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궁금해서 찾아본 것들
동물농장을 가끔 보는 것도 좋아하고, 지나가다 말고 고양이를 보면 쭈그리고 앉아 입으로 '냐옹냐옹'소리를 내거나, 다가와 쓰윽 쓰윽 하고 반겨줄 때도 좋아한다.
회사 직원이 데려온 강아지와 점심시간 지난 줄도 모르고 놀아준적도 꽤 된다. 다른 방에 살던 친구가 여행 갔을 때 대신해서 감자니 맛동산이니 하는 것들을 캐거나, 물과 사료가 떨어지면 채워주고, 전신을 이용해 긴 끈을 휘적이며 놀아주기도 했다.
정작 내가 주인이 되어 반려견, 반려묘를 키워본적은 없다. 언젠가 잔디밭 딸린 단독 주택에 살며 꿈의 개 '골든리트리버'를 키워보고 싶다는 바람을 입버릇처럼 말할 뿐이다.
제주도 동쪽 숙소를 알아보던 중, 이름도 마음에 들고 조용한 분위기에 1인실까지 있어 바로 <슬로우트립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알고보니 사장님은 두 마리의 반려견을 키우고 있고,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료를 챙겨주시는 분이다. 더 찾아보니 우주대스타로 알려진 고양이 '히끄'의 홈타운이었고, <호호브로 탐구생활>이란 책을 비롯해 글을 기고하거나 팟캐스트까지 다양하게 운영하고 계셨던 견주님이었던 것.
제주에서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자의 삶은 어떨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도 있었고, 내가 잠시나마 머무르는 곳의 사장님은 어떤 삶을 지향할까? 궁금해서 맥주 한잔하며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어버렸다.
# 노력, 노력, 끝까지 노력
책에서는 사장님이 비글 호이, 진트리버 호삼이를 만나게 된 배경부터 눈물 흘리며 훈련소에 보내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팔이 상처 투성이가 되도록 초반에 호이에게 물린 일, 그리고 이를 고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행복이고 기쁨인지 글을 통해 느껴진다. 동시에 반려견을 키우는 일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음을, 직접 육아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애를 키우는 것과 맞먹을만큼 세심하게 신경써야 할 뿐더러 엄청난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알았다.
모든 관계에는 노력이 따른다.
상대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많을수록
상대를 향한 노력 또한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이와 호삼이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으려 애쓰고
저렇게 아는 단어가 많은데,
나는 너무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싶다.
-호호브로 탐구생활 중
# 오조리런닝클럽
호이, 호삼이와 함께하는 아침 산책 코스가 있다. 30-40분 가량 인근을 걷는데, 올레2코스 구간답게 경치도 좋고, 걷기에도 부담이 없을 뿐더러, 아이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는것만으로도 기뻤다.
아이들은 영역 표시도 하고 풀을 뜯어 먹기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꼬리를 흔들며 총총 앞서갔다. 풍경과 아이들을 번갈아 가며 보다가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시간이 훌쩍 흘렀다.
중간에 나도 모르게 내 얘기를 술술 꺼내게 되버린 순간이 있었다. 마음 속에서 깨달음이 번쩍 솟았던.
"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노견을 키웠어요. 눈도 나빠진 탓에 강아지를 혼자 두고 집을 나갈 수가 없어서, 저보고 집으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집데이트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그도 알고 있지만, '나보다 강아지가 더 중요한가?' 싶어서서운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냥 같이 걸어보고, 책을 읽어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혼자 두고 나왔을 때는 강아지한테 정말 많이 미안했겠구나..."
"남자친구분 좋은 분이셨네요. 진짜 좋은 분이셨네."
이미 늦었지만 견주로서 충분히 좋은 사람이고, 인격적으로도 좋은 사람이었다, 이런식으로 흘러가며 대화는 웃프게(?) 마무리되었다.
# 팟캐스트 '니새끼 나도 귀엽다'
오후에 이곳저곳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아침 산책길이 생각나서 그 코스를 똑같이 걸었다. 내친김에 팟캐스트도 들어보자 싶어 일명 '니.나.귀.' (니새끼 나도 귀엽다)를 들었다.
꼭 대스타가 아니더라도 나도 내새끼 자랑하고 싶은데! sns말고도 다른 것들을 많이 얘기해주고 싶은데! 하는 제주도민이면서 일반인 견주, 묘주님들의 자랑대회? 같은 것이다.
최신편 하나를 들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를 우연히 키우다가, 출산의 과정까지 함께 지켜주고, 낳은 아이들까지 총 다섯마리를 키우게 된 분이었다. 중성화 수술을 앞두고 못나가게 하자 쉬를 이곳저곳 가열차게 뿌리는 바람에 먹어봤다고 한 이야기까지. 엄청난 애정과 노력, 인내심 없이는 절대 키울 수 없을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묘주로서 가장 필요한 것 중에
‘심신이 건강한 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와닿았다.
아이들을 놀아주고 케어할 수 있는 체력은 물론이고, 내가 불안하면 고양이도 불안을 느낀다거나 환경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기본적인 주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이 중요한 것이었다.
'주인이 곧 환경'이다 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으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진리 같은 한 마디였다.
게하 사장님이 이 글을 보시게 된다면,
한번 산책했을 뿐인데? 한번 책을 읽었을뿐인데? 라고 생각하실수도 있을까봐 조금 부끄럽긴하다만, '굳이 저렇게까지..?' 의 마인드로 종종 마주친 견주님들을 바라봤던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충분히 되었다.
그렇다고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함께 할 생각이 있냐?
잘 모르겠다. 아직 자신이 없다.
나 하나 키우기(?)도 너무나 벅찬데, 내가 소중한 생명체를 책임지고 돌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너무 서투른 탓에 미안할 일이 많을 것 같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노력해야한다는 말을 곱씹게 될 것 같다.
'카밍 시그널 (Calming Signal)'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개들의 언어이자, 불편하거나 위협을 느낄 때 개들이 표현하는 행동방식이란다.
올해 인구조사에 반려동물을 포함한다는 기사 제목을 본적이 있다. 반려생활 천만이니 천오백만이니 수적으로는 늘고 있지만, 반려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다거나, 아파트 9충 높이에서 강아지를 떨어뜨린다거나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케이스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진정으로 몸과 마음을 다해 케어하는 의식있는 주인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주인 뿐만 아니라, 키우지 않는 나를 포함한 일반 사람들도 그들을 이해하고 카밍한 시선과 배려로 대할 줄 아는 문화가 잘 형성되기를 바란다.
일단 나부터:)
내일 아침에도 꼭 산책을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