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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Jul 30. 2020

<해녀의 부엌>을 보고 왔습니다

사라지는 문화를 컨텐츠로 지켜내는 방법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먼저 예약한건 항공권도 숙소도 아닌 '해녀의 부엌'이었다.

<해녀의 부엌>은 사라져가는 제주 해녀 이야기를 담은 공연과 다이닝을 결합한 컨텐츠 브랜드이자 기업명이다.  사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공연을 관람했었는데, 알고보니 연기를 공부한 '해녀의 부엌' 대표가 고향 제주에서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현실과 고령화된 해녀 문화를 지키기 위해 생각해낸 컨텐츠였다.


공연장이자 식당인 공간도 꽤 의미가 있는데,

20년 전에는 생선 경매가 이뤄지던 활선어 어판장이었으나 판매량이 줄면서 오랫동안 창고로 방치되어 있던 곳을 쓸고 닦아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활선어 위판장이었던 곳 - 출처 해녀의부엌 공식 홈페이지



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다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배경음악이 들려와, 이런 센스에 감동하며 공연과 다이닝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너무 궁금해서 음악검색으로 찾아보고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Penguin cafe 의 'Silent Sun' 란 곡이다.)


프로그램은 크게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해녀의 삶을 담은 공연  - 해녀가 들려주는 해산물 이야기 - 식사 - 해녀 할머니와 Q&A



# 이게 진짜 '로컬 파인 다이닝' 아닐까


비싼 파인 다이닝을 많이 경험해본 적은 별로 없지만, 친히 예약자 이름을 적어두어, 존중받는 첫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전에 전복 물회/ 뿔소라 미역국을 선택할 수 있도록 문자를 주고 받는 경험도 다이닝의 주인공이 되어 맛있는 음식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뿔소라 조각 식기 받침대를 보면 이 디테일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마치 고급스러운 한정식처럼 죽으로 입맛을 돋군 후, 뷔페식으로 해녀님들이 직접 잡으신 해산물과 정성껏 만들어주신 제주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

톳밥, 우뭇가사리, 군소 닭고기 샐러드, 뿔소라 구이 등 싱싱한 재료들로 바로 조리되어 맛있을 뿐더러, 해산물에 대한 설명들도 곁들여져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45년 경력 70세 강인화 해녀님은 특유 유머 감각과 재치가 있으셨는데,  뿔소라와 군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름의 유래, 생김새는 물론이고 까는 방법, 먹는 방법 등 기본적인 이야기들은 우리가 평소 네이버 백과사전을 찾지 않으면 알 수가 없을터였는데 ,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뿔소라였다.  뿔소라는 양식으로 키울 수 없고 자연산만 있는데,  1년에 제주에서만 2000톤을 채취한다고 한다. 이 중 80%가 일본에 수출되는데, 20년 전부터 가격이 일본에 의해 책정되고, 일본의 시장 상황에 따라 가격도 변한다고 한다. 힘겹게 바다와 싸워가며 해녀 어머님들이 잡으신 뿔소라지만 제 값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듣고 나니 너무 속이 상했다.  해녀의 부엌이 판로가 되어주고 조금이나마 뿔소라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종달리 해녀님들 각자의 이름이 적혀진 테왁



# 욕심 내지 말고 숨 이실 때 나와야 한다

20분 남짓 해녀의 이야기를 담은 공연은 조금 슬펐다.

바다에서 남편을 잃었지만 자식을 위해 다시 바다로 들어갈 수 밖에 없던 해녀님들의 설움과 애환을 담은 스토리였다. 해녀님들을 만나기전부터 눈물 콧물을 쏙 빼놨다.

공연의 한 장면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해녀 할머니와 Q&A시간이었다.

종달리 최고령 현역 89세 해녀 권영희 할머니는 10살 때부터 물질을 배워 15살이 넘어 바다로 나가셨다.할머니가 마흔 두살이 되셨을때야 지금의 해녀복이 나왔지, 그 전까지는  얇디 얇은 옷을 입고 나가셔서 30분 물질하고 나와 불에 몸을 녹이고 또 30분을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일을 하셨다고 한다.

수경도 생기고 해녀복이 생김에 따라 해녀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만삭일 때도 물질을 나가신 해녀분의 에피소드도 들었는데 참 마음이 먹먹했다 . 양수가 터지면 물 밖으로 올라와 손을 저으면 고깃배가 와서 생선칼로 탯줄을 잘랐다는 이야기다.


식사를 하며 적어둔 메시지를 뽑아 해녀할머니가 직접 읽으시고 답해주시는 시간이었는데,

연속 3개다 바다에서 얼마나 오래 숨을 참으시냐는 질문이였다.


그런데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질문에 아차 싶었다.


바당에 시계가 어딨어, 그냥 하는거지뭐



바다로 나가 삶을 책임질 수 밖에 없었던 제주의 어머니들의 강인함,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힘든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으셨을 해녀분들을 생각하니 코 끝이 찡해졌다.




할머니는 건강하시라는 메시지를 꼬깃꼬깃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어 가셨다.

어찌나 노래를 잘하시던지 '해녀의 노래'를 들려주셨는데, 가사의 서글픔이 할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살만큼이나 짙게 묻어나는 것 같았다.




막내 해녀의 나이 55세,  이제 15년~20년 뒤면 사라질 해녀. 2016년에 인류무형유산으로 '제주해녀문화'가 지정되었지만 진짜 몇십년 뒤면 박물관에서만 그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아쉽고 애석한 마음이 들었다.

'해녀의 부엌'이 이렇게나마 해녀분들께 새로운 즐거움과 수입원이 되고, 종달리 마을에 활기를 가져다 줄 수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한 명이라도 이 글을 읽고 <해녀의 부엌>을 보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키고 싶은 제주의 풍경, 먹거리, 문화 이 모든 것들을 이롭게 소비하는 방법임은 분명하다.

사라져가는 해녀 문화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나눌 수 있도록, 그 소중함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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