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친구보다 더 자주 만나는 사람들
서로를 알게된 지는 5개월, 만난 횟수는 4번. 마케터, 광고 기획자, 컨텐츠 에디터의 직업을 가진 여자 세 명은 어느 날 우연히 한 테이블에 앉게 되면서 알게 된 사이다. 우리는 지난 5월, 브랜드 커뮤니티 <BE MY B> 가 주최한 전시 참가자 대상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자신이 애정하는 브랜드 제품을 이유와 함께 출품하는 전시였는데, 공교롭게도 물건을 넘어 그 물건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다움을 만들어가는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자리였다.
최대한 말을 안하고 어색하지 않은 척하며 새침하게 시작하길 기다렸다. 외향적인 편이지만 조용히 있는 게 낫겠다 싶었거든.나보다 멋진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는 이뤄놓은 게 없는 내가 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전시된 물품 옆에 참가자 소개 메시지에는 낯익은 이름들이 보였다. 직접 제품이나 커뮤니티를 만들어 꾸려나가는 사람, 어디어디 잘한다더라의 그 어디어디에 소속된 실무담당자 등.
행사가 시작되기 10분 전에 모베러웍스의 모자를 눌러쓴 누군가 다가와 서성였다.
“옆에 자리 있나요?”
“아니요, 앉으셔도 돼요.”
그렇게 앉게 된 나의 옆자리와 2시 방향 자리에 앉은 그녀들. Y님과 V님, 그리고 나는 케이터링으로 나온 제주맥주가 맛있다며 어색하게 맥주를 홀짝거리고 서로 일어나 자기소개를 할 때 열심히 박수를 쳐주었을 뿐 크게 교류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하철을 같이 타고 가면서 '그 수업 나도 들었다', '어? 그 사람 나랑 아는 사이다' 등 교집합을 발견하면서 대화가 술술 이어졌다.
대화 끝에 우리 셋의 공통점을 찾았다.
벤다이어그램에서 3개의 원이 겹쳐 가운데
가장 코어한 A∩B∩C의 그 영역을.
바로 글쓰기였다.
한명은 독립출판을 준비하느라 원고와 씨름하고 있었고, 한명은 사업기획에서 마케터로, 나는 브랜드 기획자에서 에디터로 이직을 한 상태였다. 셋은 글을 가까이 두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한 사람들이었다.
쓰레기라도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글쓰는 습관을 들이는 취지에서 매일 목요일 저녁에 글쓰기 모임하실래요?
끄덕끄덕. 딱 한 번 본 사람들인데 책도 서로 빌려주고, 북토크 행사나 글쓰기 수업이 있으면 채팅방에 링크를 공유하며 연락을 이어나갔다. 딱히 친구들처럼 자주 얘기를 나누진 않고 딱 필요한 만큼의 정보만 공유했다. 어쩌다 만나는 날에도 절대 그냥 만나지 않고, 마케팅 잘한다는 브랜드의 오프라인 경험을 즐기러 후보를 놓고 신중히 추렸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사이를 유지할 수 있는 있는 것도 역시 글쓰기 덕분이다.매주 한 편씩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근황을 접했다. 몇 번 만난 사이가 아니여도 쓴 사람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다음 번 모임에 나가서는 지난 주에 올린 글을 봤다며, 잘 해결되었냐며 서로의 마음을 살피며 따뜻한 말을 나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커리어 고민, 연애 고민, '자연 vs 도시' 같은 가치관 올림픽 같은 걸로도 얘기를 나눴다.
좋아하는 공통의 관심사만 있어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한다. 꼭 오래된 친구 사이여야만 재밌고 허심탄회하기 이야기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인간 관계가 좁아지녜, 친구가 없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그 때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누는 상대가 달라지는 것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관심사도 달라지니까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멀어지고 가까워지는거다. 인간관계가 좁아졌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우리는 나이를 서로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나이를 모른다. 글쓰기에,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데 나이는 필요가 없으니까. 그저 대화 속에서 가늠만 할 뿐이다. 독립출판 경험이 있는 Y님은 다음 책을 고민하고, 다음 글쓰기 모임의 행보를 구상 중에 있다. 나와 V님은 기필코 독립출판을 하자며 결의를 굳게 다지고 방향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글쓰기는 계속된다면 글로 만난 사이도 계속 될 것이라 믿는다. 부지런히 좋아하는 것을 나누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꼭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걸로 세계를 넓혀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