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 Dec 31. 2020

2020 연말정산

오늘만큼은 나를 칭찬해주자.

2020년은 나이 앞자리에 3을 처음 달게된 해였다. 나의 나이 뒷자리가 매 년 뒷자리와 같은 것에 묘한 쾌감을 느끼며 입으로 [삼] ,[이천이] 하고 소리내 발음한 적도 있었다.

매일매일은 별로 한 것이 없다고, 나아진 것이 없다고 느끼지만

마지막 날이 다되어 한 해를 돌아보면, 그동안 생각보다 꽤 많은 것들을 해내왔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안도한다.


올 한 해는 변화의 해였다.

관계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족과 나 

할머니의 요양병원행으로 우리 가족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패턴을 가지게 되었다. 매주 주말마다 할머니 병원에 가고, 병문안이 끝나면 아빠와 동생과 함께 카페에 들러 항상 커피타임을 가졌다. 처음으로 어르신용 기저귀를 갈아봤고, 할머니의 말벗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식구들은 변화를 겪으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했다. 호전되신 할머니를 집으로 다시 모시고 오며 많이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차저차 잘 이겨냈다. 동시에 언젠가는 시니어를 위한 비즈니스를 내가 꼭 하고만다며 결심도 속으로 해봤다.


남자친구와 나

봄에 이별을 했고, 그 후 여름 나절에 그와 다시 만났다. 나는 이별을 입 밖으로 내뱉은 당사자였으나, 힘들게 결심했지만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면서 다시 만나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조금씩 기울었다. 불확실성 앞에서 나약한 인간인지라, 오늘의 기쁨보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더 컸었기에 이별을 선택했었다.

그와 시즌2로 지내면서는 마음에 훨씬 안정감이 생겼다. 지금 함께하는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응원해주는 것만으로 나는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을 배웠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관대함이 생겼다. 동시에 미래는 그 때의 우리가 해결한다는 마음이 더 커져버렸다. 그 걱정을 할 시간에 지금을 놓치는 건 좀 미련한 일인것 같아서.


일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퇴사 - 이직. 그것도 완전 안 해본 일로.


브랜드 컨설팅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4년만에 업계를 완전히 떠난 셈이다. 

두번째 회사에서는 1년 7개월의 생활을 종료했고.


컨셉진 에디터 스쿨을 들으며 브랜드 기획자가 아닌 '콘텐츠 에디터'로 직무를 바꿨다. 

하는 일은 많이 달라졌고, 신생 브랜드 이름을 달고 콘텐츠를 내보내는 역할이니 어느정도 브랜드 기획자의 일도 섞여 있기는 했다.


나는 에디터를 진짜 매력적인 직업으로 생각하고 동경했다. 솔직히 말해 좀 멋있어보였다. 컨셉진 편집장님의 에너지와 일에 대한 사랑에서 많은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매월 마감에 치이기는 하지만, 긴 글을 써내는, 동시에 트렌디함도 놓치지 않는 기민한, 센서티브한 일, 글 잘 쓰는 것은 그저 기본이고 사진이나 디자인 등의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일이었다.

힙하다는 것은 제일 먼저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직업, 동시에 콘텐츠의 겉모습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납득 가능한 글임과 동시에 공감을 통해 행동을 유도하면 더욱 좋은 것.


직접 일해보니 긴 글을 쓰진 않지만 커머스의 상세페이지 기획자이자 SNS에 올라가는 콘텐츠 구성을 담당하면서 실상은 많이 달랐고, 절대 한 단어도 그냥 세상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우리 브랜드라면 이런 말은 어울리지 않아, 이런 말 정도는 써야돼 같은 미세한 톤앤매너를 맞추는 것도 꽤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다.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 어떤 게 더 나은 디자인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했다. 어떤게 더 가시성이 높고 사람들에게 행동 변화를 불러일으키는지도 함께 고민해야했다. 8월부터 5개월 동안 일해보니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 내년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지.


사실 연차 대비 나의 부족한 역량을 자책하곤 했다. 쓰고 나니 그래도 어떻게든 변화하고 다양한 일을 하기 위해 많이 도전했다는 사실에 칭찬을 해주고 싶다. 



일상적으로는 글 쓰기와 가까워지고 몸 쓰기는 멀어졌다.

올해 읽은 50여권의 책 중에서 10권 남짓은 글쓰기 관련 책이었다. 

하반기에는 글쓰기 온라인 모임에 참가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브런치를 썼다. 물론 빼먹은 날도 엄청 많다.

브랜드 관련 네트워킹 자리에서 좋은 인연을 만났고, 글쓰기로 우리는 자주 보진 못해도 안부를 물으며 가까워졌다. 이것도 굉장한 수확이었다. 글쓰기의 연장이라 하면 연장일 수 있는데, 연말 기념 '포춘레터' 프로젝트도 진행해보았다. 서른명에게 손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신청을 받아 편지를 보내주는데, 올해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을 받는 사람에게 어울릴만한 것으로 고르고, 편지글을 덧붙이는 방식이었다. 답장으로 올해의 문장을 공유받는 것으로 어떻게든 확산의 구조를 만들어 보려 애썼다. 70의 성공과 30의 실패로 마무리되었긴 하지만, 덕분에 마음을 글로 나누는 일과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그것으로는 의미가 있었다.


글은 많이 썼으나 반대로 몸은 많이 안썼다. 운동을 너무 안했다. 요가소년 유튜브를 보긴 하지만, 주기적으로 하진 않았다. 살은 쪘고 나는 둥글둥글해졌다. 글쓰기로 마음에는 다행히 살이 찌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아주 뻔하면서도 금세 어길 것 같지만 새해에는 운동을 꾸준히 해서 건강을 챙겨야겠다.


잘 살았다.

올 한 해 정말 수고했다.

스스로 칭찬해주는 일에 야박한데, 오늘은 나를 쓰다듬어줘야 겠다.

이 변화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그래도 무탈하게 잘 지내와줘서 고맙다고.

내년에는 나를 좀 더 잘챙겨보자고.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인데 서로 나이를 몰라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