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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앙 산책

물 마시러 에비앙으로

바젤과 베른을 거쳐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고민을 했었다. 지도를 보니 프랑스 남부로 가는 루트는 몇 가지가 있었다.

우리는 몽트뢰에 가서 프레디 머큐리의 멋진 동상을 볼 것이냐 아니면 에비앙의 물맛을 볼 것이냐 꽤 고민을 했었다.


결론은 물맛을 보자!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국경은 한산했다. 아무도 어디 가냐고 묻지도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나드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서울에서 강원도 가듯이 국경을 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덧 에비앙  뱅의 이정표가 보였다.

에비앙 레 뱅은 프랑스 레만 호수 유역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레만호의 물은 프랑스 남쪽으로 흘러 론강이 되고 동쪽 끝엔 몽트뢰, 서쪽 끝에는 국제 금융도시인 제네바가 있다.

주로 호수 건너편 스위스 로잔에서 유람선을 타고 에비앙 쪽으로 건너온다고 한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몽트뢰의 프레디 머큐리를 포기하고 선택한 에비앙의 물맛을

보기 위해 카샤의 샘물 (Cachat spring)로 향했다.  몇몇 주민들이 물병을 가져와 물을 받고 있었다.

에비앙 생수가 처음 발견된 곳은 나쇼날 가의

카샤 샘이다. 한 남자가 3개월 동안 매일 이 물을 마시고 요로결석을 치료하면서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고 샘물의 주인은 물치료센터를 세웠다고 한다.

현재 에비앙 레 뱅에서 나오는 샘은 30군데인데 이 중에서 카샤 샘을 포함한 2개는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나머지는 공장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누구든지 공개된 수도에서 무료로 물을 받을 수 있고 마실 수가 있다.

에비앙 생수는 미네랄 함유가 높아서인지 첫맛이 묵직하고 바디감이 느껴졌다. 쨍한 청량감보다는 약간의 소금을 탄 음료수느낌이랄까?  직접적으로 짠맛이 느껴진 건 아니지만 뒤에 남는 여운이 우아했다.

한국에서는 에비앙생수가 많이 비싸서 자주 사 먹은 기억은 없는데  직접 에비앙에서 맛을 보았으니 돌아가면 꼭 사서 다시 맛을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매일밤 이 물맛을 기억하고 떠올렸다.



에비앙은 호수도시이다.

걷다 보면 물이 보이고 물을 따라가보면 그곳이 바로 호수이다.

영어로 제네바 호수 프랑스어로 레만호수이다.

흔히 레만호수로 부른다.

급히 예약한 숙소로 들어가는데 차가 많이 막혔다. 주말도 아니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차가 많아서 좁은 도로는 주차장 같았다.

그런데 호수를 바라보느라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차를 세우고 호숫가를 걸었다. 호수의 규모가 어찌나 큰지 바다 같았다. 어마어마한 바람이 불어서 머리카락이 뒤집어지고 파도가 거세서

호숫가 바로 앞에 있는 집들의 마당까지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우리나라는 위험하니까 물에서 조금 떨어져서 집을 짓게 하는데 에비

그냥 호숫물 속에 집을 지어놓은 듯했다.

그 모습이 참 아슬아슬해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들은 그렇게 물과 아주 가까이 살고 있었고 나처럼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호수 건너편에는 손에 잡힐듯한  스위스 로잔이 보였다.

이런 물빛을 애메랄드빛이라고 하던가?

물감으로는 도저히 이 색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손을 담그면 새파랗게 물들어 버릴 것 같았다.

어떡하지.....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이유 없이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팔레 뤼미에르는  수치료센 터였는데  현재는 문화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빌라 뤼미에르는 최초로 영화를 만들어 상영했던 영화의 발명자 뤼미에르 가족의 여름별장이다. 정면에 조각된 아기천사 한 명이 영화를 찍는 모습이라고 한다.


몇 시간이면 전체를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였다. 물론 박물관에 입장하여 샅샅이 보자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건축물의 생김과 사람들이 사는 모습들을 보고 싶었고 아침밥 먹고 슬리퍼 끌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듯 그렇게 돌아보고 싶은 여행이었으므로

도시에 대해 사전에 찾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가보았다.  그렇게 걷다가 뜻밖에 유명한 곳을 발견하기도 하고 신기한 음식을 먹어보기도 했다.

골목 안 작은 서점의 주인 할머니가 서점 앞에 작은 테이블을 놓아두고 지나는 사람이 잠시 앉아 쉬어가라 하셔서 결혼 30주년 기념사진을 그곳에서 찍었다. 내가 코바늘로 짜서 만든 라임색 가방과 테이블색이 같아서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리마인드 웨딩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오래 추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에비앙의 작은 골목들 안에는 16, 17 세기의 집들이 아직 남아있기도 했다.



마트 구경도 빼놓을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는 가격이 훌륭했다. 머무는 곳이 호텔이 아니었다면 그곳의 재료들을 사서 음식을 만들어 보았을 텐데 아쉽다.

마트에서 알려준 피자집에 가보았다. 관광객은 모르고 에비앙 주민들만이 픽업하여 먹는 집이라고 했다. 가보니 정말 조그만 가게였다.

 시그니쳐 메뉴와 샐러드를 포장하여 숙소로 가서 침대 위에 펼쳐놓고 옹기종기 네 식구가 머리 맞대고 먹었는데........ 소화력이 떨어져

평소 피자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가지피자를 3조각이나 먹어치웠다.  정말 맛있었는데

가게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이런.....



한국에 돌아와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는데

에비앙 생수가 있었다. 처음으로 한 박스를 사서

먹어보는데 신기하게도 에비앙에서 먹었던 그 물맛이었다. 입이 기억하고 있었다.

에비앙 생수의 로고가 산봉우리인 이유는

에비앙이 호숫가에 있어서 에비앙 생수를 그 호수에서 끌어온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산에서 나오는 물임을 알려주려고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은 나도 그러줄 알았음을 고백한다.)


자동차로 여행하는 여정은 참 다양한 날씨를 만나게 된다.

맑고 푸른 하늘에 눈이 지칠 때쯤 이슬비가 내려주고 구름이 낮게 내려앉기도 하고 차선이 안보일만큼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차를 세우고 시장한 배를 채우기도 하고 전날 걸었던 도시의 어느 한 곳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잠시 내려 운동을 하기도 했다.

에비앙은 관광객이  많이 들르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 북적거리지 않았다.

남편이 갑자기 피부에 발진이 생기고 가려워서

혹시 드버그에 물린 게 아닐까 걱정되어

약국을 찾았는데 약사님이 진료실로 데려가서( 병원도 아닌데 진료실이 있었다) 온몸을 자세히 살펴보고 다행히도 드버그는 아니라면서 약을 지어주고 연고를 주었는데

딱 한번 먹고 바른 후 깨끗이 나아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약국문을 닫을 시간에 늦게 찾아갔지만 친절하게 상세히 문진하고 살펴보고

약을 지어준 그 잘생긴 약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이제야 전한다.

에비앙의 물맛은 최고였다. 몽트뢰를 포기한 보람이 있었다.


살다 보면 갈림길에서 한쪽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일들을 만난다. 내가 선택한 길이 잘못될까 봐

혹은 가지 않은 그 길이 원래 내가 갔어야 하는 길이 아닐까 늘 노심초사하고 후회하며 살아간다.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혹시라도 잘못 선택한 길을 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길 위에서의 실패와 고됨은 다음에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분명히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가지 못한 길에 대해 후회하느라 더 이상 시간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몽트뢰에 가지 못한 후회보다는 에비앙에서의

맛있는 물맛과 결혼기념사진을 더 감사히 여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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