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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Sep 30. 2018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넘나들며

스페이스클라우드 도시작가의 발견3, 세운상가와 을지로 골목

3~4년 전이던가 무한도전 가요제에 나온 노래 중  딱 '한 소절'만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노래가 있다.  


사라질 것들에 미련을 두지 말자.

네, 알다마다요. 어차피 사라질 것들은 사라지고나면 그만이니까.하지만 요즘들어 다시 생각해보게되는건, 사라지는것들을 더 찾고 오히려 재해석하면서 꿋꿋하게 우리에게 남아지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고 붙잡고 싶어진다.

그 중 하나가, 힙하디 힙해진 을지로, 그리고 세운상가다.솔직히말해, 을지로가 뭔데? 결국 또 반짝!하다가 인기가 시들해지는거아니야? 라는 반신반의한 생각도 들긴했다.



세상의 기운이 모이는 곳.

세운상가가 다시 살아났다.

철거위기에서 꿋꿋하게 버텨준 상가가 괜시리 고맙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세운상가를 몰랐다. 서울시에서 '다시세운프로젝트'를 한다고 지하철에서 몇번 광고를 보고 들었을 때 정도만 아하? 싶었지, 딱히 관심이 있던건 아니었다.


'다시세운프로젝트'

세운상가를 다시 서울의 중심으로, 더 나아가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재생 프로젝트.

서울역사도심의 중심에서 주변을 연계하고 보행재생,산업재생,공동체 재생을 통한 도시재생 진행중.

세운메이커스큐브 등등 거점공간을 조성하여 다양한 활성화 프로그램 실행중

  (다시세운 프로젝트 공간소개 팜플렛 참고)


하지만 도시재생에 관심이 가고 동네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재미의 ㅈ 정도를 알즈음, 을지로가 노가리 골목으로 핫해진다며 쏟아지는 기사와 인스타 피드를보며, 그래 나도 한번 가봐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세운상가는 사실 딱 하나의 상가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현대, 세운, 대림, 청계, 광도, 아세아 등 8개의 독립적인 상가건물을 잇는 거리가 세운상가다. 세운상가는 조명과 악기, 대림상가는 오락기와 노래방기기 위주, 광도상가는 반도체 등 건물마다 주로 취급하는 기기들이 있다.


좁은 골목과 20년은 거뜬히 넘어보이는 궁서체스러운 간판,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오래된 벽돌, 촘촘하게 위태로워 보이는 전깃줄들,



이 모든것들이 조화롭게 얽혀있다. 골목의 집합들은 하나의 미로 같기도 한데,  참 저 멀리 보이는 야근불빛 건물들과 대조적이다.




최초의 주상복합은 엄밀히말하자면 타워팰리스가 아니라 1968년 문을 연 세운상가다.초기에는 상류층이 거주하는 호화 아파트로 주목받았고 한때는 국회의원회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노후화되기도 했고, 각종 기기들의 중심이기도 했지만, 변한 세월만큼이나 이전만큼 찾는이들이 많이 줄었다. 다행히 철거되지 않고 세운상가는 현재에 살고있다.


세운상가를 둘러보기 전에, 세운상가를 있게 해준, 그 주변 골목부터 찬찬히 둘러봤다. 을지로4가역 출구를 빠져나와 조금씩 조금씩 걸어보자. 나는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넘나들며 여행을 시작한다.

을지로4가역에 있는 곧 없어질.. 음반점.. 슬프다..

 

지이이잉~ 엄청난 기계소리와 탁탁! 둔탁한 소리들까지 708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 기분이 든다. 나는 어디에 온것인가. 계속 걷는다. 잊혀져 가는 것들, 특히나 곧이라도 없어질것만 같은 옛것들을 조금이라도 붙잡을 수 있다.그래서 그냥 조금은 무서웠지만, 해가 어둑어둑해질때까지 걸었다. 막다른 길이 나올때까지. 하나 둘 '샷다'(셔터)를 닫는 소리,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길이 있을 것 같은데 없고, 없을 것 같은데 있다. 심장이 벌렁벌렁. 그냥 사람 있는 곳인데 낯설고 인적이 많지 않아 괜히 무서웠다.



간판을 눈으로 담는일, 세월의 흔적을 마주해서 참으로 반가워

새삼 이런 곳이 있었나 싶다. 이것이 서울의 어제 모습이란말인가 하고 연신 감탄중이다.(조금은 긴장상태이지만)


예술 공간 R3028을 제일 먼저 둘러보고 싶어서 지도를 켜고 열심히 다녔으나 끝내 찾은 R3028은 문을 열지 않는 날이였다. 아쉽긴했지만, 낯선 골목을 더 구석구석 거닐 수 있게 해준것에 고맙다.


빨간글씨 오마이갓. 나에게는  텍스트보다는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다가왔다.


골목을 지나고 조금은 정돈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다보면 ,내가 예상했던 목적지가 나온다.

오래된 간판과 그래피티의 부조화가 보여주는 조화


@세운테크북라운지

세운상가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휴식공간이자 영감을 얻을 수있는 곳이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어린이 책, 인문서적, 전문 매거진들이 정갈하게 구비되어있다.

유독 내 눈길을 가장먼저 끈것은 사실 어반플레이의 '아는을지로'였다. 진짜 이 을지로란 동네, 세운상가란 동네에 무엇이, 어느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해서 쓱 보면, 아~ 이런 동네구나 바로 이해가간다.


초록초록한 진열대와 소파, 그리고 우드 톤의 인테리어 덕분에 돌아보다 잠시 쉴 곳이 필요하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운영시간: 월~토 아침10시~저녁7시  (점심시간은 1시~2시)

위치: 세운메이커스큐브 청계-서304호



쭈우우우우욱 걷다보면 아주 자그마한 박물관이 하나 나온다.


@세운전자박물관

세운상가의 과거부터 현재의 모습들을 추억의 기기들과 함께 진열해 놓았고,처음와서 세운상가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에게 역사를 한번에 알 수 있는 작지만 알찬 공간이다.







1968년에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되었는데, 세운상가는 1년전에 착공했다니

만만치 않은 역사를 가진 상가다. 분명 우리한테 스쳐지나갔던 라디오, 지금은 보편화된 컴퓨터들도 다들 이런 역사를 거쳤구나 싶고, 특히 그런 중심에 세운상가가 있었다는게 새삼 놀랍다



시간여행을 떠나는듯한 기분
먹고 살라고, 다 고쳐서 쓰고 만들어 썼지. 여기 나오면 신기한게 많았어.
미군부대 PX에서 나온 물건들이 여기 노점상으로 흘러들었는데, 무전기 골목에서 미군부대 중고와 고물을 재활용해서 광석 라디오, 진공관 라디오 같은걸 만들었대. 1960년대 청계천 복개로 천변의 노점상이 정돈되고 장사동,예지동 골목에 상가가 생겼지, 아세아백화점이 생기고, 광도백화점도 생기고.. 좀있다뵈까 세운상가를 짓기 시작하더라, 1967년

출처: 세운전자박물관



아주 자그마한 모니터로 게임도 직접 해볼 수 있다.



저가 외제품, 중고, 각종 부품을 구할 수도 수리를 맡길 수도 있어서 전국의 기술자,도소매업자, 학생들, 취미기술자도 다 들렀지.그러다가 수리 맡기러온 사람들이 자꾸만 뭘 만들어달라는거야. 고쳐주는것보다만드어주는게 수입이 좋더라고.막 파고 들었지. 책 사다 보고 회로 그려가면서 익히고.10년이 채 안 되어 강남이 개발되고, 1987년에 용산전자상가 생기고인터넷을 시작하니까 세운상가가 조금 시들해졌지.

출처: 세운전자박물관



요즘 아이들은 한번도 본적없는 플로피디스크 . 숙제해갈때 빨주노초 디스크에 견출지 붙여서 냈던 기억.


문을 거의 닫을 시간에 들어가서 재빠르게 휙! 돌아보고 (사실 많이 작아서 금방 볼 수 있다)

드디어 기다렸던 골목에 다다랐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도대체 '호랑이카페'는 어디있는거고, 상가들이 다 문을 닫았는데, 와중에 문을 연곳이있다고?


어서오세요, 이곳이 세운상가의 밤입니다.


젊은 창작자들의 작업 공간이 있기도하고, 피자나 커피 등을 파는 상점들이 조그맣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야외에 자리도 마련되어 있어 선선한 바람 맞으며 서울 야경을 안주삼아 맥주를 하기에도 딱이다.



@끽비어컴퍼니


아니나다를까, 여긴 뭐지 싶었던 곳이 있었다.간판이 없다. 당황스럽다. 엄청 깜깜해서 놀랬다. (아직 앞에 불이 켜지기전) 그러나 안은 분위기가 매우 따뜻했다. '끽비어컴퍼니'라는 맥주집이었다.

맥주러버가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세운의 여운을 맥주로 마무리하려고 당당하게 들어갔다.

내가 간날만 유독 그랬던건지 모르겠는데, 거의 80%의 손님이 여성분이었고, 나처럼 혼자 맥주를 마시며 책한권 보시는 분도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이름이 좀 특이하네?

'끽비어컴퍼니'의 끽은 한자로 '마실 끽' + Geek의 중의적 의미를 담고있다고 한다.끽이라는 한자가 있는것도 놀라웠고, '마시다'란 뜻이 있는것도 더 놀라웠다.

로고타입을 ㄱ을 활용한다면 정말 예쁘고 심플하게 잘 나올것만같다. 만약 직접 맥주를 만드시게된다거나스티커, 기타 굿즈를 만드신다면 ㄱ을 모티프로 삼아 디자인한다면 너무 좋겠다. (진짜 이것은 직업병이다. 참고로 나는야 디알못 (디자인알지도못하는사람) 하지만 디자인팀의 작업물 눈팅만 많이하는사람, 무엇이든 브랜드 관점에서 보려는 요상한 습관소유자)


인스타그램 ggeek_beer에 오늘의 On tap 맥주를 확인 할 수 있다


끌리는 이유 하나,

시끄러운 맥주펍은 아니다. 재즈가 잔잔히 흘러나오고 마치 까페와 같아서 편안하고 부담없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끌리는 이유 둘,

양조사가 직접 엄선한 맥주들로 라인업이 있어 골라먹는재미, 추천받아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맥주도 도전해볼수있다는거,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도 알려주시겠지?


“바닐라 스타우트는 밑에 다 가라앉고 거품이 다 올라올때까지 기다렸다 드셔야 맛있습니다:)”


바에서 앉게 된다면, 싸장님과 가벼운 담소를 나눌 수 있어 좋을 것 같고,다른 테이블에 앉는다면 또 그만의 휴식처가 될 것이다.




테이블이 참 신기하게 생겼다. 이날 마신건 '바닐라 스타우트' 마치 더~ 부드러운 기네스 한잔 마시는 느낌.

끌리는 이유3,

세운상가에 있다는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맥주일것같고, 남다른 느낌이랄까



맥주 한잔인데 분위기에 취하는것인지 살짝 들떠버렸으니, 집에 그냥 가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친한친구를 불러 을지로 '노가리골목'에서 금요일을 마무리했다.정말 을지로는.. 매력이 엄청난 골목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점점 노가리골목에 가까워질수록 신비감이 느껴진다.




1) 지하철 출구를 나와 껌껌해진 골목 사이 빛이 세어나오는 곳이 보인다. 몇몇 무리가 앉아있다

2) 여긴가 ? 싶어 더 들어갔더니 테이블이 더 보이기 시자갰다

3) 왼쪽으로 발걸음을 돌리자마자 우와~~ 정말 이것은 2002년 월드컵 응원거리를 방불케할만큼 사람들로 넘쳐났다. 기분이 좀 좋았던건, 젊은사람들만 있는것도, 어르신만 있는것도 아니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삼삼오오 모여 앉아 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풍경이 너무 좋았다.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벅찼다.서울에 이런곳이. 을지로가 이런곳이구나. 다시 살아나는느낌. 서울의 어제가 오늘이 되어 다 같이 숨쉬는 느낌.


다시한번 느끼는거지만 세운상가의 그 '세상의 기운'이 불어오는 느낌, 크고 화려하게 변하지 않아도

소박하게, 오래된 것은 오래된 것 그 자체로, 새로운것은 새로운 맛대로 각자의 맛이 있고 결국 그것이 사람을 모이게 한다면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것에 감사하며,

거닐어보길 바란다.




세운상가 다리 위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 뉘엇뉘엇 해가 질 무렵

을지로맛이 날 거같은 맥주 한잔 하고싶을때

끽비어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ggeek_beer/

서울시 중구 을지로 157 3층 외부 다열 376호

월~금: 17~23시 / 토:15~23시 / 일요일은 쉽니다


통째로 빌려서 더 깊게 여럿이 얘기하고 싶다면 스페이스클라우드를 활용해볼것

최대20인까지 수용 가능한 공간에서 대관하여 파티도 열 수 있다:)

https://spacecloud.kr/space/15177




* 스페이스클라우드  X 도시작가 : 이곳저곳 로컬 골목을 발견하고 공간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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