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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와 아반떼

우거지국



우거지국


냉동실에서 데친 얼갈이배추를 꺼내어 녹여두고 잤다.

불고기용 소고기 자투리를   다진 마늘, 고춧가루와 함께 참기름으로 달달 볶다가 조금 남은 야채 육수 (  양파, 표고버섯, 대파, 양배추 등을 넣고 푹 끓여 보관한 것)를 붓는다.


바글거리며 끓을 때 데친 얼갈이를 넣고

또 한 번 푹 끓이고 마지막에 콩나물과 파를 넣은 후 국간장으로 적당히 간을 한다.


펄펄 끓을 때 간을 하면 많은 양의 간장이나 소금을 넣어도 싱겁게 느껴져서 계속 무언가를 넣게 되므로 국물이 조금 식었을 때 간을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오늘도 한 그릇씩 잘 비운다.





아침마다 식구들을 지하철역에 내려주고 돌아올 때 보게 되는 할아버지가 있다.

밤새 길에 버려진 종이상자를 수거하여 고물상에 파시는 모양이다. 정확히 새벽 7시에 나타나시는 할아버지는 체구도 작고 바싹 마르셔서 리어카를 천천히 끌고 계신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구역에 경쟁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에 키가 아주 작고 다부진 몸매의 할머니 한 분이 아반떼를 몰고 나타나신 거다. 가끔 대로가 막혀서 이면도로로 가다 보면 이 두 분의 모습을 한꺼번에 보기도 하는데 마치 무슨 서바이벌 게임 보는 듯하다. 서로 종이상자를 수거하려고 무언의 전쟁을 하시는데 내가 보니 할아버지가 절대적으로 밀리신다.

나는 차안에서 응원한다. "할아버지, 조금만 더 힘내세요."


상자를 착착 접는 할머니의 손놀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상자 하나 접는 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운송수단도 할머니의 아반떼에 밀린다. 나는 당연히 이 두 분이 다치면 안 되니 시속 10km도 안되게 두 분을 호위하듯 운전을 해야 한다.


오늘 드디어 싸움이 붙은 두 분을 발견. 언제 한번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 차에서 내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할아버지 말씀이 이것도 구역이 있는데 할머니가 자꾸 당신의 구역을 침범한단다.


내가 솔로몬은 아니지만 결론을 내어 드렸다. 할머니는 차가 있으시니 우리 아파트에  오시면 슈퍼에서 쌓아 놓은 것들 가져가실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할아버지께는 이제 조심해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얀 아반떼는 떠나고 할아버지가 내손에 뭔가 슬쩍 쥐어주시는데 쥬쥬 반지 사탕이다. 손주가 준거라 하신다.


새끼손가락에도 안 들어가는 반지 사탕을 물고 돌아오며

그 골목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대해 생각해 본다.


리어카와 아반떼는. 게임이 안된다.

누군가 중재하지 않으면 리어카 할아버지는 밀려날 수 밖에.

우리 사회의 작은 단면을 보는 듯하여 안타깝다.

쥬쥬 반지 사탕이 몹시 씁쓸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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