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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눈으로 해야할 것들

감자 소시지 볶음



감자 소시지 볶음


곳간에  보관중인 감자가 싹이 났다.

싹이 났으니 그 다음은 묵찌빠.해야하나.


솔라닌 독소가 위험하니 깊이 파내고 납작하게 썰어서 감자가 투명해질때까지만

끓여서 불을 끄고 찬물에 헹구어 물을 뺀다.


비엔나 소시지가 8개 남아 있다. 이 녀석들도 깨끗이 비워야 한다.

뜨거운 물에 한번 데친 소시지는 칼집을 내서 토막을 낸다.

양파는 큼직하게 썰어 둔다.

달군 팬에 기름두르고 다진마늘을 볶다가 소시지, 양파, 감자 순으로 넣고 볶는다.

감자는 너무 일찍 넣으면 텁텁해지고 한번 끓인거라 제일 늦게 넣어야 아삭하다.


맛간장으로 간이 되게 볶다가 케찹으로 버물버물해준다.

마지막에 드라이 바질을 뿌려준다. 바질이 화룡점정이 됬다.


자투리 재료들로 반찬 하나 탄생.

(나의 계획은 감자볶음이었으나 눈에 띄는대로 모두 넣다 보니.)

따끈한 미역국과 잘 익은 파김치와 함께 아침 식탁에 올린다.




내가 음식을 만들때는 머리속으로 맛을 그리는데

실제로 재료들이 없어도 무엇과 무엇이 섞이면 어떤 맛이겠다는게 상상이 된다.

그래서 한번 먹어 본 음식은 대강은 맛을 내는게 어렵지 않다. 똑같지야 않겠지만.


결혼전엔 회사다니느라 음식을 해보진 않았다.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친구들은 요리학원이나 방배동 아무개 선생을 찾아가서 요리를 배우는게 유행이었다. 일명 '신부수업'을 나는 하지 않았다. 귀.찮.았.다.


그냥 살면 살아질거란 막연한 생각때문이었다. 결혼해서 1년 열두달 요리만 해먹을 것도 아니고 말이다.

대신 아침 일찍 출근해서 커피 한잔하면서 느긋히 요리책을 읽었었다. 워낙 책을 좋아해서 요리도 책으로 배운셈이다.


그리고 책을 덮을때 깨달음도 왔었다. 음식은 좋은 재료, 맛, 정성이 90% 라면 10%는 정갈하게 담아 시각적으로도 맛있어야 한다는것. 엄마가 왜 사과 한 쪽도 단정히 접시에 담아준건지, 왜 예쁜 그릇을 사 모으시는지 알게됬다.


그것 말고도 책이 나에게 준 것은 무궁무진하다. 당시 여직원에게 외환업무가 주어지기는 흔치 않은 때였는데 입행하자마자 그 일이 너무 욕심이나 퇴근 후 서점에 틀어박혀 온갖 외환서적을 독파하고

두어달 후에 차장님께 면담신청하고 외환업무를 맡겨 달라고 졸랐다.

그 후 퇴사하기 전까지도 다양한 외한업무를 했더랬다.


중요한 순간마다 책이 내게 안겨준건 신뢰였다.

흔하디 흔한 말! 책 속에 길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신뢰하여 읽을 책이 태산이다.

헌데, 나이가 노안을 데려왔다.

근시에 난시에 노안까지....

한 페이지 보는게 쉽지 않다. 그게 가장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요즘 눈운동을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서 눈을 부릅뜨고 보다가 좌우로 8자를 그리며 눈동자를 굴려준다.

마지막으로 눈 주변을 손끝으로 꼭꼭 눌러준다. 이렇게 하면 금방 눈이 맑아진다.


조금이라도 맑은 시야를 가지고 있을때

한 권의 책을 더 보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더 보고

높은 하늘을 더 보고 싶다.


감자볶음 하다가 또 삼천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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