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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Oct 16. 2020

시를 듣기 좋은 계절

내가 읽는 것보다 남이 읽어주는 시가 더 좋다


시()

문학 중에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장르 .시집을 선물 받으면 받는 순간에는 마음이 몽글몽글 좋다가도, 호흡을 어디서 끊어 읽어야할 , 아리송한 시적 표현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혼자서는 도저히 시를 감당해  수가 없다.수월하게 술술 읽히는 에세이에  애정이 가는 이유가  때문일까.


아나운서이자 시인이기도한 이상협님의 <당신의 밤과 음악>이란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을 매일 듣는데,  시인분들이 게스트로 나온다는 소식에 들떴다. 게스트로 작가님들을 모시는 경우는 많지 않고, 이 프로그램에 게스트가 잘 안나오는데 너무나 특별해서 본방송을 사수했다. 좋아하는 '박연준', '이병률'시인을 비롯해 한 글자 사전의 '김소연' 시인, 위트앤시니컬 '유희경'시인, 그리고 진행자 이상협님까지, 어느 음악 페스티벌의 쟁쟁한 라인업에 견주어도 손색없었다.


시인의 방을 소개하고, 시 쓰기 경험, 책 추천, 시인이 짓는 삼행시까지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갔다.특히 오래전부터 좋아했지만 지금은 애정이 예전같지 않은 이병률 시인이 나오던 날이 인상깊어서 그 이야기와 소감을 남기고자 한다.


끌림

우선, 내가 이병률 시인을 좋아하게 된 옛날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대학생 때 보헤미안의 기질도 보이면서 좋아하는 일을 많이하는 선배가 <끌림>이란 여행 에세이를 추천해줬다.

선배가 좋은 책이라 하면 곧이 곧대로 믿고  <끌림>을 빌려 읽었는데, 그 때의 감성 수준에서 나에게 제격이었던거다. 해외 여행을 많이 못가봤던 때라 '여행'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여행 사진이 많이 들어있어 보는 재미도 있고 읽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슬픈 문장을 따라 함께 슬퍼하거나 우울해하는 것을 즐겨했기 때문에 제법 괜찮은 책으로 기억에 남았다. 지금은 너무 구구절절한 이별,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시인의 <혼자가 혼자에게>,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같은 제목을 보면 <끌림>만큼이나 딱히 끌리지가 않았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직접 시인이 낭독한 시 <숨>을 들으니

시집의 제목만큼 오글거리지 않고 언어들이 마음에 가닿아 출렁거렸다.


라디오 들으면서 받아적은 것이라 본 시와 살짝 다를 수 있음을 주의해주시길


서로 가까이도 말며, 말하지도 말라며

시는 인간에게 채찍대신 마스크를 나눠주었다

사랑하지말라는 의미였을까

입을 가만히 두라는 뜻이었을까

소리를 들리게 하지도 말며, 소리를 내지도 말며

사람들을 향해 사람들은 두번째 손가락을 세웠다.

서로 얼굴을 비벼도 안돼고

국경은 넘으면 안돼고

잔재미들을 치워놓으라했다

나눠먹을수 없으니

혼자 먹을 쌀을 씻었다.

(중략)

계절이 사라진 그 해에는

일제히 칠흑속에 꽃이 피었다

공기의 공기를 섞어봤자

시절은 시들어간다

(중략)

사람들은 자신이 쓴 마스크를 태우며

혀를 씻었다.

마음의 손님을 생각하다

손님들을 다 돌려보내고

창 밖으로 펼쳐진

세기의 긴 모습을 기록하려 애썼다

친구에게 부쳐도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는

국제엽서는 처음이었다



시는 어떤 식으로든 울림을 주고 문장 하나로 심장을 뛰게 할 수 있다는 것.그리고 감각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이자 시를 좋아하는 이유다.


듣고보니 에세이나 어떤 소설의 문장보다 짧다가 길다가 호흡의 연속이 파도의 물결처럼 느껴지고 천천히 하나씩 곱씹게 되는 맛이 있었다.


그런데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활자를 읽는 것보다, 시를 쓴 시인의 목소리로 나긋나긋 호흡과 어우러져 읽는 것을 들을 때 감각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더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슬픔과 아쉬움, 쓸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담담하게 읊조린 시였다. 생경한 느낌이었고, 딱 낭독되는 순간에만 느껴지는 감정이었다.내가 소리내어 읽는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읽는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출렁거리게 될 것이다.


그는 이 시대에 시가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우리는 마냥 살고 있고, 마냥 응대하고 있고, 일이든 무엇이든 주어진 무언가를 영혼없이 관성적으로 사는 것 같아요" 결국 이 말을 해석해보면, '나와 주변을 좀 더 돌아보고 정성껏 부대끼며 살아가자'가 아니었을까.



시란 나와 가까워 지는 일

시를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시를 직접 씀으로써  우리는 '나'와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등단을 바라는 많은 이들에게 조언을 덧붙이며, 시를 쓰는 과정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되는 과정이자, 무엇을 잘 쓰는지 알아야 하는 탐구의 과정이라 보고 있다. 당선작, 수상작에 휩쓸리면 작품과 나의 거리감이 느껴져 진정한 나만의 시를 만들어내기까지 먼 길을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내 목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등단을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에 얻어맞고, 질투도 해보고, 어울려보기도 하고, 경쟁해보라는 것. 결론적으로는 많이 떨어져봐야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 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부분도 '나를 알아간다'는 측면이었는데, 결국 글자로 뱉어내지 않으면 나와의 거리도 멀어지는 것으로 해석했다.

아물지 않는 나의 마음을 달래주고,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은 내 주위의 풍경들을 생생하게 남기는 힘도 있다. 나를 나로서 받아들이고, 풍경을 풍경의 리듬대로 온전히 느끼는 것, 그게 바로 시 아닐까. 결국에는 모든 창작의 과정이 남에게 도달하기 이전에 나에게로 떠나는 여정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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