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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장을 받았다

새우 토마토 카레♡



새우 토마토 카레


새우는 껍질을 까고 물에 살짝 데쳐둔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재료들을 볶는다.

( 껍찔째 썰은 고구마, 브로컬리, 양파,

씨를 제거한 토마토, 양송이 버섯, 새우 순서로

볶아준다.)

재료를 볶을때 중간에 가루 카레를 조금씩

넣어준다.


재료에 가루카레가 어느정도 입혀지면 물을

자작 자작할 정도만 넣는다.

바글거리며 끓을때 고체가루 두 조각과

우유를 조금 섞어준다.


현미밥위에 사르륵 부어 먹는다.


건강을 위해 주기적으로 카레를 끓이며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부고장을 받았다.

외삼촌의 부고장이다.


두어달 전에 갑자기 식사를 못하신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그 후로 언제 소식이 들려 올지 몰라

조마조마했었다.


특별한 증상없이 밥을 못 드시고 결국 기운이

없으시니 의식을 잃으신거다.

외숙모 말씀으로는 병명은 뇌종양이셨다.

그동안 온갖 검사를 해도 알 수가 없었던  병명이

두어달전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밝혀진 것이다.

일흔이 조금 넘으신 연세에

그렇게 황망히 가셨다.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이라는데

장례식장이 너무 초라하다.

시설이 너무 오래되어 80년대 영화에

나오는 모습이다.

주차는  기막힌 곡예를 하듯 올라가야 했고

그냥 왠지 모를 짜증이 밀려왔다

어쩌면 외삼촌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과

늦게 밝혀진 병명 등등에 대한

속상함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의 풍경은 모두가 예상하는

그 모습이다.

수년간 얼굴을 보기는 커녕

전화 통화 한번 하지 않았던 친척들이

 한쪽에 모여 앉아

그동안에 어찌 지냈는지

서로 묻고 대답하기에 여념이 없다.


한 명씩 도착할때마다

"  ㅇㅇ 아~~  아이구 오랜만이다."  로 시작해서

서로의 자식들 안부를 물으며 은근 슬쩍

자신의 자식들이 잘 나가고 있다는 스토리로

연결이 된다.

어느 대학엘 진학했는지, 어느 직장엘 다니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옛 추억이라던가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씁쓸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옛이야기를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묵묵히 들어주면서 이따금씩

" 그래? 진짜?" 하며 호응을 해준다.


 작은 외삼촌은 내가 어릴때 함께

살았던 분이시다.

예전에는  다 그랬다.

형제중에 누구 한 명이 서울에 자리잡고 살면

동생들을 한 명씩 건사하며 함께 살았다.

우리집에선 처음에 고모가 함께

살다가 결혼을 했고,

그 다음엔 외삼촌이  우리와 함께 살았다.

우리집에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시고

결혼도 하셨다.


외삼촌은 다른 조카들보다 누나의 자식들인

우리 3남매를 정말 예뻐하셨다.

매우 온유하신 분이었고 ,

퇴근하실때 항상 상투과자를 사다 주셔서 삼촌을 기다리는 일은

' 즐거움 ' 이었다.

삼촌은 우리 형제들 중에서도 첫 조카인 나를 가장 많이 예뻐하셔서

늘 삼촌 무릎에 앉아 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때 어느날, 어둑어둑해진 저녁에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오셨다.

봉투를 열어보니 빨간색 피겨스케이트였다.

5천원을 주고 사셨다면서

 "  누나,  우리 카야 (  삼촌은 늘 나를 조카야~ 라고 안하시고  " 카야" 라고 부르셨다. )  피겨스케이트 가르쳐라."

하셨던게 생생히 기억이 난다.

겨울이 되길 기다렸다가 정말 열심히도 스케이트를 탔었다.


그런데 그 기쁨이 오래가질 않았다.

1년 뒤 겨울에는 내가 키가 자라고 발이 급격히

자라면서 그 빨간 스케이트는 동생에게로

자연히 넘어갔다.

그 후로 막내 남동생까지 3남매는 그 스케이트를

가죽이 벗겨질때까지 탔었다.


추운 겨울밤 창밖에서 "  찹쌀떠억~~" 소리가

들리면 얼른 찹쌀떡을 사주셨었다.

작은방에 복닥거리며

 커다란 호피무늬 밍크담요를  6명( 우리가족과 삼촌)이 함께 덮고 앉아 귤을 까먹으며

주말의 명화나 토요명화를 보기도 했었다.

우리 아버지도 공무원이셔서

 외삼촌과 가장 가깝기도 했었다.

그랬던 삼촌은 결혼을 하시면서

우리집을  떠나셨고 그날,

하늘이 무더지듯 울었던게 떠오른다.


내 어린시절과 유년기에는 늘 외삼촌이 계신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 카야~ "  하시며

번쩍  들어 어깨위로 나를 무등 태우시던 분.

이제 이별을 했지만.....

추억이란 이런건가 보다.

가슴속에서 너무 반짝거려서 이따금 따끔꺼리는...


누구나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세상이치라지만

난 아직도 이런 이별이 두렵고 싫다.



https://youtu.be/TRYUBSTQ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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