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퓌센 산책
고소공포증 극복기
by
명랑엄마의 아침일기
Jan 16. 2025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남편과 막내가 ( 나는 아님)
퓌센에 꼭 가보자고 한 이유는 한가지다.
디즈니랜드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노이슈
반슈
타인성에 가보기
위해서였다.
샤프하우젠에서 폭우가 내려 걱정됬는데
다행히도 퓌센에 도착할쯤에 이슬비로 바뀌었다.
가는 동안 광활한 초원과 빨간지붕이 끝없이
펼쳐지는 목가적인 풍경을 계속 만났다.
로맨틱 가도였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비가 내린후여서인지 초원은 더욱 초록초록하고
빨간지붕은
선명했다.
도로에는
우리차 밖에 안보일정도로 한산했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니까 남편에게 천천히 운전하도록 당부했다.
그러다 보니 해가질 무렵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풀었다. 유럽의 호텔들은 도심에 있을수록
오래된 건물에 작은방들이어서 좀 불편했는데
고맙게도 가장 큰 방을 주어서 여유롭게
묵을 수 있었다.
배가 고파서 짐은 던져두고 식사부터 하러 나갔다. 그런데 낮동안 식당이었던 곳들은
저녁이 되니
모두 BAR가 되어 밥을 먹기 곤란했다. 할 수 없이 고장난 우산을 쓰고 걸어서
15분거리의 REWE에 가서 스시와 샐러드,과일,요거트를
사와서 그런대로
근사한 저녁을 먹을수 있었다.
그날밤엔
아침에 샤프하우젠에 갈때부터
그곳에서 나와 퓌센에 도착할때까지 비때문에
너무 긴장을 한 탓에
너무 피곤하여
제대로 씻지도 않고
모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일찌감치 호텔조식을 먹고 노이슈반슈타인성
으로 향했다.
노이슈반스타인성까지 가는 길은 3가지가 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방법, 미니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 도보로 가는 방법.
우리는 마차를 타볼까 하고 갔다가 울창한
숲을 보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도보로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비가 온 다음날이어서인지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숲향기와 에너지는 대단했다.
길도 진흙길이 아니고 모래가 섞인 길이라서
질척이지도 않았다.
우리는 따로 천천히 걸었다. 출근해야해서
니스에서 먼저 한국으로 간 큰아이에게
숲사진을 여러곳 찍어서 보내주었다.
잠시 쉬면서 뒤를 보니 우리 뒤를 쫓아오는
마차가 보인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가 막내가 무언가를 길에서
주워서 내게 말했다.
" 엄마, 이거 아빠 카드 지갑하고 똑같애."
지갑을 열어서 카드에 이름을 보니 남편것이
맞았다.
아이구.... 지갑을 이렇게 흘려버리고 저렇게
생각없이 가고 있네...
우리는 지갑을 감추고 나중에 놀려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줘야 하다니... 왜
아무일이 없나했다.
날씨
그런데 예상밖으로 오랜 시간을 걸었다.
분명 15분이면 된다고 했는데 30분이 넘어도
성은 나타나지 않고 숲만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우리가 지름길을 두고
마차가 경치를 보기위해 멀리 둘러서 가는 길로
빠져서 그랬던 것이다.
울틍불퉁 정비되지 않은 길이고 인적이 드물다
보니 그만큼 훼손이 되지 않아 덕분에 아름다운
숲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시간은 걸렸지만 머리가 맑아지고 여행기간동안의 여독이 풀리며 몸이 가벼워지는듯 했다.
단풍에 물든 나무들이 어떤 정령처럼 느껴졌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은 마리엔 다리이다. 줄서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 이곳에 왔는데 숲길을 걷느라 이미 한시간을 지체하여 숨가쁘게 뛰어 다리에 도착했다.
이미
다리위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너무 높고 다리도 출렁거려서 겁이 났지만 코앞에서
아름다운 성을 못 본다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
눈 딱 감고 성큼성큼 다리위를 걸었다.
다리 중앙으로 갈수록 더 가까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다리 가운데 서자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옛 바이에른 왕국의 국왕이었던 루트비히 2세가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인데 ' 신 백조 석성'을 뜻한다.
퓌센에 여행을 오는 사람이라면 이 성을 보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높이가 65미터이고
거의 20년간 이 성을 지었다고 한다.
성의 이름에 백조가 들어가는건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백조의 전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당시 바그너의 오페라에 흠뻑 빠져있던
루트비히 2세는 성의 안밖을 오페라에 나오는
여러
장
면들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남겼다고 한다.
루트비히 2세는 나라의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무리하게 이 화려한 성을 짓다가 많은 빚을 져서
정신병자로 몰리면서 왕위에서 쫓겨나고 3일만에 근처 슈타른베르거 호수에서 의문사를
당한다.
익사를 한건지 자살을 한건지 아직도 의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성에서
얼마 살지도 못하고 세상을 뜬 비운의 왕이 된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남편과 막내가 벤치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예뻐서 찍어 두었다.
아빠는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은가 보다.
늘 저렇게 식구들에게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우리집 AI.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보고 내려오다 보면
호엔슈방가우성이 있다.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지은
네오고딕 건축 양식의 성이다.
루트비히 2세가 살았던 성이기도 하다. 정원들이 잘 조성되어 있고 3층에는 왕이 바그너와
함께
연주한 피아노도 전시되어 있다.
노이슈반슈타인의 화려함에 비해 이 성은
편안하고 소박해 보인다.
산을 내려올때 남편은 주차시간이 빠듯하여
먼저 내려가고 나와 막내가 뒤따라 내려갔는데
중간에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우리는 길을 잃었는데 휴대폰도 연결이 안되어 구글 지도도
못보는 상황이었다.
산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듯한 좁은 길들이
계속 나타났다.
만약 이 산속에서 영원히 길을 잃는다면
우리는 어찌될건가.... 처음엔 걱정이 됬지만
나중엔 길이 보이는대로 따라 가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드디어 마을이 보이고 넓은 길이 나타났다.
남편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만세도 불러보았다.
퓌센은 청정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도시이고 동화같은 풍경이 계속
이어지는 로맨틱 가도를 지나오기 때문에
정말 낭만적이었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 여정을 즐길수가 있었다.
난 사실 처음엔 퓌센을 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퓌센에 가는 사람들은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보고자 그곳에 가며, 그 성을 가장 가까이에서
즐기며 볼 수 있는 곳은 마리엔 다리인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그 다리를 건너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 피렌체에 갔을때
생각없이 좁은 두오모를 오르다가 졸도했던
경험이 있어서)
나는 산밑에 있을테니 남편과 막내만 올라가라고 한국에서부터 다짐을 받았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숲을 보니 그 숲을 도저히
외면할수가 없었다.
그렇게
올라가서 나는 마리엔 다리앞에서는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먼발치서 보이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이 너무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남편팔에 매달려 한발 두발 발을 떼는데
남편이 다리중앙까지는 가야한다면서
나를 끌고 그곳까지 데려가 주었다.
그렇게
울다시피
덜덜 떨면서 도착한 곳에서
나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볼 수 없는 장관을
목격하고 만 것이다.
성의 뒷 배경 마을과 산도 어찌나 훌륭한지
순식간에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말았다.
마리엔 다리는 루트비히 2세의 어머니인 마리여왕의 이름을 딴 다리이다. 협곡사이
92미터 높이에 높여진 나무다리인데 수시로
보수공사를 한다는데 운좋게도 공사가 끝난
시기에 가서 절경을 볼 수 있었다. 다리의 안전때문에 한번에 200명만 다리를 건널 수 있다.
내가 퓌센에서 느낀건 두가지였다.
그중 한가지는 , 길은 길로 연결되어 결국은
길을 잃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내려오는 산속에서
막내와 둘이 길을 잃었을때 처음엔 막막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작은 길이라도 길을 따라 가다 보니 큰 길이 보였다.
우리는 가끔 막다른 길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빨리 쉽게 그 길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런데 세상에 거져 쥐어지는 것은 없는것 같다. 찾고자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난 지금껏 막막함이 느껴질때는
포기라는 방법을 많이 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포기가 후회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어딘가에 아주 작은 인적이 드물고 아무도
간 흔적이 보이지 않는 그런 길이 보인다면
포기하지 않고 그 길로도 가보려고 한다.
길은 길로 이어질테니까.
또 한가지는 , 마리엔 다리를 건널때 나무다리이다보니 굉장히 많이 흔들리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공포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리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은 '남편' 팔을 의지하고 건넜기 때문이었다.
그건 남편이 나를 다리 아래로 밀지 않고 끝까지
보호자가 되어 나를 붙들어 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카드지갑을 흘리고 다니는 남편이지만
나만큼은 흘리지 않고 꽉 붙들어 줄 수 있는
단 한사람 그건 남편이었다.
결혼 30주년을 맞이해서 얻은 꽤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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