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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Nov 06. 2020

나는 왜 쓰는가

책에서 하고 싶은 말

내 핸드폰 메모장에는 별의 별 글이 가득하다. 하루 지출 내역부터 지나가다 전자 피아노를 들고 가는 아저씨를 봤다는 둥, ‘낙지세상’ 이란 간판에 ‘낙’ 한 글자만 등이 나가서 ‘지세상’만 켜져 있었는데 피식 웃겼다는 둥.

스쳐 지나가는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부랴부랴 적은 흔적들이 천지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도 아니고 순전히 내가 즐거워서, 무의식적으로 적어 내려간 것들이다.

이 버릇은 무언가를 남기지 않으면 하루를 그냥 흘러보내는 것 같은 허망함이 들어서 생겼다. 메모들은 나의 핸드폰에도, 일기장에도, 나와의 카톡 대화창에도, 블로그에도 적혀있다.

사소한 순간들을 붙잡아 놓으면 생각보다 뻔한 하루가 재밌어지고, 시간에 의미라는 게 생긴다. 물론 내게 주어진 시간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작게나마 채워나가고 이름을 붙이는 것 만으로 시간의 가치는 높아지고, 나만 누릴 수 있는 작은 기쁨이자 훗날 좋은 추억으로 회자 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매번 좋은 일이나 웃긴 상황만 쓰는 건 아니다. 슬프거나 화에 가까운 감정들이 휘몰아 칠 때에도 쓰는 편이다. 순간에 충실하되, 상황을 차분하게 객관화하고 마무리 지을 때에도 그 효과가 있다.

정리하자면 나는 순간을 붙잡는 기록이야말로 일상을 재미있게 채우고 이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미래의 나도 즐겁게 해주는 행위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잘 붙잡아서 나만 혼자 큭큭거려도 괜찮으니, 조금 찌질해서 스스로에게 연민이 생겨도 괜찮으니, 풍부한 감정을 발산하고 하루하루 살아나가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뒤집어진다는 학생들을 보며 좋을 때라며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순간의 주변 풍경과 나의 감정에 집중하면 어린아이처럼 즐길 수 있고 순수한 나와 만날 수 있다. 일상을 붙잡으려는 의지와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몇 자 뱉어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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