분을 쥐고살짝 비벼 겉껍질을 벗겨내고 조리하면 부드럽다. 시래기에 된장, 고추장, 다진 마늘, 들기름을 넣고 조물조물하여

냄비에 넣고 굵은멸치, 디포리를 함께 넣은 후 바글바글 끓여주면 된다.


싱거우면 된장을 조금 더 풀어주면 되고 청양고추를 넣어주면 칼칼한 맛이 일품이다.


바람불고 추워지면 이만한 반찬이 어디있을까 싶다.




어릴적에 베란다에 빨랫줄을 걸고 계신 엄마를 보면 아! 겨울이 다가오는구나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무우청을 깨끗이 다듬어서 주황색 빨랫줄에 널어 놓고 이리 저리 뒤집어 가면서 말리셨다.

햇볕에 말리다가 가끔 눈을 맞게도 하여 얼렸다, 녹였다를 조심스럽게 반복하며 말리셨다. 그래야 영양가가 배가 된다고 하셨다. 나는 시래기로 만든 모든 음식을 좋아했는데 시래기라는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여 번번히 등짝을 맞곤 했다.


“ 엄마, 나 쓰레기국 먹고 싶어.”

“ 엄마, 쓰레기밥 해줘요.”

“ 엄마, 쓰레기깔고 고등어 조림 해주세요.”

 

아이고 참. 그렇게 정성껏 손질하고 말려서 준비하시는 음식을 자꾸 ‘ 쓰레기 ‘ 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화나셨을까 싶다.


결혼하기 전날 밤에 부모님은  다음 날이면 시집가는 맏딸을 사이에 두고 주무셨는데 새벽녘이었을까? 두런 두런 두 분의 말소리를 들었다. 늘 강해 보였던 아버지가 먼저 운을 떼셨다.

“ 언제 다 커서 이제 시집을 가네.  너무 빨리 결혼시키는 건 아닐까? 27살이면 적당한건가? 해준게 별로 없는데, 좀 더 데리고 있을걸 그랬나? 밥은 제대로 해먹을까? 가끔 우리가 가서 대청소 좀 해주자고.”


자는척 눈을 감고 돌아 누웠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때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 얘는 잘할거에요. 다른건 걱정이 없는데, 시집가서 사돈앞에서도 계속 시래기를 쓰레기라고 할까봐 걱정이네… 그 말을 왜 그렇게 기억 못하나 몰라.


결혼하고 내가 내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그때 엄마가 걱정하셨던게 기억나서 나는 확실하게  시래기라는 말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애기때부터 시래기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다. 엄마가 어릴때 할머니가 매년 겨울마다 정성껏 만든 귀한 음식이 시래기라고.


엄마는 무청말고도 온갖 채소들을 말리셨는데 호막, 무, 가지, 고사리, 고구마 줄기 등등 대나무 바구니에 널어 말리시면 아파트에는 마당이 없으니 슬금 슬금 거실 바닥까지 차지하게 되고, 그때마다 나물이 마르는 쿰쿰한 냄새들이 몇 달동안 집안에 머물렀었다. 그 냄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시래기를 말리던 엄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림도 좋아하셨고, 음악도 좋아하셨고, 이야기 하는 것도 좋아하셨던 엄마인데, 친정도 지방이고 3남매 돌보느라 외출도 쉽지 않았던 시절에 그 답답함이 어떠했을까 .


엄마 손은 마르고 주름이 많았었다. 왜 이리 주름이 많으냐고 크림 좀 바르라고 하면

“이래뵈도 사람들이 블란서 여배우 손이라고 한다.” 면서 손을 감추셨더랬다.


예쁘고 가늘었던 우리 엄마 손은 1년 내내 그렇게 온갖 것을 말리고 씻고 다듬느라 고울새가 없었던 거다.


나는 마른 시래기를 사먹는다.

데쳐놓은 것도 팔지만 일부러 마른 시래기를 사는 이유는,

엄마처럼 정성껏 말릴수는 없지만 손질하는 정성이라도 보태어 시래기국을 끓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른 시래기를 물에 담그면

엄마의 블란서 여배우 손이 물에 어려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제 안 계시지만

그렇게 나는 늘 엄마와 만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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