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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산책

사랑의 불시착이라고요?



저녁이 되어서야 취리히에 도착했다. 저녁 7시쯤이었는데  많이 어둡지 않고 도시는 푸르스름한 쿨톤이었다.

취리히는 유럽과 스위스 전역에서 열차로 쉽게

올 수 있는곳이어서 루체른, 인터라켄, 체르마트

등을 오갈때 경유지로 많이 들르는 곳이다.

16세기 츠빙글리에 종교개혁의 중심이었다는

것과 도시재생의 상징인 취리히 웨스트로도

충분한 매력이 있는 도시이다.

삶의 질 분야에서 전 세계 최상위권에 있다고

한다. 그만큼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연 어떤 도시인지 기대되었다.



스위스의 물가가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통화를 유로화가 아닌 스위스 프랑만 사용하여

트래블월렛으로 환전하여 사용하는데 유료화보다 환율이 많이 높았다. 운좋게도

일찌감치 예약해둔 덕분에  취리히에서 아주 훌륭한 숙소에  머물 수 있었다.

리모델링을 마친 곳이어서 객실도 깨끗하고

위치도 취리히를 둘러보러 시내로  걸어나가기에 좋았다.

우리는  대부분 숙소를 정할때 시내중심부 보다는 시내에서 걸어서 15분쯤 걸어갈 수 있는 곳을에 정한다.  가격은 많이 낮아지고 퀄리티는

반대로 좋아지기 때문이다.

취리히뿐 아니라 유럽은 주차할 곳을 찾는게

힘들다. 숙소에서 자체적으로 주차장을

보유한 곳을 찾기 어렵고 근처 공영주차장이나

길가에 코인을 넣고 주차해야 한다.

그마저도 늦게 도착하면 자리가 없다.

저녁에 도착하니 길가에도 자리가 없어서 뱅글뱅글 돌다가 도저히 찾지를 못하고

숙소앞에 잠시 세우고 들어가 지배인과

이야기 중이었는데 어느새 그 늦은 시간에도

주차단속 직원이 나타나서 당장 빼지 않으면

견인한다고 버티는 것이다.

트렁크에 짐이 잔뜩인 걸 보더니 5분 시간 준다고 했고 지배인이 함께 주차할 곳을 알아봐  덕분에 견인을 피할 수 있었다.

프런트에서 우릴 맞아주던 지배인은 백발의

어르신이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분이었는데 어찌나 친절한지 우리가 가져간 돼지코가 숙소 콘센트에 맞지 않는다고 하니 그럴줄 알고 준비했다면서 위트있게 빌려주었다.




너무 배가고파서 가방을 숙소에 급히 던져두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

거리는 이미 까만 밤이 되어있었다. 불빛이 어찌나 화려한지 빛의 도시같았다.

식당들은 이미 영업이 끝났고 Bar 만 영업중이었는데 모두 밤새고 영업할듯한 분위기였다.  하는수없이  COOP을 찾아갔다.

샌드위치와 샐러드가 그 밤까지도 어찌나 신선한지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샌드위치가

7천원가량했었는데 내용물이 페스트라미가

들어있고 갖가지 치즈와 야채가 듬뿍이었고

짜지 않아서 정말 맛있었다.  마트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레몬 하리보를 발견하고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며칠뒤 독일에 도착하면  수십가지 하리보를 만날 생각에 들떠 있어서 당연히

독일에 가면 다 있을줄 알고 사지 않았는데....

독일에는 없었다. 그냥 취리히에서 샀어야 했다.

( 망설여질때는 하는게 맞다!)

돌아보니  눈에 띄는 빨간 봉다리.

한글로 신라면이라고 이름표를 달고 당당히

스위스 마트에 진열된 것을 보니 갑자기 애국심마저 들었다. 손님과 판매원에게

이게 바로 우리나라 라면이라고 자랑을 실컷하고 나왔다.




새벽에 눈뜨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삐그덕하며 열리는 덧창이  ' 잘 잤어? 취리히에

온 것을 환영해!' 하는것 같았다.

밤새 비가 내렸나보다. 아니 보슬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길가에 빼곡히 서있던 차들은 새벽부터 거의 빠져나간 모습이다. 드문드문 여전히 조로록 서있는 차들이 정겹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코트깃을 세우고 옷깃을 여미고 패딩을 입었다.

이럴때를 대비하여 프랑스 ZARA에서 샀던

두터운 옷들을 꺼내 입었다. 우산도 챙겼다.

대충 지난 밤에 사둔 요거트와 간단한 요기거리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우리는

가볍게  숙소를 나왔다.



잠시 걸었는데 어느덧 반호프 거리이다.

주요한 은행들과 브랜드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취리히 쇼핑의 거리이다.

이곳이 부동산 가격도 가장 비싸다고 한다.

거리로 나오니 빗줄기가 꽤 굵었다. 동네 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개천의 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이들은 그냥 이정도의 비는 맞고 다니나 보다.

그래서 유럽은 BARBER 자켓처럼 왁스

코팅된 옷을 많이 입나보다.

사실 나는 비를 굉장히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비오는날 양재천 산책을 나갈때 폭우가 아니라면 우산을 쓰지 않고 일부러 비를 맞으면서 걸어보기도 한다. 이날도 은근히

그런 욕심이 들었으나 남편에게는 있을수 없는

일이기때문에 참았다.



 비에 젖어있는 반호프 거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화려했지만 좀 쓸쓸해 보이는 거리였다.

해가 없는 날을 좋아하고 적당한 바람과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하는 나는 취리히에서의 산책이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었는데 건물은 이미 불이

다 들어와 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 보였다.

슬슬 폭우수준의 비가 거세지자 드디어

알록달록 우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모든게 한폭의 그림이었다.



뮌스터 다리 앞에  취리히의 랜드마크인  프라우뮌스터 교회가 있다.

독일 루이왕에 의해 세워졌고 여러차례 재건과 증축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건축기술이 더해져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외형은 무척 담백해 보였다.

에메랄드빛 첨탑이 아름다웠다. 첨탑의 꼭대기가 높아질수록 하늘과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던걸까. 남쪽의 창문에 있는 5개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샤갈의 작품인데 5개의

성경이야기 ( 엘리야, 야곱,그리스도,시온산

모세율법)를 담고 있다고 한다. 북쪽 창에는 아우구스토 자코메티의 작품인 9미터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 상세히 사진으로 담고 싶었지만

뮌스터 다리 앞이 공사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사람들과 차가 다니기에 아주 불편하고 위험했다.




뮌스터 다리를 건너기 전이다. 밤사이 내린 비때문에 리마트 강물이 넘칠듯 했다.

사진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바람도 많이 불어서 실제로는 매우 넘실대며  위엄있었다.

한국에서 양산을 가져가서  곤란했는데

호텔에서 큰 우산을 빌려주어  감사했다.



뮌스터 다리를 건너면 그로스뮌스터(대성당)이

등장한다. 샤를마뉴 황제가  이 도시의 순교자인 펠릭스와 레굴라의 무덤을 발견하고 그 장소에

이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16세기에 스위스

종교개혁가인 츠빙글리와 불링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장소도 이곳이다. 폴케가 제작했다는

창문, 자코메티가 제작한 성가대 창문,

오토뮌히가 제작한 청동문등 예술적 가치도

충분해 보였다. 독일 음악가 바그너는 이 성당의

둥근 종탑을 후추가루병에 비유하기도 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그로스뮌스터를 지나 조용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니더도르프 거리이다.

부티크샵, 갤러리, 개인공방, 골동품가게들이

골목안에 줄지어 있다.

걷다가  갤러리 유리창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남겨두었다.

여행할때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을

남겨두길 좋아한다 . 시간이 흐르고 다시 찾아보면 그곳이 어디였는지, 무슨 생각을 했던 곳인지,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신기하게 모두 떠오른다.

인상깊었던 곳은 어느 라디에이터 가게였다.

우리나라처럼 온돌문화가 아닌 이 나라는

난방을 히터와 라디에이터로 해결한다.

그래서인난방기구를 하나의 인테리어의

요소로 삼는 모양이다.  작품을 전시해놓은듯

형형색색의 라디에이터가 재미있었다. 집에

설치하면 무척이나 생동감을 줄 듯 했다.

니더도르프 거리는 반호프거리만큼 넓고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골목안에 볼거리가 풍성하여 더 좋았다.



린덴호프에 올라가는 길은 가을이 깊어졌음을

실감케 했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데 누군가의 오래된 묘비가 그곳을 지키는듯 했고 ( 나중에 찾아 보니 루시우스 엘리우스  우리비쿠스의 묘지석이다 AD200)  빗물에 낙엽이 떨어져  실수하면 미끄러질듯 했다.

린덴호프는 취리히 구시가지 언덕위에 있는

작은 공원이다.

그리고 취리히 시민들이 스위스 연방 가입에 대한 서약을 한 곳이기도 하다.

골목을 찾아서  계속 걷다가 보니 호젓한

언덕길이 보여서  전망이 좋은 곳이겠거니 하고

올라간 것이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천천히 둘러보는데 잠시후에

갑자기 많은 외국인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것이다.  

궁금해서 그들에게 작은 소리로 물어보았다.


" 여기가 유명한 곳이야?"

"  응, 넌 중국에서 왔어? 일본에서 왔어?"

"  아니, 난 대한민국에서 왔어. south korea."

"  그래? 그런데 여길 몰라?"

" 모른다고~ 여기서 뭘 촬영했는데?"

그 관광객은 내가 답답했는지 인터넷으로 뭔가를  찾아서 보여주는데.......


 

 

 는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몰랐던 것이다.

유명하다고는 소문을 들었으나 챙겨본 드라마가

아니었다.

내가 놀란 것은 외국인들이 이 드라마를 보았다는게 더 신기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사랑의 불시착을 부랴부랴

찾아서  린덴호프가 나오는 장면을 찾아보니

마지막 부분에 손예진 배우가 린덴호프에서

현빈배우를 그리워하는 장면이 보인다.

실제로 보았을때는 그냥 낙엽이 무수히 쌓인

동네 공원같았는데 화면에  참 아름답게 보인다.

촬영감독님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린덴호프 공원자체는 평범했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구시가지와 그로스뮌스터, 유유히 흐르는

리마트 강, 취리히의 호수등 전체가 보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언덕에 있던 묘비석이 신경쓰여 찾아보니 린덴 호프가 선사시대 켈트족, 갈로 -  로마족의 중세 정착지 및 건물의

유적을 포함해 중요한 스위스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여행후에 찾아보고 공부하는 재미도 있는것

같다.



린덴호프에서 내려오는데 마치 3색 신호등처럼

서있는 나무를 보았다. 빨강, 노랑, 초록

신호등처럼 막다른 골목끝에 서있는 제법 큰 나무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이 세상을 그림처럼 만들어 주는데

취리히는 나무가 많아 보이지는 않고

더러 있는 나무들은 건물들과 함꼐 조화를 이루어  근사한 가을을 그려내고 있었다.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하여 뮌스터 다리 근처의

어느 브런치 식당에 들어갔다.

작은 가게였지만 큰 음식이었다.  무척 맛있었고

고급스러웠다. 손님이 없어서였을까 ? 서빙하는 여자분이  친절한 설명과 함께 음식을 내어주어 마치 우리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식당처럼 느껴졌다.



뮌스터 다리 주변은 공사도 하고 있었고,

세계 사이클 챔피온대회가 있어서  어수선했다.

숙소로 돌아가는데 신기한 조형물을 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지나가는  지하보도였다.

둥근 양철 지붕을 만들지 않았으면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를 더 넓게 만들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통로는 한사람이 겨우 지나가게 만들고

둥그렇게 양철 터널을 만든게 대단하다고 느꼈다.

온 국민이 디자인에 진심이구나 싶다.



우리가 묵었던 방은  4층이었다.

공원이 내려다 보이고 오고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적당히 들리고 빗소리에 잠을 깨고....

호텔이 아니라 내가 오래전부터 살고 있던

집같았다.

인적이 드문 밤거리를 걸어도 위험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은 물가가 굉장히 비싸다는 것이었지만 그걸 상쇄할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획하지도 찾아보지도 않고

훌쩍 떠나온 건 잘한일이다. 낯선 곳에 대한

편견도 없고 처음 마주하는 장소, 상황들이

신선한 충격이 되기도 했었다.

이제껏 모든걸 계획하며 살았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유명한 드라마 촬영지인것도 모르고

그 언덕길을 즐기며 올라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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