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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산책

뉘 집 아들인지 축하해요


레만호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제네바는 장 자크 루소의 고향이고 스위스 시계산업을 상징하는 도시이다. 또 UN의 유럽본부와 WTO 세계무역기구등 22개 국제기구가 있는 국제도시이다. 프랑스 종교개혁가인 칼뱅이 태어나 주로 활동했던 곳이어서 개신교의 성지라고도 한다.

지방의 작은 동네 같았던 에비앙에서의 예쁜 추억을 뒤로하고 제네바로 향할 때 약간의 두근거림이 있었다. 국제도시인만큼 얼마나 큰 도시일까? 기대가 컸다.



제네바에 도착하자마자 주차장을 찾느라 매우 힘들었다. 스위스의 물가는 살인적이라서 주차장을 잘 선택해야 했는데 공영주차장을 겨우겨우 찾아서 주차를 했으나 너무 지저분하고 악취가 나서  과연 주차를 해도 될까 싶었다.  주차장 넓이는 굉장히 넓었지만

화장실이용이 자유롭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인지

비싼 주차장에도 이곳저곳이 너무 지저분했다.

깨끗한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만 코를 막고 다녔지 그곳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겼고

심지어 볼일을 보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암튼 찝찝한 기분으로 간신히 주차하고 지상으로 올라와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이

'  제토( 대분수 )'였다.

몽블랑 다리를 건너면 넓은 영국정원 ( Jadin Anglais)이 있고 호수 위에는 140 미터 높이의 분수 '제토'가 힘차게 물줄기를 뿜 어내고 있었다.

이 분수는 우연한 계기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1886년 제네바의 한 배수업체가 물사용이 적은 밤에 배관의 압력을 낮추려고 구멍을 뚫어 조절한 것이 지금의 제토가 되었다. 제토는 시속 200km 1360 마력의 압력으로 초당 500리터의 물을 사용하며 허공에 떠있는 물의 양이 7000리터나 된다고 한다 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몽블랑을 감상하면서

호반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주차장은 잠시 잊혀졌다.



호반산책로를 따라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몽블랑 거리에 도착했다.  

기차로 왔다면 가장 먼저 걷게 되는 거리이다.

레만호수에서 흘러나온 론 강의 북쪽 강변도로인데 식당, 은행, 우체국,  명품샵 등이

대로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작은 갤러리도 많았는데 우연히 보게 된 튜뷰 낀 여인의 모습을 보고 실제 모습인 줄 알고 유리창을 톡톡 건드려 보기도 했다.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져서 춥긴 했지만 비가 오지 않고 맑아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렇게 골목으로 접어들어  언덕위 구시가지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구시가지에서 가장 처음 만난 것이 생 피에르 대성당이었다.

사실 대성당을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냥 걷다 보면 이런 곳들이 툭툭 나타난다.

종교개혁 운동시기에 프로테스탄트( 복음주) 예배장소였다고 한다. 가톨릭 성당으로 처음 지어졌는데  종교개혁 신학자들에 의해 후에 개신교 교회로 바뀌었다. 본당 안쪽에 프레스코화와 스테인드글라스가 무척 아름답다고 하는데 공사 중이어서 내부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게 아쉽다.

그리스 신전처럼 받치고 있는 6개의 기둥이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유일한 기도처럼 느껴졌다.



생 피에르 대성당에서 한참을 하늘을 향해 꼭대기를 바라보았더니 목이 꺾일 듯 통증을 느꼈다. 서로의 목을 마사지해 주면서 걷다 보니

작은 골목 안에 굉장히 많은 사람이 북적이고

아치형의 건물 안에서 무슨 파티를 하는지

웃는 소리와 함께 음악소리까지 굉장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그들 틈에 걸어 들어가 보니  맛있는 음식과 와인이 가득이었고 삼삼오오 제복 입은 사람들과 시민들이 매우 기쁜 표정으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한 사람이 내 손을 끌고 가서 와인을 한 잔 건네면서 " 이건 아주 유명하고 맛있는 와인인데

여자인 당신이 마시면 아주 좋을 거야" 했다.

얼떨결에 와인을 받아 들고 마시면서

그들이 브라보를 외치면 나도 함께 외쳤다

너무나 궁금했다.  무슨 파티이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골목을 꽉 메우고 브라보를 외치는 걸까?

그래서 제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 지금 무슨 파티를 하는 겁니까?"

"  올해 새로 경찰이 된 아들들을 축하해 주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를 축하해 주러 온 가족인가요?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아하! 그랬구나. 새로 임관한 경찰들을 축하해 주러 온 가족들의 파티였던 것이다.

남편은 빨리 나오라고 손짓을 했지만 이왕 들어간 김에 이 아들 저 아들 제네바의 아들들에게 축하한다고 악수까지 해주면서

인파를 해치고 나왔다.

사람들 틈을 간신히 빠져나온 나의 양손엔

맛있는 크루아상과 카나페가 쥐어져 있었다.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싶다.



남의 집 아들들을 열심히 축하해 주고 언덕길을 내려가  바스티 옹 공원에 가는 길은 이미 가을색이 완연했다.  바람이 불어서이지 낙엽도 꽤 많이 떨어지고 높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어 보았다.

몇 년 전에 왼쪽 발가락에 실금이 가서 쇠를 박는 수술을 한 적이 있다. 내리막을 걸을 때는 엄지발가락에 힘이 들어가서 많이 조심을 해야 해서  긴장을 하다 보니 갑자기 발에 쥐가 났다.

내 발 같지 않고 발이 굳는 것만 같아서 잠시 겁이 났지만 운동화를 벗고 한참 주무르니 서서히 회복이 되었다.


 바스티 옹 공원 앞 브광장은 옛날엔 사형을 집행하던 장소였다는데 지금은  알록달록한 트램이 가로지르고 있었고 스위스의 통일을 주도한 기욤 앙리뒤푸르 장군의 동상이 있었다.


바스티옹 공원은 제네바의 녹색허파라고 불릴 만큼 키가 큰 나무들과 잔디로 이루어진 공원이었다.

궁전입구에서나  볼 수 있는 철문을 지나자마자

거대한 체스판이 보인다. 공원을 산책하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함께 거대 체스판에서 체스를 둔다.  그 광경이 신기하고

마음의 여유가 느껴졌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양재시민의 숲에도 거대 장기판이나 바둑판이 있다면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좋은 휴식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공원을 돌다 보면 거대한 높이의  조각비가 보이는데  종교개혁기념비이다.

담벼락에는 존 녹스, 칼뱅, 테오도르 베제, 기욤팔레 등의 종교개혁가들의 모습이 거대하게 조각되어 있다.

벽에는 종교개혁운동의 모토였던 ' 어둠 뒤에 빛이 있으라' 란 의미의 ' Post Tenebras Lux'가 새겨져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후세에 이렇게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을 했었을까.

어쩌면 내가 지금 살면서 나의 믿음대로 내가 옳다고 생각되는 무언가를 내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노력을 한다면 혹시 후대의 나의 자손들이 깨달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하늘빛이 신기했다. 같은 하늘이 이쪽에서 보면 높고 푸른 하늘인데 반대편에서 보면 회색빛에

곧 비가 쏟아질 듯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은 모습이었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나시옹광장으로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부러진 의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과연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스위스 조각가

다니엘 베르트의 작품으로써 지뢰에 반대한다는

뜻을 담은 작품이다.  의자의 다리가 3개밖에 없고 한 개는 부러져 있다. 나무가 쪼개져 나간 모습을 보며  지뢰로 다리를 잃거나

생명을 잃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다시 구시가지로 돌아왔는데 놓치고 보지 못했던  곳이 보인다. 종교개혁박물관이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종교개혁이란 걸 외우면서 공부했을 뿐이다.

그런데 제네바에 가보니 곳곳에 칼뱅의 동상, 기념비, 기념관, 종교개혁박물관 등등 칼뱅이

어떤 존재였나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박물관에는 과거의 구교와 신교의 갈등문제와 그 중심에 있었던 칼뱅에 대한 자료가  있었다.

1년 넘게 보수공사를 거쳐 지금은 다시 개관을 하고 있다. 제네바는 의미 있는 성지였다



시내를  돌아보다가 왠지 모르게 다시 구시가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구시가지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제네바 시내의 모습은 석조건물들 때문인지  무척이나 단단하고 품위 있었다.


9월의 한국은 몹시 후덥지근했었다. 그래서

유럽도 초가을 정도의 기온이겠지 생각해서

가벼운 겉옷을 몇 개 가져갔는데 갑자기 강풍이 불고  기온이 3도까지 내려가면서 도저히 가져간 옷을 여러 겹 겹쳐 입는 걸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식구들에게 입히려고 ZARA를 찾아갔다.

그런데 가격이 스위스프랑으로 굉장히 비쌌다.

같은 옷을 우리나라, 프랑스, 독일, 스위스를 비교하니 스위스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가격이어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추웠지만

모두 덜덜 떨면서 참고 프랑스에 가서 사기로 했다.

시계의 도시답게 열 걸음 걷기 무섭게 시계를 파는 크고 작은 시계상점들이 보였다.

종교개혁 전에 화려한 생활에 젖어있던  제네바는 금은보석에 대한 세공업이 발달했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으로  인해

사치스러운 생활이 금지되면서 그 많은 세공업자들이 갈 곳을 잃었다가 보석대신 시계를 세공하면서 지금의 시계의 도시가 되었다.


칼뱅의 존재는 대단했다. 그는 종교개혁과 함께 두 가지의 교육개혁을 일으켰다고 한다.

한 가지는  스토아 사상가들의 저작들을 읽고 번역하는 인문교양교육을 통해 시민을 양성하고 또 한 가지는 교회에서 칼뱅이 저술한 교리문답서를 교재로 한 교리문답교육을 통해

건전한 기독교인을 양성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제네바는 유럽 최대 호수인 레만호수 끝에 있어서인지  문화, 언어, 시민들의 성향도 프랑스와 분위기가 많이 닮아 있었다.

'평화의 도시'라고 불려질 만큼 자유로워 보였지만 친절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다)


공부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고 떠난 여행이라서

도착해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걷다가 인터넷을 찾아보고  또는 다녀와서

더 깊이 공부하게 되어 참 좋다.

학창 시절 정말 암기하는 게 싫어서 기계처럼

달달 외웠던 것들을 이제야 그 시대를 이해하면서 저절로 기억할 수 있게 되다니

체험학습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싶다.


 평생 알고자 하는 욕구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보는 것 말고도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보고, 맛보면서

남은 인생을 다채롭게 꾸며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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