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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 산책

빈센트 반  고흐는 떠나고


요새도시 아비뇽에서 어찌나 뜨겁고 더웠는지

차 안의 에어컨 덕분에  달리는 내내 나른했다.

어느덧 아를( Arles) 도착했다.


아를의 호텔은 금액에 비해 무척 큰 숙소였고

건물이 모두 중세시대 건물처럼 허물어질듯한

분위기의 아를 시내에서 비교적 이름이 있는 곳이었다. 대충 짐을 던져두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식당과 카페가 밀집해 있는 포룸 광장으로 향했다.



한국을 떠나온 지 벌써 열흘.

슬슬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지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한식 가게를 찾지 못해

결국 베트남 음식점을 찾아갔다.

밤 8시가 넘은 시간이라서 빨리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갔는데 웬걸..... 사람들이 매우 많이 줄을 서고 있었다.  평소에 줄 서면서 먹지는 않는 편이라서 잠시 망설였으나 그래도 주린 배부터 채워야 해서 일단 연락처를 남기고 골목을 걸었다. 그날은 굉장히 더운 날이어서인지  곳곳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골목에 들어섰는데  교회, 성당, 갤러리정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거주하는 주민이 있다는 걸 알고선 숨도 내쉬지 않고 살금살금 걸었다. 가끔 빨래를 걷는 주민들이 창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반가운 인사를 건네오기도 했다.

포룸광장은 로마시대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신기했다.  무겁고 고요한 골목과 상반되게

광장은 젊음과 생동감이 느껴졌다.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지나고 베트남 식당으로 향했다.

너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를 주문했지만 추가로 더 주문할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주인이 우리에게 중국인이냐고 물었던 거 외에는  기대 이상으로 아주 맛있었다.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때부터는 설렁설렁 여유롭게 광장 주변을

걸어볼 수 있었다.

어느덧 도착한 곳이 카페 반 고흐였다.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아니면 아예 폐업을 한 것인지 몰라도 카페 앞에는 테이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고흐의 그림 < 밤의 카페테라스>의 배경인

이 카페는 실제로 고흐가 이 카페를 그릴 당시엔

별빛이 비춰서 노랗게 보인 걸 표현했다는데

카페 주인이 노란색을 칠했다고 한다.

밤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이 도시를 있게 한 고흐를  떠올리며  차분히 걸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사랑스러운 론강을 걸었다.

고흐의 작품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선

그야말로 별이 쏟아지고 있고 별빛이 론강 위에

번져서 눈이 부실지경이다.  그리고 고흐의 밤하늘은 늘 푸르다. 별빛 때문에 검은 하늘이 그렇게 느껴졌을까.  그런데 실제로

보게 된 밤의 론강은 별빛도 불빛도 없었고

하늘은 칠흑처럼 검기만 했다.

아를로 건너는 다리를 먼발치에서 오랫동안 바라보는데 결국 별은 보지 못했다.

그저 흐르는 론강의 물살만 느껴질 뿐이었다.


고흐는 아를에서 동생 테오의 소개로 고갱을 만나 9주 동안 함께 작품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두 사람은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로서 자연에 관심을 갖고 자연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할 건지 상상력으로 그릴건지에 대한 의견대립이 있었다. 고갱은 " 우리는 하나는 끓어오르는 화산이고 하나는 안으로 소용돌이치는 존재"라고 했다. 다툼 끝에 고갱은 떠나고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고흐가 상상력으로 자연을 그린 걸까.

론강위로 온통 쏟아지는 별빛에 그림을 보는 이마저 강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데

그 별빛이 고흐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고흐의 그림 속 론강은

희망이 가득한데 내가  본 론강은 들떠있던

마음을 오히려 꾹꾹 누르는 것만 같았으니까.



아를에서는 비교적 주차가 어렵지 않았다.

밤이라서 그런지 광장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차를 세워 두었다.

숙소로 돌아가려고 주차장까지 걸어가는데

 아를을  둘러싼 성벽과 성문이 보였다.아주 견고해 보이는 성문이었다. 외부의 그 무엇도 받아들이지 않을듯 보였는데 이런 곳에 고흐가 왔으니 참 많은 일이 있었겠다 싶었다. 밤 11시쯤 되니 식당과 카페가 하나둘씩 영업을 종료하고 식당 주인들이 거리에 나와 앉아 하루를 마무리하는 듯 보였다.

우리는 네 명이 뭉쳐 다녀서 두려움이 덜 했지만

혼자 밤길을 다니는 건 좀 위험해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아를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창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셔서 늦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전날 밤의 론강 생각에 깊은 잠을 잘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늦잠 자는 아이들을 두고 남편과 둘이 아를의

새벽을 보기 위해 마을로 나갔다.

일찍 문을 연 빵집이 보였다.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가게로 들어서니 마침 구운 빵이 나오고 있었다.  남프랑스의 바게트 맛이 궁금했다.

예전에 파리에 갔을 때 먹었던 바게트의 질감과 맛을 난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내가 먹었던 그 빵집의 빵이 그랬는지 모르지만 암튼 질겼던

식감에 실망했었다.  아를의 바게트는 어떨까....

한 개에 2천 원이 안 되는 바게트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빵을 몇 개 사들고 나왔다.

반을 뚝 잘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와~ 겉은 바삭거리고 아니 그 바삭거림은 잠시이고 버터향 진동하며 야들 거리고 보드라운 것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어떻게 2천 원이 안 되는 프랑스 국민 식사빵의 맛이 이럴 수가 있을까.  근처 마트에서 커피를 한 잔 사서 둘이 나눠 먹는데 이 별것 아닌 행위가 어찌나 행복하던지....

건물들은 아주 오래된 중세도시를 연상케 했다.

온통 회벽의 갈라진 벽들이지만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선 불안, 두려움이 아닌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늦잠 중인 아이들을 깨워  에스파스 반 고흐에

갔다.  

아를은 곧 고흐인 것 같다. 어떤 이가 말하길

고흐는 평생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는데

적어도 15개월 머물렀던 아를에서는 이곳에서의 삶이 전부인양 열정을 다해 살았던 듯싶다.

에스파스 반 고흐는 흐가 고갱과 말다툼 후에 자신의 귀를 잘랐을 때 입원해 치료받은 병원이다.  이곳에서 < 아를의 병원에서 >등

많은 그림을 남겼다.  1986년에 병원은 폐쇄되고 지금은 고흐 기념관처럼 이용되고 있었다.  여름의 끝무렵 이어서일까 정원의  꽃과 나무는 그 푸르름이  병원을 꽉 메우는 듯했다.

아를의 사람들은 잠시 머물다간 그러나 아를을 매우 사랑했던 화가를 아직까지 기억하며

고흐와 관련 있는 모든 곳을 아주 정성껏

보살피고 있었다.

그날도 정원관리사가 가지를 정리하며 매우 분주했다. 1층은  기념품 상점과  아틀리에가 있고 2층은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아를 아레나는 아를을 대표하는 원형 경기장이다. 아를의 고대유적지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문과 계단이 무척 많은데 비상시에 사람들이 빨리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로마제국 멸망 당시에 이 아레나 안쪽에 200여 가구가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전차경기장 투기장으로 사용되다가 오늘날에는 아를 축제기간에 투우경기가 벌어지고 야외 콘서트도 열린다.

9월에 아를에서는 3일 동안 큰 축제가 열리는데

아쉽게도 축제를 보지 못했다.

아를 아레나 앞에는 커다란 옷가게가 하나 있는데 하늘거리는 아사면으로 만든 예쁜 원피스를 파는 곳이다.  너무 더워서 3만 원쯤 하는 원피스를 이곳에서 샀다. 원래 가격에서 무려 70퍼센트나 할인을 해주어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는데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 큰 결함이 있는 원피스임을 발견했다. 역시 관광지에서는 상인의 화려한 말솜씨를 이겨낼 수가 없는 것 같다.



차를 타고 사이프러스 나무들을 따라 달리다 보니 신기하게 생긴 다리가 보였다.

미리 공부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은

이런 게 아닐까.  꼼꼼하게 다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연히 눈에 들어와 잠시 차를 세우고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랑글로와 다리였다.

랑글로와 다리는 운하를 따라 건설된 11개의 다리 중 하나인데 다리의 관리인 이름을 따서

랑글로와 다리라고 부르며 반고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여 반고흐다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세계 제2차 대전 때 모든 다리가 파괴되고

이것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배가 지나갈 때는

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구조이다.

고흐의 < 아를의 랑글로와 다리> 작품을 찾아보았다.  고흐는 운하가 많았던 자신의 고향인 네덜란드를 그리워하며 이 다리를 그리지 않았을까. 그림 속 사이프러스 나무는

이제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들이 되어 고흐의 정령인양 랑글로와 다리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정겨움은 없었다.

인적이 드문 마을에 오래되고 낡은 다리가

외롭고 쓸쓸함마저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고흐가 걷고 그림을 그렸던

산책로가 보였다. 지금은 자전거 산책로인가 보다.

 


고흐는 아를에 미술공동체를 만든다.

이 역시 동생 테오의 도움이 컸다. 혼자 생활하긴엔 외롭다 생각되어 화가들을 불러 모았고 고갱도 초대되게 된다.

이 집을 고흐는 노란 집이라 불렀는데 세계 제2차 대전 때 다 사라지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았다.

자동차로 지나치며 보았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 사진으로 기질 못해서 아쉽다.

고흐 그림 속 노란 집 앞에는 땅이 파헤쳐져 있고

공사하는 듯 보이는데 이곳은 지금도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론강은 유수량이 많아서 함께 쓸려온 토사가 점점 퇴적되어 항구로서의 기능이 약해지고 그 기능은 마르세유로 넘어갔다. 그러니  교역은 말할 것도 없고 물자의 운송도 점점 어려워졌을 것 같다.  그래서 산업도시는 못되었지만  고흐라는 한 사람의 화가로서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것 같은 아주 작은 도시였다.


고흐는 아를에서 고작 15개월 머물렀지만

그의 일생에서 가장 꽃을 피운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고흐는 아를을 온통 노란색으로 표현한 것 같다.

모든 그림이 노랗다. 알코올중독, 정신적 문제라고 하지만 어쩌면 고흐에게 노란색은 희망이었을 수도 있다. 동생 테오에게 한 말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하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길이며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면 서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잘 볼 수 있게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고흐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그걸 색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는지 알 것 같다.


아를에서 동생 테오의 소개로 고갱을 만나 9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함께 활동했다.

예술적으로 둘은 서로 그리워했으면서

그 예술적 관점의 차이 때문에 둘은 멀어졌다.

이 사건 이후 아를 사람들은 고흐를 문둥병환자처럼 여기며 동네밖으로 내쫓았다고 한다. 15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되어 여전히

아를을 지키고 있었다.



새벽에 동네 빵집에서 빵과 커피를 사들고 거리를 활보하며 행복해하는 나.

남편과 둘이 나눠 먹으며 이 별것 아닌 행위를 너무나 기뻐하며 결혼 30년 잘 살았구나 싶어 하는 나.

이게 뭐라고 이 정도 가지고 좋아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적어도 티파니 반지나 카르티에 시계 정도에

반응해줘야 하는데 우적거리며 바게트 한입 물고 빵의 질감에 감탄하는 나는 너무 쉬운 아줌마인가 하는 생각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를 돌아보니 나는 남에게는 친절하고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늘 질책하기 바쁘고

후회했었다. 문득 내가 바라보는 '나'는

어깨가 축 늘어지고  자존감 사라진  환갑을 바라보는 아줌마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쫓아오느라 수고한 나는 헉헉거리고 있었다.


고흐를 생각했다.  고향을 떠나 외롭고 그립지만 자신을 비우고 끝까지 불태웠다 생각된다. 그의 자취를 돌아보며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났다면 한 번은 이렇게 살아봄직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를 미리 상상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100세 시대에 벌써 이 나이가 된 게 아니라

겨우 57년 살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아직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걸

찾아보아도 되지 않을까?

나에게 좀 더 친절하고 관대해지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 내 남은 인생에 대한 성찰과

고민은 아를에서의 이틀이었다.


https://youtu.be/Ooi2yP_v9IM?si=SVL-GQndP8e4Q1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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