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간판이나 글귀를 보고 다니며 얻는 즐거움
종종 책이나 핸드폰에서 좋은 글귀나
재밌는 아무 말 대잔치를 보는 일이 질릴 때가 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고, 너무 진지할 때도 있고,
아님 고개가 아파서 그만 보고 싶기도 하고.
유독 나는 텍스트를 관찰하고 싶은 욕망이 큰 편이다.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일종의 직업병이나 직업의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일하는데 소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센서가 온갖 텍스트에 반응한다.
첫 직업이 브랜드의 이름을 짓는 네이미스트였기에 버스 광고나 가게 문 앞 같은 모든 글판들을 빠르게 스캔한다. 사회초년생 때 발상이 막히면 선배님이 항상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다고
좋은 이름이 나오는 게 아니야.
나가서 좀 걷고 환기 좀 시키고 와.
주변에 간판들도 그냥 슬렁슬렁 보면서.
때로는 팀끼리 우르르 나가서 가로수길을 걷거나 간판 찍어오기 같은걸 하기도 하고, 주말에 지나가다 본 재밌는 카피를 공유하며 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지금은 제품의 상세페이지를 기획하는 사람이라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카피를 고민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남들은 특정 사물을 두고 어떻게 글을 쓰는지 궁금하고, 도통 내 머릿속에서는 좋은 단어나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 하나라도 걸리겠지 하는 마음이 저절로 눈이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두 번째로, 직업을 떠나서 그냥 보는 거다.
무의식적으로 본다. 생각보다 몰랐던 말들, 재미있는 말들이 많고, 이상한 것도 많고, 다 사람들 생각하는 게 비슷비슷하구나 싶을 때도 있다. 관심의 영역이 비주얼적인 것보다 어떻게 저 말을 썼을까? 너무 재밌다! 에 꽂혀있다. 이유는 없다.
사진첩을 열어서 길에서 주운 글을 조금 펼쳐 보았다.
어머니가 내 사랑의 주거래 은행이라는 표현에서 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저런 비유를 할 수 있을까? 엄마가 엄청 보고 싶었다. 아마 5년 전부터 나는 일명 '갬성'을 좋아하던 친구였던 게 분명하다. 아니면 이별을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먹먹한 글들을 마주할 때면 지나치지 않고 꼭 하나씩 찍었다.
남들은 얼마나 읽는지 모르겠지만,
지하철 역에 붙어 있는 시를 읽는 편이다.
지나가다 멈춰 선 경우도 많고, 지하철이 빠르게 지나갈 때를 기다려 그 풍경을 배경 삼아 시를 찍기도 했다.
특히 시하철은 출근시간보다 퇴근 시간에 한껏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유독 더 잘 들어온다. 시가 나에게 토닥토닥 위로를 해주는 기분이랄까. 교과서에 나온 시들도 있지만, 시민 공모작 중에서도 좋은 시들이 많았다. 다 우리가 사는 이야기들이 글이 되었기 때문이겠지.
조금 유난을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작은 것에 감동을 잘 받는 편이라서, 그런 시를 보면 꼭 찍어놓고 나중에 또 보려고 하트를 꾹 누른다.
상업 시설의 이름은 '간판'의 힘을 빌어 나름 세상에 이름을 외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름표를 달고 있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식물의 이름이나 역사적인 의미가 있거나 오래된 시설이지만 딱히 유명하지 않은 것들의 이름표가 그렇다.
그냥 지나쳤다면, 단풍 중 하나겠지 했을 거다. 생각보다 나무의 종류는 다양하고 신기한 이름도 많다. 그래서 공원을 가든 산을 가든 나무의 이름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아왜나무', '조팝나무' 등등 입에 담으면서
피식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된다.
대오서점의 경우 오래된 서촌의 책방 (지금은 카페)인데 사진 찍으러 가는 경우가 많아서,
대오서점이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인지는 모르기 십상이다.
문 앞에 적힌 안내판을 봤는데
'하, 부부의 이름 하나씩 따서 '대오'라니 그 시절 이런 로맨틱도 없다'며 아련하게 눈빛을 친구와 나눴더랬다.
지면 광고가 많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프라인 매장 앞에 있는 배너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하철이라 '이번에 내리실 역은' 멘트를 재치 있게 '열이 내린다'와 연결해서 썼다. 이 위트에 혼자 박수를 쳤다. 먼치킨이 언젠가 '치킨'라임을 맞출 거라 상상했었는데, 떡하니 나와있어서 놀랬다.
솔직히 엄청 기발하다거나 생각지도 못했다고 얘기하는 건 거짓말이다.
마트에서 간장을 보고 좋았던 이유는, 이렇게 간장을 사용하는 맥락을 대놓고 써주니 너무나 직관적이고 선택을 쉽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세상 친절한 거다.
요리와 거리가 너무 먼 나에게 간장은 매번 양조/국/조림 간장 중에 뭘 써야 하는지 매번 헷갈린 양념이었는데 문제 상황에서 가장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이름이 아니었나 싶었다.
주상절리 파이는, 저런 모양의 빵을 뭐라 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엄마손 파이처럼 갈라지는 결이 특징인 딱딱한 파이지만, 수직적인 느낌과 둘러싼 초코가 보여주는 무늬가 마치 제주에서 볼 수 있는 '주상절리'를 파이 앞에 붙이니, 단박에 어떤 생김새의 파이인지 감이 온다는 것.
제주에만 있는 한정메뉴! 임을 뿜뿜하며 과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적이긴 하지만, 강원도를 넘어갈 때마다 마주치는 '면온'을 보면 동행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부르며 '면온'을 외친다.
여기 너 있어! 면온!!!
생각보다 어른이 되어도 다들 유치한 구석이 있다.
내 이름은 '명온'인데, 내 이름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놀리는 건지 신기해서 말하는 건지 깔깔거리며 면온면온거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이나 별명에 얽힌 에피소드들로 화제가 넘어가고 지루하던 고속도로 위에서의 시간을 깨우곤 했다.
그냥 도로에 '일방통행'이라거나 주말에는 주차가 안된다거나 등등 하얀색으로 굵직하게 적힌 것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잘라서 보면, 앞뒤로 말을 넣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도 한다. '토요일 일요일' 같은 경우는 아마 주말만큼은 푹 쉬고 즐기자는 의미를 부여했던 걸로 기억한다.
온라인으로 보는 글이랑 오프라인으로 보는 글이랑 뭐가 다르냐? 고 생각할 수 있다.
핸드폰은 단조로운 화면에서 글이 빠르게 넘어가기 때문에 글의 재미를 떠나서 그냥 재미가 없다. 또는 좋은 글이라도 빠르게 휘발되기가 쉽다.
매번 좋은 글이라며 호들갑 떨며 캡처를 하지만, 꼭 손으로 직접 필사해놓고 지우겠다고 다짐하지만, 매번 차오르는 용량 알림을 볼 때면, 1순위로 삭제되는 사진이다.
반면에 길에서 만난 글들은 어디에 매달려 있느냐에
따라 더 재미있게 보이고 달리 읽힌다.
걷던 나를 멈춰 세우게 하는 만큼,
핸드폰 화면에서보다 훨씬 나를 붙잡아 두는 힘이 세다.
그리고 길 위에 있는 글들은 특정 설치물에 함께 노출되어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거나, 행동을 유도하는 등,
주변 장소나 물건의 물성 같은 맥락에 따라
좌우되는 글들이 있기 때문에,
어디에 매달려 있는 글인지에 따라 읽히는 것도 다르고, 보는 시각도 달라져 지루할 틈이 없다.
전자파가 내 눈으로 직접 쏘는 일도 없으니
피로감이 덜한 것도 장점이겠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라고 사람들은 지루해한다.
하지만 일상의 풍경을 세세하게 뜯어보면
하루라도 같은 날이 없다. 생각보다 재미난 게 넘쳐난다.
핸드폰만 머리를 푹 숙여 보지 않아도 즐길게 엄청 많다.
어떤 자연물이나 다른 재미난 요소들도 많겠지만,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며 새로운 놀거리나 공간을 찾을 여유나 체력이 부족할 때,
그럴 때는 가방에 핸드폰을 툭 넣어보자.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보고 그냥 주변에 있는 간판이며
헬스장 전단지며 뭐든 한 번이라도 쓱 보는 거다.
최소한의 경험이자, 관찰하는 습관이 될 수 있다.
위로를 받을 수도 , 재미를 얻을 수도, 아무것도 아니었다가 갑자기 팍! 아이디어가 될지도 모르는 거니까!
사람들이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들을 마케터 관련 북토크나 강연에서 많이 하는데,
그냥 이렇게 길 위에서 글을 후루룩 보고 읽는 것만으로도 영감의 시작이지 않을까?
내가 너무 부족해서 많이 관찰하고 다닐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