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라는 말을 정말 오랜만에 실현했다.
남자친구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거나 친구들 두어명이 모여 같이 파티를 하며 보내곤 했는데 이번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럴 수 없었다. 사실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은 어렸을 때 빼고는 많지 않다. 나와 동생은 너무 커버렸고, 부모님은 이런 기념일을 챙기는 데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기도 하셨으니 빨간 날은 그냥 하루 늘어난 주말과 다름 없었다. 그나마 성당을 가족끼리 열심히 다녔을 때에는 이브 밤 미사를 함께 드리고 선물도 받고, 함께 성당을 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했지만, 지금의 집은 공기도 너무 다르고, 연말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져버렸다.
그러다 내가 음식을 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와 엄마 아빠 이렇게 셋이 있는 집에 분위기가 살아나는 날은 나나 동생이 가는 날이 거의 유일하니까, 분위기도 살릴 겸 나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맛보시지 못한 요리를 대접해드리고 싶었다. 메뉴는 부라타치즈 샐러드와 감바스. 부랴부랴 마켓컬리에서 전날 저녁 준비한 재료들을 한가득 사가지고 본가에 갔다. 난이도가 최하임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이고 네이버에서 비슷한 레시피들을 검색해 둘러봤다.열심히 재료들을 손질했다. 내놓은 도구들만 보면 집들이 음식한 줄 알 정도로 부엌은 너저분해져 있었다.
성공적이었냐고? 맛보다는 정성과 색다름에 의의를 둔 것으로. 엄마가 저녁 준비를 안하신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걸로 하겠다.
두 음식 모두 베이스가 올리브 오일인 것은 첫번째 실수. 간을 안 본게 두번째 실수. 손이 워낙 작아서 소금을 넣어도 정말 아주 약간, 샐러드 드레싱을 듬뿍 끼얹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기별도 안가는 수준이다. 짠 음식을 싫어해서 적게 넣는 것도 있지만, 음식은 간이 맞으면 어떻게든 괜찮다고 했던가. 간 맞추기 실패하는 게 싫어서, 아이러니도 아예 간을 보지 않는 대범한 나란 사람. 그것이 두번째 실수였다. 먹고 남은 감바스에 파스타면을 추가하였을 때, 면이 덜 익게 삶은 것으로 실수를 마무리했다.
엄마의 말이 아주 뼈를 때렸다. "3번째 고문인걸!"
아빠 왈, "3개의 코스지 코스. 단어 선택을 잘해야돼~"
하하호호하며 여차저차 기본은 했던 음식을 부모님은 맛있게 드셔주셨다. 이렇게 해준 게 고맙다며, 이제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며 다행히도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다. 휴 정말 다행이다. 매년 이렇게 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친구와 놀기에만 바빴지 부모님의 크리스마스도 좋은 추억으로 남도록 노력하지 못했던 게 조금 죄송했다. 몇 년 안에 나도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게 된다면, 함께 보낼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몇 번 안 남았단 생각에 시간이 얼마 없다고 느껴졌다.
식구란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이라 했던가. 별 게 아니다. 아무리 서로를 서운하게 했더라도, 힘들게 했더라도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고, 나를 언제든지 받아주고 따뜻하게 맞아줄 사람들은 우리 식구뿐이다. 지금은 동생과 내가 서울에 먹고사니즘 때문에 따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특별한 날 만큼에는 함께 식사를 해야지. 우리는 식구니까. 그래도 식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