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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 작업실을 만들었다

BLT 샌드위치



로만밀 통밀식빵은 토스터에 구워 식혀둔다.

토마토는 얇게 져며 씨를 대충 빼둔다.

로메인 상추도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뺀다.

머스터드 소스, 마요네즈 조금, 메이플 시럽 조금

섞어서 소스를 만들어 둔다.

달걀은 반숙으로 프라이해 둔다.

저지방 베이컨은 구워서 기름을 빼둔다.


바삭하게 구운 식빵 양쪽에 소스를 바르고

로메인상추, 토마토, 얇게 슬라이스한 오이,

베이컨, 계란, 하바티치즈 차곡착곡 얹어서

식빵을 덮어 꽉 눌러준 후에 페이퍼로 단단히 감아서 잘라준다.

새로 산 디카페인 원두 갈아서 내린 드립커피와

함께 든든한 한 끼.

아침에 눈을 뜨니 거실이 전쟁터다.


막내는 올해 졸업작품 준비하느라 1주일에

3-4일은 밤샘 작업을 하고 나머지 날도 몇시간

잠을 못자고 학교에 간다.

신경쓸게 많고 스트레스가 많으니

 입맛도 없고 짜증도 나는 모양이다.

밤새워 작업을 하고나서 아침이 되면 다시 그것이 맘에 안들어서 다시 만들고, 다시 만들고,

다시 만들고.....

막내는 리빙디자인과 산업 디자인을 복수전공 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는 말렸었다.

두가지 다 할 게 너무 많다는게 이유였다.

그런데 아이는 고집을 피웠고 우리는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서피스, 도자기, 텍스타일, 금속공예를 모두 다루는데 장비와 도구가 무척 많고 그것들이

얼마나  무거운지 툭하면 허리가 아파 고생이다.

그래서 남편은 4년째 아이를 차로 실어다 나르는

중이고 밤에 늦게까지 작업할때는 오밤중에

데리러 가기 일쑤이다.

그냥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모른체 하기엔

짐도 많고 아이가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다.


학교작업실에서 밤새기엔 무리가 있으니

많은 친구들은 학교 근처에 작업실을 구해두고

거기서 먹고 자고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우선 아이가 그걸 딱히 바라지 않고 우리 입장에선 몸도 힘든데 먹는거라도 제대로 먹어야하는데 굶거나 대충 먹거나 할 것 같아서

우리가 조금 힘들어도 라이딩을 해주기로

다짐한  것이다. 태우고 오가는 중에 아이는 잠시 자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밥을 제대로 먹일 수 있어서 힘들지만 이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학교 가는길에 수시로 재료를 사러 을지로나

종로에 들르는데 골목이 비좁아 늘 아슬아슬하고 수업시간 맞춰서 가야하니 마음도 급해진다.

올해는 다행히도  남편이 정년퇴직을 해서  전담

운전기사가 되버렸다.


아이는 학교에서 밤까지 하고서도  마무리가

안 된 것은 집에 싸들고 와서 거실에 펼쳐두고

계속 한다. 자기 방에서는  다 늘어 놓기가 역부족이고   금속이나 도자는 가루가 엄청 생겨서

환기도 중요한데 거실은 환기가 잘 되니 작업하기엔 딱 좋다.

어제도 밤을 새고 갈고 닦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맘에 안든다고 다시 할거라고

속상해하는걸 겨우 진정시켜 억지로 잠을 재웠다,

아... 작업실 작업실......

내머리 속엔 작업실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 영감을 받고 집중하려면 작업실이 필요하다.


그래서 엉망인 것을 대충 치우고 자리를 깔고

짐을 하나 하나 옮겨 나름대로 돗자리 작업실을

마련해 주었다.

얼마전에 실로 짰던 거실 매트를 접어서

방석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 하나님, 비록 보잘것 없고 작은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우리 막내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지혜를 가득 부어주세요."


아이는 매우 알뜰하다. 큰아이도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게 키웠고 막내는 막내라서 더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이 아이는 지나치게 알뜰하다.

도자기 표면을 갈아내야 해서 사포가 많이 필요하다. 계속 새로운걸 사주는데도 아이는 그걸

자꾸 아끼고 쪼가리들을 쓰고 또 쓰고  너덜너덜해 질때까지 쓴다.

인두도 하나 사주려 하니 선배가 안쓰고 버린걸

가져다가 작동이 잘 된다면서 신나게 쓰고 있다.


사실 미대는 등록금도 비싸고 들어가는 재료비,

전시비 기타 등등 돈이 많이 들어가긴 한다.

아니 중고등학교때 입시준비시절부터 카운트하자면 계산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저축도 따로 들어두고

그쯤은 감당할 수가 있다.  

단 한번도 아이에게 돈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아이는 스스로 아끼고 절약한다.

심지어 공모전 상금도 알뜰히 모으고 있다.

그런 막내를 보면 내가 나이들어가는게 안타깝고 이 아이곁에 아주 아주 오래 함께 해주고 싶다는소망도 간절해 진다.


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무척 미안한 게 딱 한가지

있다.

아이는 서울대학교가 아니어도 충분히 훌륭한

대학에 입학했지만  반수를 하며 서울대 입시를 다시 준비했었다.

다행히 고등학교때 내신이 좋아 그건 걱정이

없었고, 자소서도 서류전형 1차 합격한 경험이

있어서 미련을 못버리고 아이가 다시 도전한다고 했을때  허락을 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실기 준비로 정신이 없던터라

나에게 수능시험 접수를 좀 해달라고

당부했는데 내가 날짜를 잘못 알아서 그 중요한 수능접수를 못했던 것.

나는 그날 이후로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스스로 아이에게 죄인이 되었다.

아이는 꼬박 1주일을 울고 불고 난리였지만

금새 털어버리고 학교에 열심히 다녔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리고 내가 아이의

인생을 가로막았나 싶어 갑갑하기도 하다.


얼마전 남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 내가 운동하는 이유 우리 막내때문이야."

라고 말하니 남편은 놀렸지만 나는 진심이다.

늦게 낳아서  세월이 흐르니 이렇게

아이를 바라볼때마다  내내 짠하다.


그런 마음을 켜켜이 쌓고 누르고 단단히 감으며

살아가 듯이  샌드위치 속을 쌓았다.

한 입 베어 먹으니 이렇게 든든하고 맛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쌓게 되려나 ...


https://youtu.be/t1L5Udhkr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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