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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 산책

연금 받으면 살고 싶은 도시

제네바를 출발하여 본격적으로 프랑스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습관적으로 하늘을 보게 되었다. 지치도록 푸르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멀리  구름에 감춰진 이름 모르는. 산줄기가 이고 있는 하늘은

푸르고 푸르고 또 푸르렀다.

여행 중 매일 2시간  또는 그 이상으로 운전해야 하는 남편의 표정을 슬쩍 훔쳐보니  정신적인 안정과 아름다운 풍경이 피곤한 몸을 이기고 있는 것 같았다.

번갈아 가며 운전을 하자고 했지만 남편은 나를 못 믿겠는지 핸들을 건네주질 않았다.



드디어 안시(Annecy) 역이 나타났다.  역 앞에 가지런히 줄 세워진 자전거가 인상적이었다.

숙소를 빨리 찾았지만 이곳 역시 호텔주차장이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서 가방을 모두 내리고

다시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하고 되돌아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 호텔은  현관입구에서 프런트까지 계단을 한번 올라가야 했다. 그러나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체크인을 하고 보니 제일 꼭대기 층이었다.

직원들은 우리를 배려해서 꼰대층을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4층까지밖에 안 가서

4층에 내려서 남은 층을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오롯이 걸어 올라가야 했다.

이런 게 바로 정신수양이겠다 싶었다.

유럽은 높은 건물의 호텔이 거의 없다. 시내에서 좀 벗어나 외곽으로 가면 숙소비도 많이 비싸지 않고 엘리베이터도 있는 곳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이라도 동선을 줄여보려고 시내 중심부에 숙소를 정하다 보니 아무리 비싸도 오래된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꼭대기층까지 가지 않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어찌나 작은지 두 사람이 가방 한 개씩 갖고 타면 꽉 차서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랑스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처음 만나 곳

안시.

알프스 계곡의 산자락 아래에 있는 인구 60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대충 가방을 풀어두고 밖으로 나와 숙소 앞에 있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다.

타이 음식점이었는데 배고파서 허겁지겁 먹고 계산을 하는데 가격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결국 우리는 다음날 다시 한번 그 식당에 들러

전날과 똑같은 메뉴를 먹었다.

두 번 먹어도 참 맛있고 푸짐했다.

무엇보다 깨끗하고  해산물을 아낌없이 넣어서

고마운 마음으로 먹었다.

배를 채우고 느려진 걸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덧 안시호수다.   보자마자 와~ 하는 탄성이 쏟아졌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호수를 찾은

모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와~~~ 소리를 질렀다.

하늘과 호수의 경계가 보이질 않았다.

그날은 날씨가 맑았지만 굉장히 추운 날이었다.



스위스와 국경을 마주하는 도시여서인지 호수 안에 알프스 산맥이 고스란히 스며들어있었다. 프랑스 최고의 호반도 시답게

관광객뿐 아니라 시민들도 호숫가를 힘차게 달리고 있었고  한 남자는 자신의 반려견을

강아지 올림픽에 데리고 가려고 매일 한 시간씩 호수에서 수영연습을 시킨다고 했다.

그런데 착하고 순하게 생긴 강아지는 주인이 물에 밀어 넣으니 풍덩하고 빠질 뿐 전혀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도 추워서 옷을 잔뜩 입었던 날이었는데 강아지는 오죽할까 싶어서

사람의 욕심을 탓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왕이면 고된 훈련을 했으니 그 강아지가

금메달을 받았으면 좋겠다.

또 한 남자는 나무다리 끝에 걸터앉아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이 몹시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여서 물수제비라도 뜨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매일 이런 하늘과 호수를 보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중세시대의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구시가지와 도시 전체에는 타우와 바세 운하가 흐르고 있다.

그래서 그 느낌이 베니스 같기도 하다.

마지막 사진은 물 위의 성 팔레 드 릴이다.

12세기때 영주가 머물던 곳이었고 요새로 지어진 곳인데 성  뒤편 마을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샘 노즈 산에 안시성이 지어지면서 이곳은 감옥, 조페국등으로 사용되었다.



바랑 부인 운하길 (Quai madame Warens)

은 운치 있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고 스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특별한 것이 없는 길이지만

어쩌면 이 길에 얽힌 스토리 때문에 마음이 두근거린 걸지도 모른다.  18세기 프랑스 계몽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자신의 후원자였던

바랑 부인을 처음 만난 곳이다.

루소는 제네바의 시계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지냈다.

16살 때 신부님의 소개로 안시의 바랑남작 부인을 소개받아 그녀의 후원으로 집사로 일하며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둘의 관계가 참 미묘했다. 루소는 자신보다 13살 나이가 많은 바랑부인을 엄마라고 부르고  바랑부인은 루소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데

아직까지도 이 둘의 사랑이 모자간의 사랑인지 이성 간의 사랑인지 판단할 수 없게 묘한 사랑이라고 전해온다.

이 길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어떠했을까.

바랑부인의 후원 덕분에 훌륭한 사상가 한 명이 탄생했으니  나도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 생각된다.



사랑의 다리( Pont des amours ) 위에서 바라본 바세운하이다. 백조와 흑조가 사람들과 교감을 나눈다.  이미 가을이 와버린 안시는

낙엽이 많이 떨어졌고 여름내 빼곡했던 가지들이 듬성듬성 살을 내보이면서 하늘이

비집고 들어왔다.  채움에서 비움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나는 안시를 걸었다.

운하를 따라 걷는 것도 호숫가를 걷는 것 못지않게 복했다.  관광지의 북적거림도 느껴지지 않고 모두 물을 바라보는 마음은 다 똑같은가 보다.



호수와 운하 주변을 걸은 후 골목을 걸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상점이 있고 음식점도 있다. 일부러 인터넷으로 맛집을 찾아보지 않았다. 지나가다 배고프면 그냥 들려보고 싶었다.

놀이터가 보여 잠시 아이들 구경을 했다.

세계 어느 나라든 아이들은 다 똑같다. 낯선 이를 보면 엄마 뒤에 숨고, 놀이기구에 정신이 팔려

불러도 대답이 없고... 그렇게 무언가에 빠져 깔깔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는 지나가는 이에게 힘을 준다.  

유모차에 잔뜩 아이 물건을 싣고 정작 아기는

한쪽 팔에 의지하여 힘들게 안고 가는 젊은 엄마를 보았다.  아기는 뒤에 가고 있는 나를 보느라 더욱 몸을 옆으로 갸우뚱하고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는 사진을 찍었는데 엄마는 무척 힘들었겠다.


걷다가 나를 사로잡은 반찬가게.

음... 정확히는 한 끼 식사가 될 만한 무언가를

테이크 아웃할 수 있는 가게였는데  그들은

반찬처럼 먹는다고 했다. 신기한 것들을 조금씩 골라 한 보따리 안고 차 안에서  맛을 보았는데

보기와는 달리 너무 짜고, 달고, 시고..... 나의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음식을 먹는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신기한 치즈를 조합해서 먹었던 샌드위치와

추운 아침에 속을 데우려고 들어간 브런치 가게는 모두 맛있는 기억을 남겨주었다. 아이들이 나에게 " 이건 엄마가 만들어 주는 건데." 말해주어 그동안 열심히 밥해먹인 보람은 있구나 싶었다.



호숫가 파키에  공원이 평회롭다.

안시는 은퇴하고 살고 싶은 도시 1위이라고 한다.

그 명성에 맞게 나이가 지긋한 노인분들이

정말 많았다. 백발의 노부부들이 건강하게

손을 잡고 볼을 비비면서 산책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국민연금을 받는 나이가 되면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병원 가까이 살기 위해

이사를 다닌다.

그런데 이렇게 맑은 공기 속에서 늘 푸른 하늘과

호수를 보며 걷고, 먹고, 웃으면서 살 수 있다면

병원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일종의 고집이었다.

빨리 여행을 다니고 싶어서 알뜰히 돈을 모아

집 장만을 제법 빨리 했었다. 그 후로는 아이들이

유치원 때부터 짐을 이고 지고 1년에 한두 번씩

비행기를 탔었다. 그래서 그동안 정말 많은

산, 바다, 호수를 보았지만 단연코 안시가 최고였다. 관광지에서 흔히 볼만한 유적지나 유명한 박물관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도시 자체가 그냥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호숫가를 걸으며 강한 바람에도 요동치 않고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었구나....

훌쩍 떠나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할애해야 하지만 와보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곳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었다.

은퇴하고 살고 싶은 도시 1위.

남편은 작년에 은퇴하였고 1년 후에 연금을 받는다. 나는  남편보다 몇 년 후에 연금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때....

혼자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모두 여행이 내게 가져다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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